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단상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칠통漆桶 조규일 2023. 5. 30. 07:24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  칠통 조규일


우리들 저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만남과 헤어짐의 이별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떨구어내고 떠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대 스스로 알고 모르고 떠나서 인과 연으로 인한 인연법과 연기법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법(有爲法)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연이 되면 만나고 만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고 물론 인연이 다하였다고 다 금방 떠나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인연 만들며 더불어 있기도 하고 또는 나쁜 인연을 지으며 더불어 있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언젠가 헤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만났다는 것은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헤어졌다는 것은 언젠가 만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억 속에 의식 속에 남아 있든 없든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게 되어 있다.


우리들 저마다 자기 자신이 살아온 만큼 이별 연습을 해 왔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어렵게 ...떠나 보내서는 아니 될 사람마저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고 말았다. 자의든 타의든... 그리고 헤어짐에 가슴 아파했다. 때로는 너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심한 생채기를 주기도 했다. 헤어짐으로 긁힌 흔적의 상채기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치유해 주었다. 치유된지도 모른 채 잊고 있고 잊어버리고 살아 왔다.


사랑했던 사람도 미워했던 사람도 그렇게 만났고 그렇게 보냈다. 만나고 헤어졌다. 없어서는 안될 사람도 보냈다. 보내고 나면 죽을 것만 같았던 사람도 보내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허기가 지고 허기가 지면 밥을 먹으며 살아왔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는다. 참 사람 얄궂다. 이렇듯 인생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지는 것이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 이렇듯 육체와의 인연이 다하는 날까지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진다.


그러다 육체와의 인연이 다하면 육체도 버리고 떠나 가야한다. 만났던 사람만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했던 육체도 버리고 떠나게 된다. 육체와의 인연이 다하면 나라고 했던 나의 육체도 벗어놓고 홀연히 가야하거늘 ...어느 것에 집착하여 부여잡고 흘러가지 않으려 하는가? 어떤 만남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부여잡고 흘러가는 세월의 강물 위에서 떠내려가지 못하고 괴로워하겠는가?


강물은 흘러흘러 바다로 간다. 굽이굽이 흘러 바다로 가는 강물을 보라. 만나서 섞이기도 하지만 만났다 헤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바다에 이를 때까지 흘러흘러 간다.


우리들 저마다는 멈춤 없이 흘러가고 있다. 세월이란 강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세월이란 강을 따라 흘러가다 보면 만나기도 하고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세월이란 강을 흘러가면서 더불어 함께 흘러왔다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고 서러워하거나 애타할 것 없다. 인연이 그만하면 그렇게 헤어지는 것이다.


강물 위에 떠 있는 부속물들 즉 업들은 흘러흘러 강물 따라 흘러가는데...흘러가면서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데...흘러가도록 하는 물이란 정(情)이 문제다. 다른 모든 물들은 다같이 흘러가는데 하나의 물방울만이 흘러가지 않으려 부여잡고 있으니 힘들고 괴롭다. 놓으면 편안한 것을 잡고 있어서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부여잡고 힘들어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마라. 놓으면 그만이다. 놓지 못하니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이 세상은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유위법(有爲法)에 있는 집(集)이다.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집은 항상한 것이 아니어서 변하고 바뀌어 반드시 부서지고 흩어져 없어진다. 인연으로 모인 것을 언제까지나 있게 하고자 해도 그렇게 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삶에는 반드시 다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법(有爲法)이다.


그러므로 인연 있는 이를 만나되 업의 인연은 풀고 더 이상 그 사람과의 업을 짓지 않으면 된다. 인연을 만났다고 하여 인연이 다하였는데 정이 남아 있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인연이 있어 만난 이를 언제까지나 함께 더불어 있게 하고자 해도 그렇게 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것이 인연이고 연기다. 이것이 법(有爲法)과 진리다.


법과 진리를 거역할 수 없다. 법과 진리를 거역하려고 하는 만큼 고통과 괴로움이 따를 뿐이다. 법과 진리에 순응하고 법과 진리를 따를 때 걸림 없이 편안하고 좋다. 법과 진리를 거역하려고 하는 것이 삼독(三毒: 탐 진 취)이다. 삼독심에 만족할 줄 모르면 육체와의 인연이 다하여 육체를 떠나갈 때 육체를 떠나가지 못하고 육체 주변을 맴돌게 된다.

 

왜 수행하는가? 놓아버리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인가? 걸림과 장애 없이 물같이 바람같이 자유자재롭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무엇이 수행인가? 걸림과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수행이다. 놓는 것이 수행이다. 수행한다고 하면 무엇에 집착하여 질질 끌려 다니겠는가? 집착에 정에 끌려서 어디까지 끌려 다닐 것인가? 육체와의 인연이 다할 때까지 끌려 다닐 것인가?


육체와의 인연이 다하는 날 아무리 귀하고 소중해도 모두 다 놓고 떠나가야 한다.
육체와의 인연이 다하는 날 홀연히 떠나가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놓고 떠나가는 것을 배워 익혀야 한다. 이것이 수행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육체까지도 가볍게 내려놓고 홀연히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행이다.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 다한 인연에 업에 정에...무엇에 집착하여 끌려다니겠는가?


내려놓아라. 내려놓을 것이 없을 때까지 내려놓아라. 그리고 내려놓으려고 했던 그 마음까지도 내려놓아라. 그러면 편안할 것이다.


2009. 12. 26  08:42


오늘이 가야 내일이 오고
내일이 가야 올해가 가고
올해가 가야 내년이 온다.

이와 같이 흘러보내야 한다.
흘러보내지 않고 오는 것은 없다.

오늘을 잡고 있으면 내일이 오지 않고
오늘을 보내며 어제에 묶여 있어서는 내일이 없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이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