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믿음, 생명 1,2,3...

칠통漆桶 조규일 2023. 12. 13. 07:32


믿는 것으로부터 해탈 완성할 일이다. / 확철 칠통 명철 황황 꽃황철 철황 철꽃황 철 조규일

 
믿음이란 달팽이처럼
처음 믿음을 시작으로
점점 믿고자 하는 것을 믿음으로
믿음 깊게 들어와서는
믿음의 끝
정점에 들어와서는 하나가 되었을 때


믿는 것과 하나가 되어
공명현상이 일어난다.
 
공명현상이 일어나는 순간
믿음으로 인하여 폭발 해탈하게 된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무엇을 믿는가?
오롯이 믿는가?

 세월은 흘러가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과거는 흘러갔다
지금 여기 나는 있다.
 
지금은 또 흘러가고 있고
어느 날 문득 되돌아
후회 없는 믿음을 갖고 깨어날 일이다.

나를 죽이고 나를 버리고 바뀌고 변하며
나날이 매순간 깨어날 일이다.

믿는 것으로부터 해탈 완성할 일이다.
와~ 드디어 완성하셨습니다요.

 2018. 11. 06 11:28 칠통 조규일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의구심이 생기기 때문이고
의심이 생기는 것은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불신하기 때문이다.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가는 날이 되소서.

06.12.07 08:23
칠통 조규일 / 2005년 12월의 짧은단상 중에서


로(路) / 칠통 조규일

 
어느 길로 가야
인생 길
바르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일까?
길일까요?

믿음은
밖의 대상보다
자기 자신 마음 안의 대상에 달려 있다.
마음이 열려 있는 만큼
믿게 되고  
믿음이 있게 된다.

2006  04/05 칠통 조규일


생명 1 / 칠통 조규일

 실오라기 같은 생명, 끈질긴 것은 생명은
그 자체가 본래 불생(不生)이다.
나고 죽음이 없다.
있는 그대로이다.

본래 본성 자체를 떠나 있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변하고 바뀌고 돌고 도는 것만이 바뀌고 변하고 돌고 돌뿐
언제나 여여하게 있는 그 자체로 있다.
이것이 근본 생명이다.

생명은 영혼 불멸이고 영생불사(靈生不死)다.
난 어디서든 혼자
더불어 함께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너와 나 우리는 하나다.
이것에 생명이다.
 
생명은 있는 그대로의
자체 본성이고 본래이며
너와 나 우리다.

생명은 여여하다.
그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다.
걸림과 장애가 있다면
너와 나 우리다.

생명에는 흔적이 있다.
생명에 흔적이 있다면
너와 나 우리가 다녀간 흔적이 있을 뿐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소중하며
또한 모두의 신뢰고 믿음이다.
생명은 모두의 종교이고 기본이며 근본이다.
종교는 생명의 기본적이며 활력이다.

생명은 나 홀로 여여하다
나 홀로 있는 본생이다.
이것이 생명이다.
 
수없이 변하고 바뀌며 돋아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은
모든 생명은 근본 바탕은
이러하다.

 이것을 아는 이
자기 자신의 본체를 알리다.

2022. 04. 15 07:25 이제 되었습니다. 카페 일 보십시오.


생명 2 / 칠통 조규일

운동하며 어제 보았던 철쭉 봉오리를 보니 생명2를 쓰라고 해서 써본다.

 생명이란 것이 하루살이도 되었다가
한 계절 살이도 되었다가
반년도 살이도 되었다가
일백년 살이도 되었다가
수천억년 살이도 되었다가
한순간 불이 꺼지면 사라지는 것처럼
홀씨로 흩어져 세상에 두루해
과거 미래 지금을 다 직관해 보지만
뽀족하게 이거다 할 것이 없으니
무엇에 걸리어 생명이라하겠는가?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지고 살아가는
흔적을 따라 생명이라고 하지만
변하고 바뀌고 바뀌고 변하는 순간 순간
드러나 보이는 것을 생명이라고 할 뿐
생명은 흔적도 자취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천체다.
 
생명은 없는 곳 없이 두루 해있으면
생명은 내가 있고 없고 상관없이
예전에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생명은 드러낸 형상의 형태를 달리했을 뿐
언제나 생명은 있었다.
지금도 있고 과거에 있었고
다가오는 영원한 미래에도 끊임없이 있을 것이다.
너와 나 우리의 생명은
이것이 실체다.

 생명은 온화하고 청순하며
맑고 깨끗하며
그 어느 것에도 물들어 있지 않아
해맑다.
 
참으로 맑고 밝다.
환하디 환하다.
이것이 생명이다.

생명
너와 나 우리는
하나로 한몸이다.

이것이 빛이다.
생명은 만천하의 빛이다.
온 세상천지는 빛으로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너와 나 우리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
천체 가득 두루 해있다.
 
2022. 04. 16 12:03 예 이제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명 2를 쓰셨습니다만 3도 쓰시랍니다.

 
생명 3 / 칠통 조규일
 
꽃이 꽃이고
빛이 빛이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우리가 너고 나며
나와 너가 우리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 한몸으로
온 천하다.

천체 한 덩어리 하나로
너와 나 우리
모두다.

이것이 생명이다.
생명은 단순하지 복잡하지 않다.
단순한 것은 생명이고
복잡한 것은 너와 나 우리다

맑고 깨끗하니 물들지 않는 것은 생명이다.
물들은 것은 너와 나 우리다.
 
생명이라면 너와 나 우리는
어찌 물들었을꼬?

물들음은 세월이다.
세월의 흔적이다.
밝지 아니한 쪽으로 세월이다.
맑고 깨끗함은 밝은 쪽으로 세월이다

어두운 무명은
밝지 않은 쪽으로의
오랜 세월 동안 걸어간 발자취이며
흔적의 상처다.

깨어나 있음은
밝은 쪽으로 걸어나온 발걸음이다.

생명은 밝고 환하다.
순수하고 온순하며
빛이고 꽃이다
만천하의 빛이다.

2022. 04. 16 12:25 이렇게 생명을 완성하셨습니다. 칠통 조규일

 
생명 4 / 칠통 조규일

 생명 너는 나다.
내가 곧 생명이다.
 
어찌되었던
난 하나의 생명이다.

 어떤 존재 존재자가 되었던
이것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는가?

보이든 보이지 않던 모든 존재 존재자들이여!
여러분들은 각기 저마다 하나의 생명으로
모두 다 하나같이 이와 같다.

이제 시간 써주시면 되겠습니다. 2022. 04. 16 12:30 칠통 조규일


믿음에 대하여 / 확철 칠통 황금종려 칠통 조규일


믿음이란 마음이 열려 있음이고 불신이란 마음이 닫혀 있음이다.


믿음이란 마음이 열려 서로 통하여 있음이고, 불신이란 마음이 닫혀 서로 막혀 있음이다.


통하면 믿게 되어 있고 막히면 믿지 않게 되어 있다.

 

믿지 않고 통할 수 없으며 마음이 열려 있지 않고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을 수 없다.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있고 없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어있지만,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불신하게 된다.


마음이 열려 있으면 받아들이게 되지만 마음이 닫혀 있으면 받아들이지 못한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하기 이전에 마음이 열려 있느냐 마음이 닫혀 있느냐의 문제이다.


믿음은 자기 자신 안의 힘과 밖의 힘을 서로 연결시키는 내면의 연결고리다.


믿음이 있어야 받아들이게 되고 믿음이 없어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우리들 저마다 어떤 사람에게든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은 믿지만
열려 있지 않은 사람은 믿지 못하게 된다.


믿지 못해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볼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믿게되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 동화되어 함께 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삶에서 바람직한 모든 것을 향해
문을 열고 마음을 자극하여 잠에서 깨어난다.

바른 믿음은 자기 자신을 바르게 인도하고 바르게 나아가게 하지만
잘못된 믿음은 잘못된 믿음으로 세뇌 당하게 되고 집단적 최면에 걸려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바른 믿음은 믿음으로부터 벗어나서도 바르게 갈 수 있어서 믿었던 사실에 후회가 없지만 잘못된 믿음은 믿음으로부터 벗어나서도 인생을 낭비하거나 허우적거리게 되어 잘못된 믿음으로 인한 상처 입은 상처들이 따라다니며 괴롭히거나 후회하게 한다.

믿음이란 무조건 믿고 따르며 맹종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법과 진리,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지혜를 믿고 의지하며 법과 진리와 이치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말한다.

바른 믿음이란 법과 진리 이치를 벗어나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믿음이고 잘못된 믿음이란 법과 진리 이치를 벗어나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바른 믿음이란 자기 자신 밖에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힘이며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무명을 밝혀주는 빛이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로써 상하관계가 아닌 동동한 관계다.

잘못된 믿음이란 믿는 대상으로부터 분명한 상하관계가 있어서 권위와 복종이 있고 복종하며 따르며 세뇌 당하고 세뇌 당하여 믿는 대상의 노예가 되어 가는 믿음이다.

믿음은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내가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실체들에 대한 확신이다.

믿음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못되거나 거짓된 일들이 말해질 때 바로잡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믿음은 삶에서 바람직한 모든 것을 향해 문을 연다. 잠자는 의식을 깨우고 자극한다.

믿음은 사랑이다. 사랑 없는 믿음은 없다.

무엇에 대한 사랑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 믿음은 사랑이고 자비다.

바른 믿음은 빛이고 길이다.

잘못된 믿음은 악마고 어둠 깊음이다. 믿되 잘못된 믿음을 갖지 말고 바른 믿음을 갖고 믿으라. 잘못된 믿음은 어둠의 악마가 인도하지만 바른 믿음은 광명이 인도한다.

잘못된 믿음에는 사탕처럼 달콤함이 있지만 바른 믿음에는 맛이 없어 밋밋하다.

믿되 달콤함이나 맛을 쫓아간다면 잘못된 믿음으로 빠지기 쉽고

믿되 약간의 힘듦이 있고 약간의 고통스러움이 따르며 밋밋하다면 바른 믿음이라 할 것이다.

무엇에 대한 믿음이든 믿음이 없었다면 단 일초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것이 어떤 믿음이었던 간에 매순간 자기 자신을 지탱시켜온 것이다.

잘못된 믿음은 항시 변하거나 그대가 힘들 때 그대를 버리지만

바른 믿음은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대가 힘들 때 그대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믿고 아니 믿고는 누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

2009. 12. 23 17:39 칠통 조규일


이래서 마음이 활짝 열려야 한다. / 칠통 조규일


마음을 열린 것과 열리지 않은 것의 차이
왜 마음을 열어야 하는가?
마음을 연다는 왜 중요한가?

난 지금까지 마음이 열리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기운이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흐르고
수행이 많이 된 사람들이나 조사 및 불보살님들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전해주려는 모든 것들이 마음이 열려 있으면
그대로 전달되어 좋다고 말했다.
사실 이것도 중요한 거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 열려 있음으로
말하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행들을 있는 그대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이라 할 것이고
자기 자신 나 외에
다른 이들의 말을 말하면 말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그러한 말들을 믿게 되고
믿음으로 서로 간에 더욱 친숙해지고 서로간에 장애나 걸림이 없게 되고
장애와 갈림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는 마음이 열려 있었으나
자라면서 마음의 문을 조금씩 닫기 시작해서는
자라서는 마음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모르게 되었고
사람들을 대함에 선별적으로 마음을 열고 닫는다.

믿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닫으며
믿는 사람이 말을 하면 어떤 말을 하든
말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인식하고 생각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이 말을 하면 옳고 그름을 떠나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 자신의 생각 내지는 의식의 잣대를 가지고
자기 자신의 경계 안에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왜곡시키기 일쑤다.

마음이 열려있고 닫혀있음에 따라
이렇듯 주변의 것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며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닫혀 있는 만큼 마음에 닿지 않을 것이고
마음이 열려 있으면 열려 있는 만큼 마음에 와 닿을 것이며
마음 활짝 열려 있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마음이 열려 있음과 닫혀있음의 차이는
자기 자신 나 외의 다른 이들에 대한 말들에 대한 행해 대한
있는 그대로의 믿음과의 거리 상의 차이가 있고
주변의 상대방에 대한 믿음의 차이는
자기 자신 안으로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믿으며
그럼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고 긍정적인 사고는 그대로 행으로 이어지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신뢰와 믿음으로 이어지고
믿음과 신뢰는 서로 간에 허물의 벽이 어느 정도냐의 차이로 나타나고
허물의 벽의 차이는 장애와 걸림의 차이로 나타나고
이렇듯 나타나는 것들은 마음이 어느 정도 열려 있느냐의 차이로 이어진다.

마음이 열려 있으면 마음이 열려 있는 만큼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며 말하지만
마음이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걸림 없이 마음이 열려 있다면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고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장애와 걸림 없이 마음이 활짝 열려 있다면
누군가 말하면 말하는 대로 믿게 되지 않겠는가?

물론 사회를 살다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다 보니
"나"라고 하는 "나"에 빠져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에..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는 생각에...
보호막을 치고 그럼으로 속고 속이는 과정들이 생기고
그럼으로 모두 다 자기 같은지 알고 또는 모두 다 자기와는 다른 지 알고
자기 자신과 통하는 정도의 차이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믿음과 신뢰 속에서 선별적으로 마음을 열고 닫으면 산다.

출가한 수행자도 수행자지만
재가수행자는 더 더욱 마음이 열려 있어야한다.
마음이 열린 만큼 보이든 보이지 않든 위에서 아래 흐르는 물처럼
삼투압현상이 일어나듯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을 전해 받기 위해서 중요하다.
이것들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행자가 마음이 열린 만큼 열린 마음에 신뢰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마음이 열린 만큼 접하게 되는 선지식들의 말이나 글들을 믿게 되고
믿음과 신뢰가 있는 만큼 받아들이게 되고
받아들여서 있는 그대로 자기 것 화되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수행이 되게 하는 것은
초발심이고 신심(信心)이고 대분심이다.
수행자가 수행하는데
왜 수행하려고 하는 지
수행하려고 하는 뜻과 의지의 초발심이 없이 수행한다면
수행은 지지부진할 것이고
수행한다고 수행하되 바르게 수행하기가 쉽지 않으니
왜 수행하려고 하는 의 목적과 뜻 의지가 분명해야 하고
그 분명한 것으로 초발심으로 수행해 가야지
그 초발심이 하나의 디딤돌이 되어 나아갈 수 있으며
초발심을 기본 틀로 하여 수행해 감에 있어서
먼저 간 수행자들의 말과 글들 선지식 및 조사...부처님의 말씀을 토대로 가야 한다.
수행하는 수행자가 선지식이나 조사 먼저 가는 수행자의 말과 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수행이 이루어지겠는가?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수행은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방향을 잃은 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수행해 가는 것과 같다할 것이다.
먼저 가는 수행자의 말에 대하여 믿음이나 신뢰가 없으면
선지식이나 조사의 말과 글들을 기본으로 삼아 믿음과 신뢰로 수행해 가라
선지식이나 조사의 말도 믿음과 신뢰가 가지 않으며
부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그 말씀들을 토대로 수행해 가라.
그러면 그 믿음이 크면 큰 만큼 수행해 가게 할 것이고
믿음이 적으면 적은 만큼 수행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믿음과 신뢰는 마음이 어느 정도 열렸고 닫혔는가 이어지고
마음이 어느 정도 열렸고 닫혔느냐는 믿음과 신뢰로 이어진다.

마음이 활짝 열려있으면
누가 말을 하든 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렇게 인식한다.
인식하고서는 의문이 생기면 그 의문을 통하여 그러한 이유를 밝히게 되니
밝힌 것으로 더욱 뚜렷하게 알게 되고 확연하게 알게 됨으로
수행이 일취월장 이루어진다 하겠다.

예를 들면
부처님께서
"한 호흡에 생사가 있다" 라고 말했는데..
마음이 활짝 열린 사람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한 호흡에 생사가 있다...
어찌 한 호흡에 생사가 있다고 했는가?
그 믿음 아래 그러한 원인과 이유를 밝히게 된다.
그럼으로 그러한 지를 확연히 아래 된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말을 듣거나 접했을 때
어떻게 한 호흡에 생사가 있어 라는 생각으로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받아드이지 않으니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밝혀볼 생각조차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수행이 되겠는가?
당연히 수행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수행은 이루어진다.

생각해 보라
지금까지 그대가 수행해 오면서 또는 살아오면서
믿음과 신뢰를 가졌던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 사이
이루어짐과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과의 차이는 어땠는가?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행했던 것만큼 이루어진 것은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행도 그러하다.

수행하는 수행자가 마음이 활짝 열려 있어야
활짝 열려 있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서는 인식 생각하고 인식 생각하되
의문이 생기면 왜 그렇게 말했는지 밝혔는지를 살펴봄으로 해서

그러한 사실의 원인과 이유를 밝혀 냄으로 해서 수행해 간다할 것이며

선지식 조사 부처님이 말씀하신 수행의 경지로 나아간다 할 것이다.

이렇듯 수행의 길
빛으로 가는 길 없는 길은
마음이 열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며

그것도 마음을 활짝 열어야 만이 열린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며 인식 의식하고 그것을 토대로 밝혀서
자기화, 내것화 되어야 수행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할진데
어찌 마음을 열지 않고 수행해 갈 수 있겠는가?
적어도 자기 자신이 수행해 가려고 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더불어 함께 하는 수행자 및 도반에게
선지식 및 조사 부처님에게만 적어도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
너무 믿어서 바보라는 소리를 비록 들을지라도
나쁜 것을 시키지 않은 한 나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믿는 마음 열린 마음이 있어야만 수행을 원만하게 이루어갈 수 있다.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생각대로 의식대로 받아들이고 판단하고 분별하게 되어
자기의 생각 의식 판단 분별로 받아들이고 인식 의식하며 받아들여서
선별적으로 인식 판단해 가지만
마음이 열려 있으면 마음이 열려 있는 만큼
자기 자신의 생각 의식으로 인한 판단 분별 선입견은 적어지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받아들여서는 자기화 내지는 자기 것이 되도록 한다 하겠으니
어찌 수행한다고 하면서 마음을 열어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관계로
수행하는 수행자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그것도 마음이 활짝 열려야 한다.

2006. 02. 07 1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