수행에 질문에 대답한 글..
삼매와 영적 체험과의 관계
칠통漆桶 조규일
2007. 2. 10. 13:32
No: 1194 글쓴이: 칠통 시간: 2001-08-05(일) 06:12:18 조회: 28 삼매와 영적 체험과의 관계 / 칠통 조규일 "삼매(三昧)와 영적 체험과의 관계... 그리고 영적 체험이 없는 참선(參禪)..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 지요?" 삼매에 든다고 해서 꼭 영적 체험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어느 단계를 넘어 서면 영적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선을 하고 있는 사람의 경지에 따라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건데 삼매를 통하여 어떤 경험을 하지 않고는 단 한계도 올라가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떠한 경우라도 참선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현재 어느 경지이든 길든 짧든 삼매에 들어서 경험을 해서 자기 자신의 경지 아래를 정리 즉 정신적으로 의식적으로 정리가 되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가더군요. 그리니 만큼 참선하는 사람은 일심 정진하여 삼매에 들도록 하는 것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참선하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고 어떤 경험도 없고 다시 말해 영적 경험이 없다면 아마 제가 수행한 것으로 봐서는 허송세월 낚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니면 수행의 무기공에 빠져다든가 물론 처음 하시는 분들은 수 없는 몸의 변화가 오고 몸의 변화가 끝나야 오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변화가 없다면 업장이 두꺼워 업장과 싸우는 것일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참선하기 전에 참회의 절을 하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영적 체험 없는 참선은 참선은 하되 삼매에 들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수십 년 수행(修行)을 했다 하더라도 영적 체험이 없으면 진척이 없다고 봐야 합니까? 아니면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한 번에 확철대오를 하는 때가 오는 것입니까?" 수십 년 수행해서 영적 체험이 없다 하더라도 진척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확철대오할 수도 있겠지만 극히 드물지 않을까 싶군요. " 어떤 스님은 수십 년 수행을 하신 것 같았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 길은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는 길이다. 그래도 그냥 하는 것이다.' 하신 그 스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궁금합니다." "이 길은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는 길이다."라고 말씀 하셨다니. 이 말인 즉 깨달음으로 가는 '길 없는 길'을 말하는 것으로 깨달음의 길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행(개척)하여 간다는 말인 듯 싶군요. "그래도 그냥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아직 길을 못 찾은 것으로 봐야하고 수행에 진전이 없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린 것 같은데 간절하고 절박하면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수행이 잘 될 것이라고 ... 그리고 수행을 일심 정진하는 수행자는 계속 넘어야할 산(장애)을 만나고 그 장애를 없애기 위하여 또 수행하니. 확철대오의 그날까지 일심으로 수행 정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삼매(三昧)에 들어야 나아가는 것임은 분명한데 삼매(三昧)와 영적 체험과는 무관한가요? 제 주변에 있는 화두를 깨고 한 소식하겠다는 사람들이 체험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들의 공부방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게 공부를 하는 것이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시간만 허송(虛送)하는 것은 아닌지...그게 궁금합니다." 저는 저 자신이 관찰자가 되어 저 자신을 하나 하나 관찰해 왔는가 하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을 통하여 수행해 보았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수행에 있어 가장 좋은 것은 묵조선이나 관법이었습니다. 화두선은 자칫 잘못하면 허송세월 낚기가 쉽지 않나 하는 것이 제 나름대로의 견해입니다.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화두를 잡고 공염불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니 화두가 잡히지 않고 화두를 잡고도 화두와 함께 겉도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맞는 화두를 잡았다면 화두를 탁파하기 위해 잠이 오지 않을 것이며 머리 속에 온통 화두만이 살아 있을 것입니다. 육체가 피곤하여 육체가 잠을 잔다 하더라도 의식은 잠을 자지 않고 의식 속에는 화두가 살아 있어 화두를 참구할 것입니다. 이러니 그들이 화두를 잘못 잡았다던가 아니면 참선할 때 화두를 참구하지 못하고 세상 번뇌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번뇌 속에 있는 것 아닌가 싶군요. 그러니 정도에서는 벗어났다 할 수 있으나 공부를 제대로 한다고 할 수 없으며 시간만 허송한다 하겠지요. 화두는 활구가 되어야하고 참선할 때는 하고 나서 한 점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했구나' 싶도록 마음 뿌듯하도록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수행자는 남의 수행에 관심이 없답니다. 자기 수행도 한시가 급한데 남의 수행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수행자는 수행하는 동안 수행담을 도반 아니면 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행 중에 본 모든 것이 눈병에 의한 허공 꽃이라고 생각하기에 더 더욱 그렇습니다. 참된 참선 수행자는 확철대오의 순간까지 살불살조(殺佛殺祖)하며 수행하기에 별로 진척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명상과 참선에 관한 말인데 어느 면에 있어서는 같은 맥락이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틀립니다. 명상은 생각을 몰아간다던가 아니면 생각하는 그 자체를 명상이라고 하지만 참선은 선(禪)을 참구하는 것을 참선이라고 합니다. 참선은 참하여 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명상이 발전해야 참선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자기 자신의 여러 가지 일들로 명상하다가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참선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러니 참선하는 입장에서 보면 명상과 참선은 전혀 다른 것이 되겠지요. 아마 그대가 어느 스님의 법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 스님은 그대에게 말할 것입니다. 네가 알고 있는 것 다 버리고 오라고 . .... 이 말인 즉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오히려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참선하는 분들은 그래서 불립문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금강경만을 보는 경우가 많지요. 8만 4천 경전이 금강경을 풀어놓은 경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8만 4천 법문을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심(心, 마음)이라 할 것이며 8만 4천 법문이 모두 다 마음에서 나왔다 마음작용이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점 유념하여 수행하기 바랍니다. 그대는 왜 수행하려고 합니까? 수행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구하려고 합니까? 근본적으로 무엇 때문에 수행하려고 마음먹었습니까? 자문자답해보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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