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깨달은 자에 있어서 견처가 알음알이고 알음알이가 견처이다.

칠통漆桶 조규일 2007. 4. 5. 14:39

 

 

 

 

깨달은 자에 있어서 견처가 알음알이고 알음알이가 견처이다. / 칠통 조규일

 


깨달은 자에 있어서는
깨달음의 견처가 알음알이고
알음알이가 깨달음의 견처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각자는
그가 수행하여 오면서... 또는 인식한 것들...
바라보고 있는 ...생각이 미쳐있는...것들...
산 정상에서 산 아래를 쳐다보는 것을 견처(見處)라 하면
산 정상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이 즉 각자가
어떤 모르는...생각해 본 일이 없는...한 번도 경험 내지 보지 못한 것을 질문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알음알이 하는데 있어 각자는 결국
깨달음의 의식 내지는 경지를 벗어나 대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이 물으면 바라보는데...그것이 처음 접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물은 것(미망 내지는 무지 무명)을 본성의 밝디 밝은 빛으로 비춰
들어 나는(미망, 무지, 무명) 티끌의 그림자를 이야기하나
이를 듣는 사람에 따라
어떤 이 깨달음의 견처(지혜)에서 대답한다할 것이며
어떤 이 알음알이(식견)로 대답한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각자는
물음에 대답하되...
대답하는 자체를 알음알이(見)라 말할 뿐
깨달음의 견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깨달음의 견처나 알음알이나 다름이 없고
또한 알고 있는... 모르는 것들로... 인하여 얽매이지 않으려는
깨달음 얻은 뒤 중도의 행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얻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학식, 수행의 경지 내에서의 견처가 있고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한 알음알이가 있겠지요.
이때 모르는 것에 대한 알음알이는
대답하는 사람의 말하는 사람의
의식 안에서 인식하고 바라는 보는 견에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지 내지는 의식만큼 알음알이의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깨달음을 얻은 각자의 알음알이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수행자와의 알음알이와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알음알이 하는 과정 견처에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수행의 단계적 경지의 견처....
유(有)에서 무(無)를 찾고 무(無)에서 공(空)을 찾아
공(空)이 유(有)하고
유(有)가 무(無)이고 무(無)가 유(有)하니
유무(有無)가 따로 없이
공(空)이 곧 색(色)이고 색(色)이 곧 공(空)이더니
진공묘유(眞空妙有) 속 일체 법을 찾고
일체법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 줄 알아
일체를 은백색의 빛(光)으로 보고 견성(見性)하고
우주와 공명현상이 일어 오도(悟道)하는 과정에서
수행자가 어디서 어느 위치에서 견처 내지는 알음알이 하는지
견처, 알음알이를 듣고 말하는 이의 경지를
깨달음을 얻은 각자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002. 3. 9

"깨달음은 있되 깨달은 자는 없다
그 행으로 중도만이 있을 뿐이다"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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