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어둠과 밝음 그리고 빛이라 함은

칠통漆桶 조규일 2023. 11. 25. 07:26

정이 넘치니 정이들고
정이 드니 정이 넘치는 


정진이란 
위로 한 걸음씩 나아가며
공덕을 쌓는 것
공덕이란 
스스로를 맑히고 밝혀서
주변을 맑고 깨끗하는 것
정화.

2012. 11. 27 04:00 칠통 조규일


도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도반이기를.....

12/26 칠통 조규일



어둠과 밝음 그리고 빛이라 함은 / 확철 칠통 황금종려 조규일



부정적인 생각이나 부정적인 의식은 어둠이고 탁함이며 긍정적인 생각이나 긍정적인 의식은 맑음이고 밝음이다. 그리고 꿈과 희망은 빛이다.

나쁜 생각이나 나쁜 의식은 어둠이고 탁함이며 좋은 생각 좋은 의식은 맑음이고 밝음이며 좋은 마음은 빛이다.
물든 마음은 어둡고 탁함이며 물들지 않은 마음은 맑음이고 밝음이며 자등명은 빛이다.

생각하고 의식하여 행하되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의식함은 탁함이고 어둠이며 생각하고 의식하여 행하되 자기 자신보다는 주변을 생각하고 의식함은 밝음이고 생각하고 의식하여 행하되 업을 생각하고 의식함은 빛이다.

업을 생각하고 의식함은 밝음 속 어둠이고 탁함이며
업을 관하며 살펴보고 업을 하나하나 밝혀봄은 맑고 밝음 속 밝음을 드러내며 빛으로 가는 길이고 업에 쌓여 있는 업(식)덩어리 속에 있는 자등명(自燈明)은 빛이다.

업으로의 삶은 어둠이고 탁함이며 업이 다한 불성의 자성불이 드러남은 밝음이고 이때 자등명은 절대자로 빛이다.

자등명을 생각하고 의식하며 자등명이란 존재적 존재력을 생각 의식하는 생명의 힘은 빛이고 드러냄은 밝음이고 이것들을 등진 것은 어둠이고 탁함이다.

자등명이란 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 체 법성(法性)을 말하고 법성을 말하되 불성(佛性)과 같다고 하거나 불(佛)을 말하되 불성을 말하면서 자등명을 말하지 않거나 불을 말하고 불성을 말하며 자성불을 말하되 자등명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는 어둠이고 탁함이며, 불을 말하되 불성을 말하고 불성을 말하되 자성불을 말하고 자성불을 말하되 자등명을 말함은 맑음이고 밝음이며 불은 불성에 있고 법은 법성에 있되 법과 불이 같지 아니하고 법성은 불성에 있지 않고 자등명에 있다고 할 때 자등명은 빛이다.

어디에 있든 있는 처소(處所)에서 밝음을 보고 빛을 보고 나아간다면 밝음에 있고 밝음으로 나아가고 빛으로 가는 길이다 하겠으나 빛을 등지고 밝음을 등지고 탁함이나 어둠을 보고 있다면 어둠으로 들어가고 있고 빛을 잃은 어둠의 길을 걸어가는 길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외관상 살펴본 것이고 이제는 자기 자신 안에 들어와 자기 자신을 살펴볼 때의 어둠과 밝음 빛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머리부분의 생각이나 의식(현재의식)을 쉬게 되는 것을 선(禪)에 들었다 할 것이며, 평상시 머리가 맑다.

신(神:정신이라고 하는 신)이 밝다 하는 것은 생각이 많지 않거나 생각이 쉬고 있는 것이고 무엇인가 생각하도록 하는 의식이 복잡하게 활동하지 않고 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과 의식을 쉬는 선(禪)에 들었을 때 맑고 밝다할 것이며 생각이 많고 의식이 여러 가지 일들로 복잡할 때 탁하다 어둡다 할 것이다.

머리가 쉬었다 하되 생각이나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생각하고 의식하되 마치 맑은 하늘에 구름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아서

머리부분이 텅 비어 공(空)하고 텅 빈 허공과 같아서 걸림 없는 하늘과 같다할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선(禪)에 들었다 할 것이다.

수행을 시작하여 생각을 쉬고 의식을 쉬고 머리를 쉬어서는 신(神:머리부분의 신)이 맑고 밝아야 한다. 우선 먼저 선(禪)에 들어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선(禪)에 들었을 때 머리부분의 신(神)은 빛이고 신(神:머리부분 신)이 밝힘으로

의식과 생각을 환히 밝혀 꿰뚫어 의식과 생각을 명료하고 분명하게 드러냄을 밝음이라 할 것이다.

간혹 보면 머리부분의 신(神)은 밝되 의식과 생각이 탁한 분들이 있고, 신도 밝고 의식도 맑고 생각이 어둡고 탁한 사람이 있고 신의 부분 의식부분 생각부분 전부다 탁하거나 어두운 사람이 있고 신의 부분 의식 생각부분 전체가 맑고 밝은 분들이 있다.
수행자는 신의 부분 의식 생각부분 전부 다 맑고 밝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꼭 좌선 수행을 하지 않을지라도 일상 속에서도 선(禪)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생각에 처(處)해서는 생각을 쉴 수 없으며 의식에 처(處)해서는 의식을 쉴 수 없으며 신의 부분인 뜻과 의지에 처(處)해서 머리부분을 쉴 수 없고 머리를 쉬지 않고서는 마음에 처소(處所)를 두고 두어서는 마음을 쉴 수가 없다.
이때 마음과 신(神:머리부분의 신)은 빛이고 의식과 생각은 밝음이다. 빛을 잃으면 밝음을 잃고 밝음을 잃으면 어둠이 있게 된다. 빛이 되는 마음과 신이 어두워서는 의식이나 생각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뜻과 의지 의식과 생각을 밝음에 있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신(神:머리부분의 신)이 맑고 밝은 빛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생각 의식 뜻과 의지에 처소를 두기보다는 마음에 처소를 두고 마음의 뿌리를 제거하고자 한다면 생각을 쉬어 의식에 이르러야 하고 의식에 이르러서는 의식을 쉬고 마음에 이르러야 하고 마음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쉬고 마음을 쉬어서는 마음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마음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쉬어서 고요해야 하는데 마음이 쉬어서 고요할 때를 정(定)에 들었다 할 것이다.

꼭 수행이라는 수행을 하기 위해서 좌선이나 참선을 할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정(定)에 들어야 비로써 마음이 쉰다 할 것이다.

머리부분이 텅 빈 허공과 같고 하늘과 같을 때 이제는 가슴부분으로 내려와서는 마음에 닿게 되고 처(處)하게 되는데 이때 마음에 이르러서는 혼탁한 마음이 텅 비어 공(空)하고 텅 빈 허공과 같아서 걸림 없는 하늘과 같을 때 정(定)에 들었다 할 것이다.
정(定)에 들었을 때 비로써 마음이 하늘과 같이 맑고 밝다할 것이다.

이때 마음은 텅 빈 허공이 되어 맑고 밝음으로 업(식)덩어리가 드러나고 업(식)덩어리가 드러나면서 업(식)덩어리 안에서 업(식)을 뚫고 나오는 밝음을 빛이라 할 것이며

이 밝음의 빛이 나오는 곳을 통하여
 업(식)을 밝혀 확연히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할 것이다.

간혹 보면 마음이 탁하여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깜깜한 밤인 듯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어둠만이 보이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안개 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구름이 오락가락 하듯 보이는 이가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맑은 하늘과 같이 맑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수행자가 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맑히고 밝혀서는 마음을 쉬게 하여 정(定)에 들어야 할 것이며
꼭 수행 정진을 하지 않을지라도 일상에서 정(定)에 들어 마음이 쉬어야 하겠고 마음이 쉬어서는 삼매(三昧)에 들어야 하겠다.

이때 삼매는 빛이고 선정(禪定)은 밝음이다. 빛을 잃으면 밝음을 잃고 밝음을 잃으면 어둠이 있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 처소(處所)는 마음이라 할 것이다.

머리부분이 쉬고 마음이 쉬어야 하늘같은 사람 텅 빈 허공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선(禪)에 들고 정(定)에 들어 있는 사람을 텅 빈 허공과 같이 맑고 밝은 사람이라 할 것이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하늘같은 사람 텅 빈 허공과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사람은 맑고 밝은 사람이되 빛이라 할 수 없고 또 맑고 밝음에 머무르되 업(식)덩어리가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 어둠에 있는 사람이라 할 것이며

텅 빈 허공의 하늘과 같은 곳에 있되 텅 빈 허공과 같은 곳에 업(식)덩어리가 있는지를 아는 사람을 맑고 밝음이라 할 것이며 이때 업(식)덩어리는 빛이라 할 것이다.

평상시에도 선정(禪定)에 들어 텅 빈 허공의 하늘과 같이 하되 업(식)덩어리를 관(觀)하여 들어가되 관하는 것을 어둠이라 할 것이며 관하며 업(식)덩어리를 드러내는 것을 밝음이라 할 것이며 이때 드러나도록 하는 것(심생기(心生氣)와 자등명)은 빛이다.

이렇듯 선정(禪定)에 들어서 업(식)덩어리를 관하여 업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삼매(三昧)다.

이러한 삼매(三昧)를 좌선 참선 수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좌선 참선 수행을 하지 않을지라도 평상시에도 삼매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자등명은 빛이고 업(식)은 밝음이다.

빛을 통하지 않고 업의 밝음은 있을 수 없고 업의 밝음 없이 업의 무명(無明)을 몰아낼 수가 없다.

빛을 잃으면 밝음이 없어서 밝음을 통하여 업(식)을 밝게 밝혀 드러낼 수가 없으며 업(식)을 밝게 비춰볼 수 있는 밝음 없이 업으로 인한 무명을 밝힐 수 없을뿐더러 자등명의 빛과 업(식)을 밝혀보는 밝음을 잃으면 어둠이 있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업(식)덩어리에 이르러서 업(식)이라고 하는 제6, 7식 8식 9식을 뚫고 들어가는 삼매에 있어서 업은 어둠이고 업을 뚫은 텅 빈 허공은 밝음이고 자등명은 빛이다.

삼매를 통하여 업을 뚫고 들어가 업이 텅 비고 비어서 업(식)덩어리가 허공과 같이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이 자등명 홀로 시방(十方)을 비출 때 자등명은 빛이 되고 자등명의 빛이 드러나는 것은 밝음이 되며 자등명의 빛이 미치지 않는 곳은 어둠이 된다. 그리고 이때 처소(處所)는 자등명이란 빛이 아니라 빛이 드러나는 것 자성불(自性佛) 불(佛)에 있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머리의 생각에서 일어나고 의식에서 일어나면 뜻과 의지에서 일어나고 마음 작용에서 일어나고 업(식)덩어리가 떨어지면서 업(식)을 통하여 일어나되 자등명이나 자등명이 비추는 밝음을 통하여 일어나지는 않는다.

밝음이 아닌 빛이 처소가 되기 위해서는 불이나 자성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 되고 자등명에 이르러 있을 때 비로써 불(佛)도 자성불도 아닌 빛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맑음과 밝음 그리고 텅 비어 공(空)한 가운데 빛으로 인하여 밝음과 맑음이 드러나고 어둠이 밝혀짐으로 빛으로 인한 밝혀짐과 드러남의 행으로 신통은 일어난다고 하겠으나 신통은 신통이 아니라 빛이 밝힘과 밝힘으로 인한 맑음과 맑음으로 인한 어둠 사이에서 뒤바꾸는 형상의 행을 보거나 이루어짐을 신통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어둠에서 맑음과 밝음 그리고 빛의 행에 있어서 걸림 없고 장애 없는 가운데 걸림과 장애를 뛰어넘거나 제거하는 행을 신통이라 하는 것이로되

신통은 신통이 아니라 행이되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있는 처소에서의 빛으로 행이다. 행하되 행함에는 빛이 있다.

행하는 처소가 어디이든 행함은 걸림이 없는 가운데 이루어짐으로 이것을 바로 빛이라 할 것이며

빛으로 행하는 처소가 어디든 행하기 위해서 모두 다 환히 밝혀 알아서 행하게 되는 처소를 밝음이라 하는 것이다.

어둠은 행하되 빛과 어둠을 잃은 것이 어둠이고 밝음은 행하되 환히 알아서 행하는 것이며 빛은 환히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으로 가는 길은 행하되 행하는 모든 것을 전혀 모르고 행하는 것이며 빛으로 가는 길은 행하되 행하는 모든 것을 환히 알아서 가는 길이다.

2008. 10. 18 13:21 칠통 조규일




기운차게

운(運)하여

명(命)을 바꾸는

명(明)을 밝혀라.


운명(運命) : 命을 움직여 바꿔라

그렇게 운명은 바뀔 수 있는 것이 운명이고

운명(運明): 밝음을 움직여 바꿔라.

그렇게 너의 본래 참 자아를 바꿔 가라.

밝고 맑고 환하디 환하게


명은 명이 아니라

빛이고 빛이되

각기 저마다의 본연.

 
확철 칠통 조규일 2017. 07. 27 08:29

 

서원을 갖어라.

이 생에 기필코 가고야 말겠다고


이생에 가다 가다가 못 가면

그 다음 생에는 꼭 가고야 막겠다고 다짐을 하라.

 
그 다음에 못가면

그 다음에 반드시 가고야 말겠다

각인을 하라.

 
어찌되었던 가까운 날에 가고야 말겠다.

다짐을 하고

행하라.

 
한시도 잊지 않게

다짐을 하며 가라.


오라.

본향

본래고향...

2017. 07. 22 07:39 칠통 조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