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수행은 계(戒), 정(定) 혜(慧)로 이루어져야 원활하다
칠통漆桶 조규일
2007. 4. 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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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계(戒), 정(定) 혜(慧)로 이루어져야 원활하다할 것입니다. / 칠통 조규일
혜를 공부하고 정을 공부한다니 본인으로써는 납득이 잘 가지 않으나 처음 발심(發心) 수행하여 밖으로부터 계율(戒律)를 받고 또는 숙지하고 받은 또는 숙지한 계율을 바탕으로 수행 정진하여 밖으로부터의 계율이 안의 율려가 되어 안의 율려가 밖으로 나오며 스스로 안의 대상(업)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며 자유로움 속 밖으로 드러나는 행(行)이 밖의 대상에게는 계율이 되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계율(戒律)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수행법 중 본인에게 맞는 수행방법을 찾아 찾은 방법으로 입정에서....정(定)에 들어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수행할 때마다 전체가 한 번에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며 단계적으로 정(定)에 이르러 수행되지만 수행이 깊어질수록 정(定)에 몰입하여 들어가기 전 앞 단계들은 점차적으로 짧아지고 정(定)에 빨리 몰입 들어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바로 바로 정(定)에 들고 수행하고 더욱 더 깊어지면 늘 정(定)에 있게 될 것입니다.
발심(發心), 계율(戒律), 입정에서 정(定)에 이르는 과정의 수행을 하는 동안 통하여 수행만큼 본성은 밝아지고 밝아진 만큼 지혜가 생기고 지혜가 생긴다했으나 생긴 것이 아니라 본성이 밝아진 만큼 안의 대상(個業) 내지는 밖의 대상(共業, 他業)을 수행을 통하여 밝아진 만큼의 본성의 빛으로 걸림의 대상들을 밝힌다할 것입니다. 밝힌 걸림의 대상들을 아는 것, 안팎으로 대상을 조견(照見)해 봄으로 드러나 것을 지혜라 합니다.
수행자는 발심 이후 계(戒), 정(定), 혜(慧), 세 가지를 근본바탕으로 수행 정진하여 오르고 나아가고 나아가서는 최정상 산정(山頂)에 올라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곳에서 한발 더 딛으며 계(戒), 정(定), 혜(慧) 한입에 마셔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수행 과정에서 정(定)에 이르기 전에 지혜(智慧)를 닦았다는 것은 말이 지혜를 공부한 것이지 진정한 지혜를 얻은 것이 아닌 것인 즉 다른 사람이 공부한 수행하고 쓴 수행에 관련된 책, 경전,... 각자(覺者) 분들의 책을 통하여 어렴풋이 길 방법을 알았다 익혔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님의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고 그것을 지혜라 했으나 지혜라기보다는 업을 가중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님의 수행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벗하여 도움을 받되 전적으로 믿지는 말고 스스로 수행하여 수행을 통하여 대상을 조견(照見)하여 보고 다른 사람의 지혜가 아닌 본인의 지혜로 거듭날 때까지 이웃하여 벗하되 내 것으로 삼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본인의 수행으로 밝아진 본성의 조견(照見)으로 인한 지혜는 업이 아니되 님이 말한 지혜는 지혜가 아니라 업을 가중시키는 업식(業識)으로 본인에게는 본인의 업에 업을 더하는 결과가 되기도 하고 지혜라 생각한 지혜에 본인의 업을 더하여 즉 밝게 비추어 본 것이 아니니 생각에 생각을 하여 그 생각의 끝자락에서 결론을 내리고 내린 결론은 새로운 업식을 말들고 만들어 본인의 수행에 방해가 되기도 하고 자칫 잘못하면 올바른 수행자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던가 인도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고해(苦海) 바다 바닷물은 몇 사발이나 될까? 퍼마신다면 어느 세월에 고갈될까? 바닷물 몇 사발 몇 사발이 아니라 오직 한 사발 계(戒), 정(定), 혜(慧), 전체가 하나로 한 사발 한입에 마셔야 한다. 마시는 순간 바닷물은 메마르고 하늘과 땅이 무너진다. 천지 광명이다.
2002.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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