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담론
에덴의 동산에 과연 누가, 어떤 의도로 사과나무를 심어 놓았을까?
칠통漆桶 조규일
2007. 3. 31. 09:53
No: 1933 글쓴이: 칠통 시간: 2001-10-21(일) 22:26:03 조회: 60 에덴의 동산에 과연 누가, 어떤 의도로 사과나무를 심어 놓았을까? / 칠통 조규일 [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비유하자면, 에덴 동산에 과연 누가, 어떤 의도로 사과나무를 심어 놓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적 해석인 듯합니다. 기독교의 창조론을 믿는, 믿음을 전제로 하면, 보면 당연히 있어야 할 부분을 설명한 것입니다. "천지관"이란 글을 읽어 보셨겠지만 태초에 빛이 있었고 빛이 갈라지는 태초의 소리로 태초에 빛이 있고 소리가 있었다. 불교에서는 이 소리를 옴이라고 하지요. 한 생각 이쪽과 저쪽 빛의 밝기를 비교하는데서 분열은 시작되어 산산히 부서져 음양이 생기고 그 가운데 중이 있어 음양중으로 변화하는데 막힘이 없고 계속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中)은 중용(中庸)이 아니라 중도(中道)이며 중도라 했으나 빛을 뭉쳐져 있게 했던 일종의 끈끈한 성질이고 끈끈한 성질이라 했으나 법(진리)의 성질, 법성(法性)이며 흔히 말하는 기(氣)이고, 기(氣)에너지입니다. 수없이 조각난 빛과 기에너지와 이 사이 빛과 그림자 이 셋이 양중음으로 하나 하나가...수없이 많은 것이 전체를 이루고 이 전체는 하나입니다. 양중음으로... 태초 한 생각, 태초 빛이 있고 소리가 있었다. 양중음으로 하나이나 이는 테초의 생명으로 하나의 생명입니다. 이는 하나 하나가 ...수없이 많은 생명(중생 내지는 자식)으로 전체를 이루고 이 하나 하나는... 전체의 대생명으로 하나입니다. 수없이 조각난 빛 하나 하나는 .... 액체 같은 물같은...기(氣).. 바다 같은.. 끊임없이 움직이고..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움직임 자체가 생명입니다. 이는 액체 같은 물같은 끈끈한 기(氣)...를 연료로 하고 움직임으로 파문을 일으켜 서로 서로 부딪침없이 밀어내고 이는 사방 팔방 시(十)방으로 이루어지고 서로 밀어내는 파문으로 아주 아주 조금씩...점점 벌어지고(우주의 팽창) 연료라 하나 이는 본성(빛)이 있게 하는 성질이고 우주를 이루는 성질입니다. (어떤 분은 인간의 동적에너지로 우주는 원료로 한다고 하지만,제가 경험하고 체험한 바로는 "빛으로 가는 길" 꿈.5란 글에서 밝힌 것과 같이 본인의 입김에도 손동작에도 반응을 아니했으니. 인간의 동작에너지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주는 이러한 성질과 빛이 함께 존재 하는 것이 우주입니다. 우주라 하나 진실허공이고 진실허공이라 하나 허공이고 허공이라 하나 하늘입니다. 그 근본은 좋고 나쁨도 없고, 더럽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태초의 빛, 빛을 이루고 있던, 빛 속에 끈끈이 같은 것으로 형성되었던 이 음양은 밝은 쪽과 어두운 쪽으로 선과 악으로 구별되어 인연법으로 생성과 소멸, 팽창, 유정 무정의 생성과 소멸, 미생물에서 고등동물의 생성과 소멸을 계속 해온 것입니다. 님의 말처럼 "에덴 동산에 과연 누가, 어떤 의도로 사과나무를 심어 놓았을까?'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가 아닙니다. 양중음, 삼태극은 동양사상에서 태초로 보지 않나 싶습니다. 밝다는 어둡다는 음과 양에서의 중을 에덴 동산으로...비유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태초의 한 생각, 태초에 빛이 있고 소리가 있었다. 양중음, 중에서... 이렇게 보면 사과나무는 양과 음의 상징일 될 것입니다. 이 중은 앞에서 설명한 중입니다 이를 아무리 설명해도 되지 않는 것이고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찾아 확연히 알기를 바랄 뿐입니다. 님이 수행하여 찾지 못한, 확연하지 않은 것을 다른 책에서 글에서 서로 다르니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깨달은 분들의 책이나 말이나 저의 말이나 글을 수행에 참고로 할 뿐 그 말이나 글을 쫓지는 마세요. 속지 마세요. 수행하여 그 경지가 되어 스스로 관하여 찾았을 때 자신이 찾은 것을 읽은 글과 말을 참고로 하여 더욱 확연하게 하십시요. 그러니 밥 먹는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하면 뭐하고 밥에 쌀을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배고픈 사람은 밥을 먹어야 배부른 것입니다. 결국 수행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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