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통하는 것이어서, 열매 씨, 수행

칠통漆桶 조규일 2023. 12. 8. 07:26


오직 통함과 통하지 못함에 있으니

6근과 6경 6처 18계
저마다 각기 하나로 통하는 것이어서
그 어느 것에서든 통하면 제일이다 하겠으나

통하지 못하면
그 어느 것이든 걸림과 장애의 산물이고
무명을 이루는 것이라 하겠다.

2007. 02. 28 07:58 칠통 조규일


열매의 씨 350 / 칠통 조규일

 
소리에 귀가 있고
입 속에 말이 있다.
말 속에 생각 있고
생각 속에 말이 있다.
 
산 넘어 산이고
물 건너 물이다.

물 속에 바람일고
바람 속에 휘날린다. 꽃향기
 
뿌리 없는 사람의
꽃이 허공에 피어
찬란히 태양만 빛나니
열매가 없다.

 새싹은 열매의 씨 속에서
저절로 나나
구름 없으면 비가 없고
비 없으면 만물이 자라지 못한다.


수행은 / 칠통 조규일


수행단체나 
수행하는 곳에 가면
제때 제시간에 수행을 하면서도
혼자 집에서 수행할 때는
왜! 그러하지 못하는가?
혹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가 보아주었으면 하면서 수행하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보라.

수행은 누구하고의 약속이 아니고
누구하고 함께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스스로와의 약속이고
혼자서 가야하는 길이며
스스로 닦아가야 하는 것

수행이다.

수행(修行)은
나를 닦아 가는 것이다.

나의 본성에 묻어 있는 
나의 본성을 덮고 있는 
나의 업장을 닦아가는 것이다.

본성이란
거울에 쌓여 있는 먼지의 티끌의
업이란 알고 있는 것 아는 것
무의식 잠재의식 의식이란
티끌이고 먼지인 업을 닦는 것이다.
이것들로 인하여 일어난 생각을 정리 닦아 가는 것이 수행이다.
수행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나를 닦아 가는데
나를 떠나서 수행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나를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는 수행은
나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내가 나를 인식할 때
내가 나를 바라볼 때
어디든 내가 있지 않은 곳은 없다.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수행처다.
나를 떠나 따로이 수행처는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외 다른 수행처를 찾는 것은
내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고
생각이 흔들리기 때문이니

마음을 굳게 잡고
생각을 고요히 하고
내 안의 수행처에서
언제 어디서나 수행해 가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수행해 가야한다.

2005. 7. 7. 08:27 칠통 조규일
확철 칠통 황금종려 미발표작 중



수행, 이것 알았으면 좋겠다  / 확철 칠통 명철 조규일

 
오늘은 늘 강조했던 이야기를 또 다시 하고 싶어서 이글을 쓴다.
 
많은 수행하는 사람들이
현실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거나
현실 속에서 공허함을 느낀다거나
현실에 충실하지 못한다거나
인생은 단순히 먹고 살고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인가?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생각,
지금과 같이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
지금의 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것과 같이 살면
인생을 허비할 것 같은 생각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진리 탐구를 하는 것이
진리를 찾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란 생각

어느 정도 생각이 깨어서는 나의 본성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생각

깨달음을 얻으면 무엇인가? 엄청난 일을 할 것
같은 환상을 가지고

현실이 즐겁지 않고 불행하거나 고통스럽다보니
현실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현실을
잠시 피해 있으려고 하는 마음
수행을 통해 현실을 바꿔보려고 하는 마음
등등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을 수행이란 것을
시작하고
수행할 곳을 찾아 가거나 수행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 수행을 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될
것으로 믿고 알고

지금은 비록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나중은 좋을 것이다.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는 괴롭더라도 육체와의
이별을 하고
죽어서는 행복해야하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이와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수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알고서는
이것들을 이용하며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듯 생각과 마음과 긁어주고
현실을 좋아주게 해주겠다는 명목 아래
여러 가지를 해주려고 하고 또 해주면서
수행 단체나 수행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이것을 역이용해서 생각 이상들의 금전을 갖다 주게 만든다.


수행을 시작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이용해서
그 약점을 역이용해서 금전을 갈취하되 갈취하지 않는 척하며

내려놓게 한다는 식의 방법으로 금전을 가져다주게 한다.

수행하는 단체나 수행을 가르치는 사람에 빠져 있을수록 물 불 가리지 않고 가져다준다,

 

있는 것 다 가져다 주고서도 부족하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변에서 끌어당길 수 있는 한 끌어당겨다 주고, 
결혼한 사람은 이혼을 불사하고라도 위자료를 가져다 받치려고 이혼사람들도 생긴다. 
자기 자신만 탕진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경우에는
형제자매들 및 부모님 친구 등에게 손 벌려 가져다 끌어당길 수 있는 한도까지 끌어당겨서는 갔다주고 더 이상 끌어당길 수 없을 때가 끌어당겨서 갔다주고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하고서는 더 이상 끌어당길 수 없을 때가 되어서는
수행하던 단체나 수행을 가르치는 사람으로부터 외면 당하게 된다. 
아차 싶어 하지만 때는 늦은 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수행단체 및 수행을 가르치는 사람 밑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서는 나오게 된다. 
일종에 피를 다 빨아먹고서는 더 이상 빨아 먹을게 없으니 내팽겨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된다. 결혼하기 전 일찍 시작한 사람들은 혼자이다 보니 수행하는 곳 단체 및 가르치는 사람이 구세주라는 생각에 빠져들어서는 결혼 정년기를 놓치거나 해서 빠져나올래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나오자니 나와서 할 것이 없고 그 속에 있자니 찬밥 신세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버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인생 말아 먹고 인생 종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처음은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오히려 인생을 망친 것이다. 이런 사람들 허다하다. 

그 단체나 가르치는 사람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이전에는 이와 같고

빠져나와서는 한 동안 또 자기 자신이 빠져나와서는 공허함과

정말로 가르쳤던 사람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지 라는 생각과 마음에 힘들어 한다.

결혼해서 공부하는 경우 배우자 및 자식들을 소홀하게 된다. 수행단체 및 수행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공부할 때는 인생에 가장 보람 있고 뜻있는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최선이고 가장 잘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다가 속았구나 싶을 때는 이미 가정은 파괴되어 있거나 배우자 및 자식들에게는 불신을 심어주고 가족끼리 장벽을 만들어 좋지 않은 상태가 되어 있는 경우들이 많다.

왜 이와 같이 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것은 자기 자신이 허황되기 때문이며
현실을 도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이 현실에서 찾지 못하는 환상을 수행이란 것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현실이 싫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싫다고 현실을 피하여 어디를 갔다 와도 현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현실은 변해져 있지 않다.
현실을 변하게 하고 싶고 자기 자신에게 닥쳐있는 현실을 좋게 하고자 한다면
현실에서 바꿔야지 현실을 벗어나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현실에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현실과 내가 어우러져서 현실과 소통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실에 적응할 수가 없고 현실은 언제나 고통과 괴로움의 대상이고 고통과 괴로움의 대상이 현실이 되고 주변 사람들이 된다.

이걸 알아야 한다.
수행을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업을 내려놓거나 자기 자신을 맑고 깨끗하게 해서 자기 자신이 맑고 깨끗해지는 것이 그 첫 번째이고
자기 자신이 업을 내려놓은 만큼 수행해서 맑고 깨끗해진 만큼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점차적으로 좋아져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수행되는 만큼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 넓어져 가는 것이다.
수행을 하면서 지금도 즐겁고 행복하며 나중에도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지금을 담보로 나중이 좋아지는 것만이 아니다. 
지금의 담보 없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현실을 부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이걸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