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칠통漆桶 조규일 2024. 3. 29. 07:31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 칠통 조규일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누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고 자기 자신이 언제 어디서든 수행하려고 하느냐 하지않느냐. 수행하려고 하는 의식이 깨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고 얼마나 절실하고 절박하느냐의 문제이다.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처음부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오랜 동안 습이 되어온 업과의 싸움이고 안일한 마음과 방일한 생각, 편안하고자 하는 육체와의 싸움이다.

그러므로 생각이든 의식이든 마음이든 깨어있지 않으면 말로만 수행하거나 폼, 척으로만 수행할 뿐 실다운 수행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느냐에 따라서 수행을 할 수도 있고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업과 습의 관성으로부터 거슬러 본성으로 회귀하려고 수행하려하는 자기(自己)와 업과 습으로 살려고 하며 업과 습대로 살아가는 것을 편안해 하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거부하는 자신(自身)과의 싸움이다.

남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며 나이 다른 나로 생각하고 의식하되 자기 자신에 있어서는 엄격해야 한다.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격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운데 이래서 수행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봐야 하고 보고 생각하고 의식하며 분별하는데 엄격해야 한다. 아니고서는 어렵다.

수행을 잘하고 싶다면 밖으로 향하는 모든 것들을 차단하고 자기 자신 안에 들어가서 생각이든 의식이든 마음이든 ...자기 자신은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보고 파헤쳐야 한다. 자기 자신을 바르게 보고 파헤치는 만큼 수행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자기 자신 밖으로 달려가면 가는 만큼 수행은 더디고 못하게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볼 줄 모르고 남의 말을 많이 하고 자기 자신 밖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의 경우라면 공부가 되었다고 해 봐야 다 머리로, 식(意識)으로 공부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는 식만 키우거나 척하기 일쑤일 뿐, 정작 자기 자신을 밝혀가야 하는 수행에 있어서는 어둡게 된다. 고로 수행을 일취월장 이루고 싶다면 밖으로 향하는 자기 자신을 안으로 들어와서 안을 보고 안에 자기 자신의 살림살이를 잘해야 한다.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한 것이고 행동이 중요한 것이다. 어린 아이도 다 아는 이야기를 80먹어도 행하기 어려운 것과 같이 알면서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자기 자신이 게을러서 실천하지 못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 핑계거리를 갖다 대면서 자기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자기 자신을 너그럽게 용서한다. 너그러운 용서는 자기 이외의 다른 나에게 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만 수행을 잘 할 수 있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핑계를 만들지 말고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지 말고 그렇게 된 상황의 상태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자기 자신의 잘잘못을 확연히 관하여 살펴 알고서는 더 이상 그와 같은 일을 번복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꼭 수행이 아닐지라도 자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2012. 3. 3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