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돈오(頓悟)는 점수(漸修)가 아니라 돈수(頓修)로 점휘(漸輝)다

칠통漆桶 조규일 2025. 1. 7. 07:45


돈오(頓悟)는 점수(漸修)가 아니라 돈수(頓修)로 점휘(漸輝)다 / 칠통 조규일


일심 일념 수행 정진하여
확철대오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깨달음을 얻음과 함께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스스로 확연히 알게됨과 함께
더 이상 깨달음에 대하여 의심이 없게 된다.
즉 깨달음을 얻게되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성불이 깨달음을 얻은 지를 알게 된다


만에 하나 깨달음을 얻었는데 깨달음에 대하여 의심이 생긴다?
이는 확철대오의 깨달음이 아닌 의식의 깨달음이라 할거다.
반면 자기 스스로는 깨달았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이가 깨달았다고 한다면
이는 자기 자신이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깨달았구나 하고 인가해 준 사람 역시도 깨달은 자가 아니다.


흔히들 깨달음을 얻고 난 후
돈오돈수다 또는 돈오점수다 말들이 많으나
본인이 볼 때
깨달음을 얻으면 더 이상 깨달음에 대하여 의심이 없고
깨달음에 대하여 확연한 만큼 깨달음 돈오는 돈오돈수다.
"돈오 돈수, 점수.....빛의 세계 (법성의 설명)"이란 글에서 밝힌 것과 같이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수행하게 되는 것은

다하지 못한 업을 닦기 위한 수행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을 증득함과 함께 업이 있고 없고 떠나
체(본성)를 체득함으로

본성과 본성의 속성인 체에서 용으로 드러나는 묘연(妙沿) 속 법과 진리를 터득해 가고

법과 진리 속 원시반본인 연기의 인연으로 생겼다 없어지고, 없어지고 생기는 것들 속

체(본성과 본성의 속성)로 인한
묘유(妙有)와 묘용(妙用)을 알아 가고 터득해 가는 것이라고 하겠으며

본성의 빛인 자등명을 더욱 더 밝게 더욱 더 넓게 두루 비출 수 있도록

자등명인 본성의 빛의 밝기를 더욱 더 밝게 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으로

돈오 후 남은 업을 닦기 위한 수행인 돈오점수가 아니라
돈오점휘(頓悟漸輝)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전등불이 5W와 10W...60W..100W...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밝기가 다르고
밝기가 다른 만큼 주변을 밝히는 밝힘을 통하여
어둠의 무명을 더 많이 더 넓게 밝힐 수 있으며

빛의 밝기만큼 더 넓게 두루 확연히 비춤으로
어둠의 무명 속에 있는 것을 더 많이 더 넓게 밝혀 알 수 있고 드러낼 수 있는 만큼

깨달은 자의 수행은 돈오점수가 아닌 돈오점휘(頓悟漸輝)라 해야 옳지 않을까 싶다


깨달았다고 하면서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말하며
깨달은 후에 업을 닦아야 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은 깨달으면 업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본성과 본성의 속성과 업과의 연관관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로

이들의 대부분은 확철대오의 깨달음 돈오가 아닌
의식적으로 깨달음을 얻은 자들이라 생각해도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의 오해들 왜 생기는 것인가?" 란 글에서 밝힌 것과 같이

돈오의 깨달음이 아닌 의식의 깨달음이라 하겠다


깨달음은 돈오점수가 아니라 돈오돈수(頓悟頓修)다

돈오돈수의 깨달음을 얻었음에 더욱 더 수행 정진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은 후
업을 닦기 위한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아니라

돈오점휘(頓悟漸輝)로
자등명을 더욱 더 크게 하고 빛의 밝기를 더욱 더 밝게 하여

삼천 대천 세계의 무명을 조금이라도 더 밝히기 위한 것이고
삼천 대천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두루 밝히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2006. 10. 31 18:05 칠통 조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