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질로 바로 들어가는 길은 무엇인가요?
나의 본질로 바로 들어가는 길은 무엇인가요? / 칠통 조규일
나의 본질로 바로 들어가는 길은 무엇인가요?
님은 본질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본질에 있습니다.
미망(迷妄)에 가려 본질에 있으면서도 본질에 있는지를 모르고
본질에 들어가는 길을 묻는 것입니다.
님이 질문하신 본질로 바로 들어가는 길이란?
미망을 걷어내 몰아내고 본래의 모습 본질을 확연히 아는 것입니다.
본질에 있으면서도 본질에 있는지를 모르게 하는 미망을 걷어내고 몰아낸다 했으나 이는 밝디 밝은 빛을 미망의 업으로 빛을 에워쌓아
(언제나 빛나는 태양을 구름이 덮어 태양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언제나 본질에 있음에도 있는지 모르게 님의 미망이 본질을 가린 구름의 어둠으로
사방 팔방 십방을 어둡게 만들어 님의 본질을 어둠 속에 가둔 미망을
확연히 아는 앎으로부터 사라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어둠 속에 가둔 본질이란 미망의 구름을 걷어낼 몰아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함으로 낮 하늘 가득 구름 낀 것이고, 또 본래의 본질을 등지고 본질을 바라보지 않으려는 것을 말함으로 밤하늘에 구름 낀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는 어둠이 제아무리 깊어도 빛이 있으면 빛이 빛나는 만큼은 밝게 볼 수 있고
(낮 하늘에 제아무리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도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완연히 빛이 들면 어둔 방에 전등불을 켜면
빛이 드는 전등불을 켜는 인연으로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할 것입니다.
확연히 아는 앎이란 만물의 실상을 확연히 아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실상을 확연히 아는 것이란
"나" "내 것"이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고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여의고
색(色)에 머물러 마음을 일으키지 말며
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수(受)상(想)행(行)식(識)에 착하여 마음을 일으키지 말며
삼라만상이 공(空)하다는 공(空)에 마음을 머무르게 하지 말고
밝다는 어둡다는...본성은 빛이다.
삼라만상 형태의 형상의 이름이 그러할 뿐
마음 머무를 곳이 없는지를 알고
본래 본질이 일여(一如)로 여여(如如)한지를 알며
이름이 그러할 뿐
일체의 모든 상(相)이 곧 상(相)이 아닌지를 아는 앎을 말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앎을 확연히 알면
본질로 바로 들어가는 길을 물어볼 것도 없이
님이 본질에 있는지를 몰라서 그렇지 언제나 본질에 있었음 있는지를 알 것입니다.
왜 자신의 본 모습 또는 깨달음의 자리 ...기타 ...등등
그 자리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는가 입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에고)이 본래의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넘어 설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나" "내 것"이라는 아상(我相)으로
너, 나, 우리... 삼독심(三毒:탐진취)이 있고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며
색(色)에 머물러 마음을 일으키고
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 머물러 마음을 내고
수(受)상(想)행(行)식(識)에 착하여 마음을 일으키며
삼라만상이 공(空)하다는 공(空)에 마음이 머무르고
님이 알고 있는 앎에...책이나 수행 또는 법문을 들어서... 마음이 머물러 있고
삼라만상 형태의 형상 이름에...
머무를 곳 없는 곳에도 마음이 머물러 또는 일으켜
일체의 모든 상(相)에서 곧바로 상(相)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 모습 또는 깨달음의 자리 ...기타 ...등등
그 자리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님의 모습(에고)이 본래의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넘어 설 수 없는 것은
고해(苦海)의 바다에서 나무 조각 하나를 만나 몸을 의지 의탁하고 있으면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도가 일면 이는 대로
바람과 파도에 흔들리다보니 흔들리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고해(苦海)의 바다에서 나무 조각 만나기가 어려움에도
몸을 의지 의탁할 나무 조각을 만났으니
나무 조각에 몸을 의지하여 일심 일념으로 헤엄쳐(수행하여)
뭍(피안의 언덕)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피안의 언덕으로...
어느 책에선가 깨달음은 수행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던데
깨달음이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면 무엇에서 오는 걸까요?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책을 쓴 작가 또는 설법을 이용했다면 설법하신 분에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00단체에서 입문하면 깨닫는다 즉 일세해탈(一世解脫)을 말하고
스승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인 빛과 소리...
그 본질을 열어 보여주는 역할을 함으로... 빛과 소리와 통하게 된다는...
즉 역할이란 전원에 플러그를 꽂아주는 스승의 침묵을 통하여
스승과 입문자 본질과 만물의 본질인 빛과 소리가 일여(一如)로 통하고
그럼으로 빛을 보고 소리를 듣는 "영체"로 듣고 보게 되는 것을 관(觀)함으로
그냥 알게 되는 깨달음, 돈오(頓悟) 또는 즉각개오(卽刻開悟)라 하고
깨달음은 수행에서 수행의 결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힘(깨달음)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수되는 것이라 하며
즉각 깨닫는 열쇠로 이심전심으로 표현하며 즉각개오(卽刻開悟)를 말하지만
이 역시도 수행을 해가며 점차 깨달아야 한다는 모순을 가지고 있으니.
그 모순이란 내면의 빛과 소리를 관(觀)하는 수행을 하여 그것과 공명이 되어
본성인 빛과 소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빛과 소리의 공명이라 했으나 본인의 경험으로 보면
빛(은백)이 빛(은백) 속에 있는 공명 견성을 이야기하고
유형 무형의 소리로의 공명 확철대오를 이야기하니
이 또한 점진적 수행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만큼 깨달음의 상징인 빛과 소리로는 깨달음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인식의 앎만으로는 그 속에 들 수도 없고
일여(一如)로 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깨달음의 상징인 빛과 소리를 인식하고 의지하고 그곳에 님이 있음으로
님은 깨달음을 증득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단체에서의 깨달음은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 스승님의 힘이라 하겠지만
진정한 깨달음 확철대오는 수행의 결과가 아니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수행하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모릅니다.
수행자가 수행하여 오른 경지만큼 멀리 넓게 바라보고
바라보고 확연한 만큼 확연하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깨달음, 본질)으로 바로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인지요?
앞 질문의 대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
또는 앞에서 말한 책의 내용(법문)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가운데
이루어진 질문인 만큼 님이 의도한 질문에 대답은
'모른다'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 글에서 이미 깨달음에 바로 들어가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만
그 글을 접하고 깨달음에 바로 들어가는 이들이 없으니
아마도 아직은 때가 아닌가 싶을 뿐입니다.
님께서도 그런 글을 보셨는지 아니 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은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님이 알든 모른 든 님은 이미 깨달음 속에 있고
진리 속에 진리로 언제나 본질에 있습니다.
2002. 5.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