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이 모두 공함을 증득하면 법공을 확연히 안 것인지요? 법공을 알아도 또 나아가야 하는 길은 어디인지요? 삶의 업에 매이지 않는다고 하나 끝없이 펼쳐지는 이 삶은 무엇인지요? 맘에 와서 닿는 글을 보면서도 맘에 한가닥 의문이 생깁니다... 우문에 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쉽게 놓치기 쉬운 아주 좋은 질문에 감사합니다.
"반야심경"에서 공(空)을 의식 또는 인식, 증득하고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분들도 나오고 또는 자신은 도(道)를 증득하였다 하는 분들도 이 공(空)에서 오도송을 읊는 이들도 간혹들 있지요. 저는 이 공(空)을 증득함으로 비로서 도(道)의 길에 접어들었다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온(五蘊)이 공(空)함을 증득하지 못하고는 도(道)를 이루어갈 수 없다 하여도 틀리지 않다 할 것입니다. 그런 만큼 도(道)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온이 모두 공함을 필히 증득해야 하고 도(道)를 이루는데 첫 관문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하니 님이 질문하신 오온이 모두 공함을 증득하면 법공을 확연히 안 것인지요? 는 아닙니다. 오온이 모두 공함을 증득하였다 하여 법공을 확연히 안다 할 수 없으나 근기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하겠으나 유(有: 五蘊)에서 무(無: 空)를 안다고 하여 무(無: 空)를 앎과 같이 무(無: 空)에 있는 유(有:법공)를 확연히 안다고 할 수 있는 이 찾아보기 쉽지않다 하겠습니다.
유(有:五蘊)에서 무(無:空)를 알아다 하여 무(無:空)에서의 유(有:法)를 안다 할 수 없으며 무(無:空)에서 유(有:法)를 알았다 하여 유(有:法)에서 무(無:法空)안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법공을 알아도 또 나아가야 하는 길은 어디인지요?
(* 법공(法空)은 법도 법이 아닌 것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속 법공(法空)을 알았다 하면 법(法)도 법(法)이 아니고 법(法)이 아님도 법(法)이니 법념처(法念處)에 있다 하겠으나 제가 오념처(五念處)에서 밝혔듯이 대광념처(大光念處:=無量光)로 나아가야 한다 하겠습니다. 5념처와 대광념처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사견임을 밝혀드립니다. 대광념처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제 서재에서 "오념처"란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삶의 업에 매이지 않는다고 하나 끝없이 펼쳐지는 이 삶은 무엇인지요?
대광념처에 있는 분으로는 5념처가 전체를 꿰뚫고 있을 것이며 법념처에 있는 분이라면 4념처 전체를 꿰뚫고 있을 것입니다.
삶의 업에 매이지 않는다 하나 삶의 업이 있는 그대로 법이고 진리이지 진리나 법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니 진리와 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만큼 삶의 업에 매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업에 메이지 않고 삶의 업에서 진리와 법을 본다 할 것입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이 삶을 모르는 이들은 꿈을 꾸는 것과 같고 꿈속의 일로 허망하다 하겠으나 진리와 법에서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이 삶은 있는 그대로 진리 속 법의 삶이고 업의 삶이라 하나 업의 삶이 아닌 인과 연으로 이어지는 연기법의 삶이고 진리며 법이고
법이며 진리로 무량광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관계로 모든 것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하겠으나 보는 사람이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진리나 법을 보지 못한 이들의 입장에서는 법이나 진리를 알기 전에는 법과 진리로 드러난 것들이 꿈을 꾸는 것과 같고 꿈 속의 일로 허망하다 하겠으나 업이 되고 아니 되고을 알면 삶이 업으로 이루어지는 지를 알고 인연을 알면 업의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지를 알고 연기의 인연법을 알면 연기의 인연법에 의하여 생멸하는 지를 알고 진리를 알면 진리 속에서 인과 연에 의하여 진리로 생멸하는 지를 알고 법을 알면 법 속에서 인과 연의 법에 의하여 무생하는 지를 알고 무량광을 알면 무생하는 법이 무량광으로 드러나 있는 지를 알게되니
끝없이 펼쳐지는 이 삶은 있는 그대로 진리고 법이고 무량광으로 바라봄으로 바라보는 순간 드러난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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