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본성의 자등명은 세상 모든 것들을 다 꿰뚫고 있다
칠통漆桶 조규일
2024. 2. 26. 07:36
본성의 자등명은 세상 모든 것들을 다 꿰뚫고 있다.
/ 칠통 조규일 본성의 자등명은 세상 모든 것들을 다 꿰뚫고 있다. 모든 법과 진리 경전과 성경, ... 세상에 훌륭하다고 하는 모든 것들과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은 단지 노력에 의해서 생각과 사고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모두 저마다 가지고 있는 본성의 자등명을 통하여 사고와 생각 노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사고와 생각으로 세상 모든 것들을 다 꿰뚫을 수는 없어도 우리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본성의 자등명으로는 다 꿰뚫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오늘도 모든 것들이 하나로 꿰뚫고 있는 본성의 자등명을 드러내고 밝히는데 부족함이 없는 날이 되소서. 2007. 07. 25 07:42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라는 말은 일념의 지속과 화두참구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습니다. / 칠통 조규일 자등명은 최초에서부터 지금 현재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이 행한 모든 것들과 행함으로 소유한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으니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라 한 것이랍니다. 즉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라 말은 그리하였으나 사실 자등명에게 묻는 것이 업(식)덩어리에게 묻는 것과 같다고 하겠지요. 자등명이 업(식)에 덮여 있고 둘러싸여 있으니 자등명에게 물으면 자등명에게 물음과 함께 자등명 표면에 있는 업(식)덩어리에서는 아무 것 업(식)에나 자극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묻고 있는 대상이 있는 곳(것) 즉 대상의 업이 자극을 받아 그 곳(것) 업이 꿈틀댈것이며 물음을 받고 있는 업(식)이란 대상 안에서는 자등명이란 빛을 꿈틀대는 업에게 비출 것이니 자등명의 비춤을 통하여 묻고 있는 것에 대한 것을 드러나도록 할 것인즉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면 자등명에 달라붙어 있는 업(식)이란 대상 자등명에 의하여 비추어지면서 묻고 있는 것이 확연해지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묻고 있는 것에 대하여 확연히 알게 되니 묻고 물으라 한 것입니다. 화두참구 역시도 화두를 참구하여 들어가되 스스로에게 묻고 묻는 것에 있어서는 자등명에 묻고 묻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화두 참구를 하며 묻고 묻는 것은 어디에서 그 해답을 얻을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자기 자신에게 묻고 묻는 것이라면 자등명에게 묻고 묻는 것은 물을 대상을 분명하게 알고 또 대답을 줄 대상을 분명하게 알고 묻는 것이 화두참구하는 것과 자등명에게 묻는 것에 있어서의 차이이고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누구에게 묻는지 모르며 묻고 묻는다면 깊게 몰입해 그 대상에 들어가지 않으면 쉽게 아니 되지 않는 면이 있지만 자등명에게 묻고 묻는다면 묻는 대상이 분명하고 또 업(식)덩어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또 그것에 묻는다면 물음으로 그 대답을 얻게 되는 대상이 분명한 만큼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서 어떻게 대답을 얻어 알게 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묻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겠지요. 그러므로 화두참구하며 밝히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아지는지 모르고 묻고 묻는 것과는 다르게 자등명이 있는 업(식)덩어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업(식)덩어리 속 자등명에게 묻고 묻는다면 업(식)덩어리에 붙어 있는 업의 자극과 자등명의 반응이 더 빠르다 하지 않겠는지요? 그래서 화두를 참구하더라도 또는 모르는 것을 참구할 때 이미 자성불은 다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자등명은 최초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모든 정보를 다 업(식)으로 가지고 있는 만큼 묻고 물으면 자등명에 달라붙어 있는 묻고 있는 업으로 달라붙어 있는 정보가 자등명이 손전등을 비추는 것과 같이 비추는 빛을 통하여 밝게 드러나며 알게 되는 만큼 아무 것도 모르고 무조건 자기 자신에게 화두를 참구하듯 참구만 할 것이 아니라 업(식)덩어리 속 자등명에 물으라 하는 것이랍니다. 화두참구하여 화두가 타파되는 것 역시도 알고 보면 타파되는 것이 업(식)덩어리에서 묻고 있는 대상이 참구하고 참구함으로 업덩어리에서 뽑힘으로 인하여 뽐힘과 동시에 자등명의 빛이 뽑힌 곳으로 드러나면 밝게 드러나며 알게 되는 만큼 결정적 해답은 업(식)덩어리에서 업(대상)이 뽑히면서 뽑힘과 동시에 자등명의 빛이 드러나면서 알게 되는 것을 모르면서 무조건 화두 참구만 할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직접 물으면 더 빨리지 않을까? 빠르다는 생각에서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며 가라고 한 것이랍니다. 본인이 수행할 때는 이러한 사실을 몰라서 그냥 참구했고 지금에 와서 보니 설명한 것과 같이 그러하니 아무래도 이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등명에 묻고 물으며 가라고 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업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되 업으로 있는 만큼 현재의식에서는 알 수 없으나 잠재의식 무의식에서는 업으로 있는 만큼 알고 있고 그 알고 있는 업은 자등명이란 빛에 달라붙어 있는 만큼 자기 자신의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면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업을 자등명은 잘 알고 있는 만큼 화두를 참구하여 업덩어리에서 뽑혀서 아는 것과 같이 꼭 화두가 아닐지라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기 자신의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면 화두 타파가 되는 것과 같이 자등명에 달라붙어 있는 업이 밝게 드러나면서 알게 되는 만큼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며 가라고 하는 것이랍니다. 자신보다 자신에 대하여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잠재의식 무의식 속에 있는 업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만큼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자기 자신의 식덩어리에 있는 자성불은 알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묻고 묻되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면 그 해답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며 가라고 하는 것이랍니다. 화두 참구는 모르면서 참구하여 가는 것이라면 자등명에게 묻고 물으라는 것은 이미 대답해 줄 대상을 알고 묻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9. 4 19 07:42 칠통 조규일 자성불(自性佛)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칠통 조규일 우리 모두 저마다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자성불은 최초의 본성에서부터 현재 그대가 있기까지 그대가 행한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다. 그대가 기억하여 알든 모르든 그대가 행한 모든 것들을 그대의 자성불은 업식(業識)이란 이름으로 다 저장하고 있다. 최초의 본성에서부터 지금까지 행하여 온 모든 것들을. 그런 관계로 그 누구보다도 가아(假我)로 살아가는 자기 자신보다 더 가아(假我)인 자기 자신의 일을 진아(眞我)인 자성불은 가아의 자기 자신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대가 기억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하는 제 6식과 제 7식 제 8식뿐만 아니라 깨달음과 본성과 절대자 자등명 자성불 무량광 무량수 자체까지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대가 최초 본성에서 떨어져 나온 순간 이후부터 본성이라는 자등명이라는 자성불이라는 것에 그대가 알게 모르게 그대가 행한 행을 본성인 자등명 자성불에 저장하여 온 것이다. 그래서 그대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자성불은 모두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고로 그대에 대해서 모두 다 알고 있는 자성불을 들추어 최대한 활용하면 그대는 그대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알 수 있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 역시도 자성불이 들추어내는 것을 통하여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수행 중에 일어나는 현상들과 체험이나 경험한 것을 처음은 무엇인지 모를지라도 경험하고 체험한 것이 무엇인지 자꾸만 자기 자신인 자성불에게 간절하고도 간곡하게 묻고 물으면 묻고 묻는 것을 통하여 손전등을 비추듯 자등명을 비추고 비춰진 곳으로 자성불이 드러남으로 환하게 드러나면서 의식하게 되고 의식함으로 인식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두를 잡을 때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장애를 화두로 삼아야 하며 화두를 잡고서는 간절하고 간곡하게 참구하여 찾는 것이다. 지금의 자기 자신이 간절하게 찾음으로 자등명이 환하게 드러나며 자성불이 알려줌으로 현재 의식인 자기 자신이 의식하고 알게 되는 것이고 환하게 드러나며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또는 수행 중에 체험이나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이것이 무엇이지” 참구하여 묻고 물으면 자등명은 밝혀주고 자성불은 안으로부터 대답을 해 준다. 그래서 의식하고 인식함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수행은 행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밝혀 가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확연히 아는 것이다. 자등명은 무량광 무량수로 시방을 비추고 있고 자성불은 본 성품으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또한 묻고 물으면 묻는 것을 통하여 대답을 하고 자기 자신이 누구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묻는 이가 업을 가지고 묻기 때문에 자성불이 있는 그대로 대답해도 업을 가지고 업식에 따라 자기 자신이 업식으로 아는 것만큼만 의식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업의 티끌이 전혀 없는 자등명 자성불이 밝히고 드러내 대답하는 것을 확연히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고 또는 제대로 알아듣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업식에 따라 자기 자신이 아는 만큼 알고 있는 만큼 자기 자신의 업식 안에서 자기 자신이 아는 안에서 생각하고 의식 인식하고 자기 식(識) 대로 사리분별 망상을 짓고 알음알이 내고 속 터진 만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업식 안에서 사리분별 판단하여 망상 속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다 이는 자성불뿐만 아니라 깨달은 각자가 말을 해도 똑같다. 믿음이 있으면 믿는 만큼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리 잘 설명하여 알려줘도 소용없다.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더 분명하고 확실하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은 믿어도 남은 믿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이 열려 있는 만큼 믿고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을 업식이 속이는지도 모른 채 업식에 속으면서 깨달은 각자의 말을 듣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리 분별 판단 망상 속 번뇌를 일으키며 자기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다 많은 수행자들이 모른다. 수행이 어느 정도 되었다는 분들도 잘 모른다. 간혹은 말을 해 줘도 모른다. 화두를 잡고 참구하며 자성불에게 묻고 묻으면 알 수 있다. 그 누가 자기 자신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더 잘 아는 이들이 있는가? 없다. 자기 자신은 비록 기억하지 못해 모를지라도 자기 자신의 자성불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모두 다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 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최초 본성에서부터 지금의 자기 자신이 있기까지 함께하여 온 자성불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더 잘 아는 이가 있을까? 없다. 그런 고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고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자성불에게 묻고 물음으로 답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확연히 아는 것이다. 자성불은 알고 있다. 최초는 무엇이었으며 어떠했는가? 그리고 무엇이 절대자이고 창조주이며 하나님이고 부처인가? 무엇이 본성이고 본 성품이며 깨달음인지 알고 있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으며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과 현상들에 대해서도 확연히 알고 있다. 다만 자기 자신이 모를 뿐이다. 오직 자기 자신이 모르는 것을 통하여 참구하고 참구하여 자성불에게 묻고 물음으로 자성불을 들추어 최대한 활용하여 궁금하고 궁금한 것의 해답을 얻어내어 얻어낸 해답의 앎을 통하여 걸림과 장애를 하나 하나 내려놓으면서 한 소식 돈오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고 모두 다 기억하고 있는 자등명 자성불을 최대한 활용하여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수행 과정 중에서 체험과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경우 앞서가는 분에게 여쭈어 보아서 알아도 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누구에게 물을 것도 없이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자성불에게 간절하게 묻고 물으라. 그러면 자등명은 밝혀주고 자성불이 알려줌으로 경험하고 체험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체험하고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어 알게 된다해도 전생에 일인지. 수행의 경지가 한 단계 뛰어 넘은 것인지. 해오(解悟)한 것인지. 혜오(慧悟)한 것인지. 견성(見性)한 것인지.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스스로 확연하게 알게 된다. 자등명 자성불로 병을 치유할 수도 있고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란 글을 다시 읽어보세요. 아마도 좀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2006. 09. 03. 12:47 칠통 조규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