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기초적인 방법

심안(心眼),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칠통漆桶 조규일 2007. 5. 23. 14:42


 심안(心眼),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칠통 조규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육안(肉眼), 육체의 눈을 통하여 수많은 형상들의 대상(對相)을 보고
대상의 형상들을 피해가며 또는 이용하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본 대상들을 피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며 가고자 하는 곳을 가고 
걷고자 하는 곳을 살펴 걸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육체의 눈은 물질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눈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눈뜬 봉사로 깜깜한 어둠 속을 헤매는 것과 같고
헤매다가 어떤 대상을 잡아도 잡은 대상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릅니다.
때에 따라서는 잡은 대상이 자기가 잡고 싶어하는 대상이 아님에도
자기가 잡고 싶은 대상이라고 믿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잡은 대상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볼 줄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전혀 모릅니다.


명상 수행해 가는 길에 있어서
심안(心眼),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떠합니까?
가고자 하는 길에 놓여 있는 대상들 때문에 나서기가 두렵고
어디를 가든 가는 길 곳곳에 놓여 있는 형상의 사물들을 전혀 보지 못하니.
가는 길 곳곳에 놓여 있는 수많은 사물(대상)들을 밝혀 가야할 길이
천지 어둠 속을 걷는 어둠의 길이고
어둠을 조금이나마 안내해 줄 지팡이가 없으면
전혀 분간하지 못하니 헤매일 수밖에 없던가 아니면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다거나 몇 걸음 걸어도 넘어지는 것과 같이
심안(心眼)이 열리지 않으면
마음의 눈을 뜨지 않으면 명상 수행해 가는 길 역시도
수행하며 찾아가는 길 어귀에 놓여 있는 수많은 대상들을 밝혀갈 수 없고
수행하여 구하여 찾는 것, 찾고자 하는 것을 올바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소경(奉事)이 빛을 찾는 것과 같이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수행자는 밖의 대상을 바라보고 관하고 관찰하는 이가 아닙니다.
명상 수행하는 사람은 안의 대상을 바라보고 관하고 관찰하는 이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의 초발심이
안의 대상들을 향하여 걷는 첫걸음의 내딛음이고
한 소식, 깨달음을 얻을 때가지 걸어가야 할 길이고
도달해야할 정상의 목표고 목적이며
도착하여 안식(安息)과 평화를 얻어야할 곳입니다. 초발심
그 정상의 목표점에 목적지점에 도착 도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 안(내부)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정상의 목표점 목적지점에 도달하기 위하여
찾아가는 길, 걷는 길에 수없이 놓여 있는 안의 대상이
가고자 하는 길 어귀 어귀에,
어디를 가든 가는 길 곳곳에 놓여 있는
자기 자신 안에 놓여 있는 안의 대상(무형의 상(相))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떠야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심안(心眼)을 가져야합니다.
어떤 수행자는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도
육체와의 인연이 다하여 육체를 떠나가는 그날까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한 수련을 하는 이도 있고
마음의 눈을 뜬지 얼마 되지 않는 이도 있고
아예 마음의 눈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있고
마음의 눈을 생각지도 않거나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채
마음의 소경으로 수행한 이들도 있습니다.
육안(肉眼)으로 밖에 있는 형상의 대상을 보고 관하고 관찰하는 것이라면
심안(心眼)은 안에 있는 무형의 대상을 보고 관하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한다고 말은 하면서
육안으로 안의 대상을 찾으며 수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심안은 눈뜬 봉사(奉事)와 갔다할 것입니다.
심안은 눈뜬 봉사가 되어 걸어가니
육체가 소경이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같이
마음이 살아가는데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마음을 닦아 가는 살아가는 수행의 길로 걸어가는
그 길이 올바르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으로 가는 길이....
열심히 한다고 해도 집중한다고 해도 올바로 가기가 쉽지 않고
가는 길이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심안(心眼)을 이야기하고
심안(心眼)열기(나를 바라보기)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면
아픈 곳이 생기면 아픈 곳을 바라볼 수 있고
온몸 전체 어디를 관하려고 하여도 보려고만 한다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6근과 6처 오온과 생각이니 의식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것(대상)들
안팎의 대상으로 그 작용을 관함에 더욱 쉽게 밝혀 다가설 수 있고
확연히 밝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의 눈으로 밝혀가는 수행의 길에서
어느 때는 걸어가야 하고
어느 때는 서서 앉아서 보고 관하고 관찰해야 하며
어느 때는 우물을 파듯 장애나 벽에 부딪치면
장애나 벽을 통과하기 위한 제거작업 깊게 몰입하여야합니다.
깊게 몰입이 필요할 때에는 잠깐 좌선을 한 것 같은데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집중이 필요하고 몰입이 필요하고
필요에 의하여 수행 중 몰입되어 삼매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수행 일여(一如)로 삼매가 이루어져야
만난 장애나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장애와 벽이 스스로를 그렇게 수행하도록 합니다.
어느 면에서 장애나 벽은 수행에 방해가 되지만
수행에 있어서 장애와 벽은 수행을 하게 하기도 하고
또한 수행의 경지를 높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관계로 수행자는 수행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않고
장애와 함께 더불어 동행자관계 동반자관계로 수행해 가는 것입니다. 


오래 앉아서 참선한다고
오랜 시간 좌선만 한다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달려 가야할 곳은 달려가고 걸어야한 곳은 걷고
파 헤쳐야 할 곳은 파헤치며
장애가 나타나면 장애나 벽을 제거하며 가야합니다.
이렇듯 수행은 유효 적절하게 보조를 맞추며 수행해 가야합니다.
달려 가야할 때 땅을 판다면 어찌되겠습니까?
앉아서 땅을 파야할 때 걸어가던가 달려간다면 어찌되겠습니까?
좌선만 해서 참선만 해서 깨달아 부처가 된다면
산에 있는 바위들은 오래 전에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옛날에 제자에게 말했든
거문고에 비유하여 수행을 말했듯
모든 것들이 유효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 소식,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의 수행이 그렇고
육체로 태어나 육체로 살아가는 이 세상 육체로 살고 있으니
물질 또한 그러합니다.
너무 정신만 추구해서도 안되고 너무 물질만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물질과 정신이 서로 보완 완충이 되어야합니다.
거문고의 비유는 수행뿐만이 아니라 물질과 물질에서도
물질과 정신에서 정신과 정신에서도 그러합니다.
이렇듯 육체와 더불어 동행자관계 동반자관계로
육체를 끌고 가는 마음이 수행해 가는 닦아 가는
마음이 가는 길의 수행에 있어서 
육체의 육안(肉眼)만큼 마음의 심안(心眼) 매우 중요합니다.


        200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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