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버려가며 진정한 나를 찾아라.
칠통漆桶 조규일
2025. 4. 22. 07:30
가아(假我)를 보호하며 진아(眞我)를 버리는 행위를 하지 마라. / 칠통 조규일
가아(假我)를 보호하며 진아(眞我)를 버리는 행위를 하지 마라. / 확철 칠통 명철 많은 이들이 못 오고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오는 것을 그만 두는 이유들을 보니 이런 것 같다. 나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함으로 인하여 나를 보호 보필 모시고 올라가는 분들이 못 오게 하는 경우, 에너지 받으면 더 올라갈 것 같으니 자기 자신 안에서부터 올라갈 세계에서의 일로 인하여 더 올라가는 것을 무의식 잠재의식에서 거부하는 경우, 에너지 쏴 받아 올라올 세계에서 올라오지 못하게 거부하며 못 오게 하는 경우, 등 어떤 상황에 맞닥트렸거나 맞닥트리게 되면 위와 같은 경우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 어느 경우가 되었던 못 오게 되거나 상황이 그와 같이 되거나 와서 공부 못하게 여러 생각들을 일으키며 못가는 이유, 못하게 이유 등들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면밀히 관하여 살펴보고 어느 것이 더 옳고 그른지. 어느 것이 더 법과 진리에 어긋나지 않고 바른지. 혹여 자기 자신 안에 업 때문에 업에 걸려서 그런 것인지. 올라갈 세계에서의 업으로 인한 것인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며 공부해야 할 것이다. 본인 같은 경우에도 밝혀 올라오면서 아프고 힘든 상황들이 많았다. 지금도 종종 찾아본다.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그만 두고 라도 어느 때는 손을 아프게 해서 점점 아프게 하고 결국에는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된 2~3일 동안 밝혀 올라오는 것을 그만 두지 않고 왼손으로 밝혀 올라오니 손을 못 쓰게 하는 세계를 지나 올라오게 되니 점점 손이 풀리면서 또다시 밝혀 올라오게 되었다. 본인이 손이 아프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손이 아플지 안아플지 모르겠지만 밝혀 올라오려고 할 때마다 아팠다면 그래서 아플 때마다 그만 두었다면 아픈 것이 싫어서 그만 두었다면 아마도 지금 여기까지 밝혀 올라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더 이상 못하게 위 세계 에너지 받는 것을 여러 생각들을 일으켜서 받지 못하게 하거나 못 올라오게 하고 못 올라가게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분명 있었다. 내가 모를 뿐이었다. 찾아보면 이유가 있었다. 고통과 아픔을 감내하고 여기까지 왔다. 오늘도 밝혀 올라간다. 여러분들 역시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통과 아픔이 온다고 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마라.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을 일으킨다고 부정적인 생각 속에 침몰되지 말고 그러한 이유와 원인을 밝혀 보고 부정적인 생각과 사고를 떨치고 긍정적이 되게 하라. 각기 저마다의 본성은 본래는 위 세계로 갈 수 있는 한 올라가기를 갈망한다. 그럼에도 업이 못 가게하고 위 세계에서의 잘못됨으로 위 세계에서 못 올라오게 한다. 이것들이 올 때마다 맞닥트려서 여러 생각 속 이야기 속에서 싸워서 진다면 이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기 자신 본래 본성을 버리는 행위를 하지 마라. 가아를 보호하며 진아를 버리는 행위를 하지 마라. 아프며 아픔이 왜 오는지. 그 아픔과 고통을 살펴서 타파하고 본성으로 본래로 올라서야 한다. 업이 많으면 많은 만큼 이와 같은 현상은 종종 때때로 올 것이다. 맞닥트리게 된다. 오는 업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 힘겨움에 지지 말고 싸워서 자기 자신이 바르는 뜻과 의지를 굽히지 말고 바르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르게 하고 바르게 서서 바르게 올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운다, 각자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자기 자신이 쌓아온 업과 본래의 자기 자신과 싸우고 위 세계에서 지은 업 때문에 올라가는 것을 자기 자신도 모르게 거부하게 됨으로 자기 합리화 속 더 이상 위 세계로 올라가지 못하거나, 위 세계에서 올라오는 것을 거부함으로 생각을 일으켜서 못 올라가게 되는 경우들도 생기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일합상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이 위 세계로부터 내려와서는 위 세계로 올라가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올라가는 것을 거부하고 위 세계 에너지 받는 것을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안으로 거부하게 되어서 더 이상 공부를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에너지 받아봐야 좋아지지도 않고 받아봐야 별 소용없다는 식으로 생각, 그러면서 위 세계 에너지 못 받게 되는 경우 등등이 생길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이루고 있는 일합상 뿐만 이겠는가? 자기 자신 안팎으로 있을 존재 존재자들의 여러 이유로도 얼마든지 위와 같은 상황은 벌어질 수 있다. 참고 견디고 오직 본래 본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념, 기필코 해 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 없이 위와 같은 상황은 얼마든지 자기 자신 안에서 생길 수 있고 더 이상 위 세계로 수직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수평적 수행을 하게 할 수도 있다. 공부를 하기는 하되 수평적 수행을 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잘 살펴서 바르게 하고 바르게 공부하는 것을 놓지 말고 바르고 공부하고 본래 본성이 가고자 갈망하며 회귀하려고 하는 본능을 저버리지 말고 업에 놀아나고 일합상 안팎의 존재 존재자들이 휘둘리지 말고 바르게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랜다. 이는 자기 자신을 잘 관하여 살펴봐야 알 수 있는 일일게다. 업에 놀아나, 위 세계에 업에 짓눌려, 위 세계의 거부에, 아프다는 이유로, 싫다는 이유로 본성 본래로 회귀하는 것을 그만 두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위와 같은 상황이 자기 자신에게 생겼을 경우 바르게 보고 바르게 관하며 바르게 성찰하고 바르게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가아와 진아가 뒤섞여 있는 전도 몽상되어 있는 현실에서 지금의 자기 자신에서 업에 휘둘려서 가아를 보호하고 진아를 버리는 행위를 선택하며 말아야 할 것이다. 가아를 선택하며 진아를 버리는 행위를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진아이고 어느 것이 가아인가? 2018. 06. 24 10:03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하나 하나 버려가며 진정한 나를 찾아라. / 칠통 조규일 우리는 너 나 할 것없이 "나" "내것"이라고들 말을 한다. "나"라고 하는 "나"를 살펴보면 "나는" 색(色:물질)과 수(受:감각)과 상(想:생각)과 행(行:의지작용)과 식(識:의식) 오온(五蘊)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이 몸뚱어리(몸뚱이)와 몸뚱어리(몸뚱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나"라고 하고 있다. 이 "나"라고 하고 있는 것들을 우리는 "내 것"이라고들 한다. 즉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나"라고 말하고 있는 내 몸과 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이 "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의 테두리 안에 작용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일러 이를 "내 마음"이라고 "내 마음작용"이라고들 말을 한다. 그러니 "내 마음" "내 마음작용"은 "나"라고 하는 인식하고 있는 오온(五蘊: 색 수 상 행 식)의 모든 작용을 일러서 내 마음 내 마음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내 마음" "내 마음작용"은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육체(색:色)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수(受:감각작용), 상(想:생각,상상작용), 행(行:행동의 의지작용, 식(識: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작용)의 모든 작용을 일러서 내 마음 또는 내 마음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색:色)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수(受:감각작용), 상(想:생각, 상상작용), 행(行:행동의 의지작용), 식(識: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작용)의 모든 작용을 일러서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내 마음이다' 라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이것들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이것들에 집착함으로 올바른 생각을 잃거나 올바른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이것들로 인하여 고(苦)를 당하고 "내 것"을 잃을까 두려움에 떤다. 그러나 올바로 수행하는 수행자는 이 다섯가지 오온(五蘊: 색 수 상 행 식)이 내가 아닌지를 알고 내 것이 아닌지를 알고 이것들을 생각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또한 그것들이 어떤 변화나 작용을 일으켜도 그것에 빠지거나 집착하지 않음으로 그것들로 인하여 올바른 생각을 잃거나 올바른 견해를 잃지 않음으로 그것들로부터 고(苦)를 당하거나 집착하는 일없이 "내것"을 잃을까 두려움에 떨지 않는 정심(正心) 속 올바른 생각을 하고 정사(正思) 속 올바른 말을 하며 정언(正言) 속 올바른 행동을 하고 정행(正行) 속 언제나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정견(正見)을 가지고 수행해 간다할 것입니다. 그러니 올바로 수행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 "내것"이라는 것을 하나 하나 버려가며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것이야 말로 올바로 수행해 가는 것이다 할 것입니다. 그런만큼 깨달음을 향해 수행하다고 수행하는 수행자는 무엇보다 먼저 "나" "내것"이라고 했던 것들을 수행을 통하여 "나" "내것"이 아닌 것을 하나 하나 버려야 한다. 물질(색:色)이 "나" "내것"인 것이 어느 것 하나라도 있는가? 없다. 있다면 있는 그것이 무엇이지 살펴보고 그것이 나라할 수 있고 내것이라 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나라할 수 없고 내것이라고 할 수 없다면 버려라. 즉 물질(색:色)을 버려라. 버리라 했으나 버리는 것은 그것이 "나" "내것"이 아닌지를 확연히 알고 인식하고 놓아버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물질을 살펴보면 물질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졌다. 어떤 분이 말을 하듯 4대로 이루어졌으니 인간이고 인간이 아니려면 4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야 함이 아니라 물질은 유무정을 떠나 4대로 이루어져 있고 4대가 어떻게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4대가 각각 어느 정도의 차이로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나타난 물질이 다르다 할 것이다. 그러니 물질이 나 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물질은 4대로 이루어져 있고 4대의 집합체가 물질인지를 알아야한다. 그럼으로 물질이 내가 아니고 내것이 아닌지를 인식 의식하게 된다. 물질의 육체를 통하여 육체 안팎을 연결하는 연결통로를 통하여 일어나는 감각(오감) 역시도 나 내 것이 아닌 것을 알고 감각을 인식하고 의식하되 집착으로부터 놓아버려야 한다. 의지작용(意志作用)은 어떠한가? 식(識:아는 것 알고 있는: 의식 무의식 잠재의식)의 작용이 뜻과 의지 생각이 그래서 그렇지, 그것을 나 내 것이랄 것이 있는가? 의지작용을 인식하고 의식하되 의지작용을 집착으로부터 놓아버려야 한다. 의식은 어떠한가? 안이비설신을 통하여 내몸이라고 했던 육체 안으로 들어와서 나라고 하는 내 안에서 아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의식이다. 아는 것 알고 있는 것을 나라고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식작용을 인식하고 의식하되 의식작용을 집착으로부터 놓아버려야 한다. 이렇듯 나 내 것이라고 했던 오온을 인식하고 의식하되 놓아버리는 것이 되고 내 몸이라고 하는 내 육체를 테두리로 하고 있는 내 마음 그 내 마음밭에 시도 때도 없이 자라는 것들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놓아버림으로 마음은 평안함 속 기쁨을 누릴 것이다. 자! 마음은 무엇인가? "나" "내 것"이 아니란 것은 또 무엇인가? '이것이 전에는 내 것이었는데 이제는 내것이 아니다. 다시 내 소유로 만들 수는 없을까? 더 많이 소유할 수는 없을까? 이렇듯 우리는 내 것을 만드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내 것이라고 여겨던 것들을 잃음으로 절망하고 희망과 절망 속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힘쓰고 노력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생이 흘러가는지 모르고 노력하고 힘써서 이루어지면 기뻐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슬퍼하고 탄식하며 가슴을 치고 운다. 실체도 없는 "나"에 집착하면 항상 근심과 고통이 생기는 법이다. 내가 있다면 내 것이 있을 것이고 내 것이 있다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내 것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나" "내것"이랄 것이 하나도 없다. 나와 내 것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이렇듯 올바른 수행자 올바로 수행가는 수행자는 "나" "내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하나 하나 파헤쳐서 "나" "내 것"이 아닌 것을 하나 하나 버려가며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럼으로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다. 나를 찾아가면서 나 아닌 것을 버린 만큼 놓아버린 만큼 물질과 분별을 싫어하고 욕망을 버리고 해탈하는 것이다. 2005. 04. 16. 10:06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 칠통 조규일 진정 내가 누구인가? 찾고자 한다면 이 내 몸을 나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찾지 못한다. 이내몸이 나라고 생각하고 의식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나는 찾는 것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왜? 이내몸을 나라고 하는 순간, 이내몸이란 깜깜한 칠흑의 어둠 속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칠흑의 어둠 속에 빠져서는 한치 앞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다. 찾는다고 찾아봐야 헤맬 뿐이다. 칠흑의 어둠 속에서 찾아봐야 봉사 문고리 잡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한다면 칠흑의 어둠 속에서 나와 칠흑의 어둠 속을 밝히고 밝혀야 한다. 칠흑의 어둠 속을 밝히지 않고서는 이 내몸 속이란 칠흑의 어둠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기란 어렵다. 칠흑의 어둠 속의 이 내몸을 밝히고 밝혀야만 밝음 속에서 하나하나 바르게 보면서 그 속에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칠흑의 어둠 속인 이내몸을 환하게 드러나도록 밝히고 밝혀서 진정한 나를 찾을 것인가? 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라고 의식 인식하고 있는 이 내 몸을 하나하나 낱낱이 분해하라. 분해해서 이 내 몸이란 칠흑의 어둠 속 숨어 있는 진정한 나를 밝음 속에 드러나도록 해보라. 분해하지 않은 것이 없이 모두 다 분해하라. 철저하게 분해하라. 분해하고 분해한 만큼 철저하게 드러날 것이며 철저하게 드러난 만큼 분명하고 명확한 밝음 속에 있게 될 것이다. 밝음 속 분명하고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데서 진정한 나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분해하고 분해한 이 내 몸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라. 나라고 할 것이 아닌 것은 버려가며 ‘이것이 진정한 나구나.’ 하는 것을 찾아라. 그리고 진정한 나라고 한 것을 또다시 분해하고 분해하라. 철저하게 분해하라. 더 이상 분해할 수 없을 때까지 분해하라.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라. 이렇게 분해하고 분해하다 보면 더 이상 분해할 수 없을 때 텅 빈 허공만이 있게 된다. 나고 할 것이 없이 텅 빈 허공만이 나온다. 텅 빈 허공이 나인가 하고 보면 텅 빈 허공 속 아무 것도 없는가 싶어서 보면 텅 텅 빈 허공 속 내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다시 텅 빈 허공 속에 있는 나를 또다시 분해하고 분해하라. 분해하고 분해한 곳에서 진정한 나를 또 찾는다. 그러면서 모두 다 하나같이 같은 텅 빈 허공 속 각기 저마다 나라고 하고 있는 내가 텅 빈 허공 속 각기 서로 무엇으로 다르고 무엇으로 같은가를 찾는다. 텅 빈 허공 속에서 지금의 내가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다. 이것이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면 그때부터 깨달음은 무엇인가? 무엇이 깨달음인가? 묻고 묻는다. ‘이것이 깨달음이구나.’ 확연하게 알아질 때까지 묻고 물어야 한다. 하나의 상은 하나의 이름을 갖고 하나의 이름은 하나의 상을 갖는다. 하나의 상은 일합상으로 순수하고 순박한 오롯이 하나, “진정 이것이다”아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집합체를 이루어 하나의 상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가 하나로 뭉쳐져 있는 이것을 하나의 상으로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이 저마다 나라고 하는 나 역시도 이와 같이 여러 가지가 하나로 뭉쳐져 있는 일합상이다. 이러한 일합상의 나를 분해하고 분해하면서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다. 일합상을 분해하지 않고서는 일합상 안에 있는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없다. 일합상이란 상(相)만을 두고 보면 일합상 안은 칠흑의 어둠 속 무명이되 이것을 분해하고 분해하는 순간 일합상 안에 있는 것은 분해되는 만큼 밝음 속에 드러나게 되는 만큼, 칠흑의 어둠 속 일합상만을 두고 찾는다면 칠흑의 어둠 속에서 찾는 것이 될 것이지만 일합상을 분해하고 분해하는 만큼 분해한 것들은 밝음 속 있게 되는 것이다. 밝음 속에 드러나 있으면 있는 만큼 있는 그대로 분해하여 드러내놓은 것에서 확연히 볼 수 있을뿐더러 확연히 볼 수 있는 만큼 진정한 나를 찾기가 쉽다. 그러므로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한다면 지금 그대가 나라고 하고 있는 일합상의 상을 부수어서 하나하나 낱낱이 분해하고 분해해서 진정한 나를 찾고 찾아야 한다. 누가 하루 한시라도 빨리 먼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분해하고 분해해서 보느냐에 따라서 진정한 나를 찾는데 빠르고 늦고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한다면 하루 빨리 자기 자신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분해하고 분해하하. 그리고 거기서 ‘진정 이것이 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라. 찾아서는 찾은 것을 토대로 또 분해하고 분해하라. 더 이상 분해할 수 없을 때까지 분해해서 진정한 나를 찾아라. 분해가 빠르면 빠른 만큼 빨리 진정한 나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분해하다 말면 분해하다 그만둔 만큼만 알게 되어 있고 오게 되어 있다. 늦지 않았다. 스스로를 철저하게 분해하고 분해한 곳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라. 그러면 생각 이상으로 쉽게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2. 2. 11 05:40 깨어나고 싶으냐, 그러면 지금의 나를 죽여라. / 칠통 조규일 내가 죽어야 나를 볼 수 있다. 지금의 내가 죽지 않고서는 지금의 나를 볼 수도 없고 또 내 안에 나를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 지금의 내가 죽고 지금의 나를 깨부수었을 때, 내 안에 있는 나를 만들 수도 있고 또 내 안의 내가 될 수도 있다. 수행은 끊임없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라고 의식하고 있던 나를 죽이고, 나라고하는 나를 깨부수었을 때 나라고 하는 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나를 맞이하고 새롭게 태어난 나로 살아가면서 내 안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죽이거나 깨부수고 내 안의 나로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죽지 않고서는 지금의 나를 볼 수 없다. 지금의 나를 보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죽이거나 깨부수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나로부터 벗어난 내가 나를 바라보게 되어서 지금의 나를 바르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자기 자신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지금 나라고 하는 나를 죽여야 한다. 나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의 생각이나 의식 사고(思考)를 그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라고 하고 있는 생각과 의식 및 사고로부터 벗어나 그러한 생각과 의식 사고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관하여 보거나 바라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라고 하고 있는 생각과 의식 사고가 한 꺼풀 벗겨지듯 벗겨지고 바르게 보여지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한다면 주관을 객관으로 보라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보인다고 할 것이며 주관을 객관으로 보아야 어긋남 없이 바르게 갈 수 있는 것이다. 육체가 하나의 몸통일 뿐 몸통은 내가 아니다. 수백 수천 번을 말해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막상 유체이탈을 하거나 육체로부터 벗어나는 죽음을 맞이해서는 그러한 사실을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게 되니 알게 된다. 육체가 내가 아니라 육체가 죽음으로 육체로부터 빠져나온 내가 진정한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지금의 나로부터 깨어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죽여야 한다. 지금의 나를 죽여서 지금의 내 안에 있는 나로 태어나야 한다.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듯, 지금 나라고 하고 있는 양파껍질을 표면을 죽이고 즉 벗겨내고 나라고 하는 내 안에 있는 나로 태어나야 태어나는 순간 나는 진정한 나로 깨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의 나를 죽여가며 내 안의 나를 찾아가야 한다. 나를 죽이지 않는 자 절대로 내 안에 있는 나를 만날 수도 없고 내 안에 있는 나로 태어날 수가 없다. 지금의 나를 버리고 진정한 나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라고 하는 나를 늘 죽여가며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나라고 할 나를 찾을 때까지...참나를 만나 참나로 거듭날 때까지... 나를 죽여가며 내 안에 있는 나를 회복시키고 드러나도록 해야한다. 그래서 회복한 나로 드러난 나로 살아가야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고, 진정한 나를 만나야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아니고서는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거듭나고 진정한 나를 찾고 참나로 살고 싶다면 지금의 나를 죽이고 내 안에 있는 나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깨어나라. 그러면 깨어나는 만큼 그대는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는 것, 진정한 나로 회복하는 것, 진정한 내가 되는 것, 이것이 수행이다. 수행한다고 하면서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깨어날 수 없고 거듭날 수 없다. 나를 죽이며 의식적으로 깨어날 때 거듭날 것이며 거듭나서 더 이상 거듭날 수 없는 상황의 상태가 되고 더 이상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없는 불생불멸이 되었을 때 그러므로 생사가 다했을 때 생사가 끊어진 자리에서 불생불멸의 자리에서 그대는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도 지금의 나를 죽이고 의식적으로 깨어나 내 안의 나를 만나고 드러내는 것에 소홀함이 없는 날이 되소서. **여기서 죽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를 말함이 아니라 지금의 생각이나 의식 사고(思考)를 말하는 것이다. 즉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재의식을 죽이고 현재 가지고 있는 의식으로부터 깨어나거나 벗어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깨어나고 싶으면 지금 현재 나라고 인식 의식하고 있는 현재의식을 죽이라는 말이다. 현재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깨어날 수 없다. 현재의 자기 자신을 보고자 한다면 지금 나라고 하는 나를 죽여야 비로소 나라고 했던 나를 볼 수가 있다. 깨어나고 싶다면 지금의 나를 죽여라. 그리고 지금의 나를 알고자 하거나 보고자 한다면 지금의 나를 죽여라. 그러면 깨어날 것이며 깨어나면 깨어난 만큼 나라고 하는 자기 자신을 볼 것이며 나라고 하는 자기 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 2009. 07. 18 10:42 참된 삶으로 본성 수행은 (어느 문답에서) / 칠통 조규일 생멸(生滅) 없는 본성(本性)에서 생멸하니 생하면 생하는 것으로 고락(苦樂)이 있고 멸하면 멸하는 것으로 고락이 있으니. 이는 자기 자신이 지은 (행한) 업(業)으로 인한 원인이 인(因)으로 그 결과를 맺는 연(緣)으로 나타나 연기(緣起)하였다 사라지니. 업이 있는 이상 업을 가지고 있는 이상 끝없이 생멸하는 윤회의 굴레에서 끝없는 전생의 업으로 현재 인간의 몸을 받았고 몸을 받아 태어남(생함)으로 멸하여 가는 육신과 (여기서 인간이란 육체 세포의 집합체로 세포 하나 하나가 끊임없이 생멸하는 것을 무시하고 세포의 집합체 육체만을 볼 때를 말합니다.) 육신의 몸을 받아 살아가는 자체를 삶이라 이름하여 살아가지만 삶이라며 살아가는 그 자체 역시도 연기의 인연법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연기의 인연법에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또 업을 짓는 행동 행위를 살아간다 산다 삶이라 말하지만 살아간다 산다고 하는 삶은 업으로 인한 업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생멸 그 생멸의 끊임없는 연기의 인연법이 연속적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작용의 흐름을 우리는 인생이다 삶이다 하지만 본성에서 보면 우주 만물의 본성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여여하게 있으나 그러한 지를 모르고 본성에 있는 이(覺者)는 본성의 여여한 곳에서 가운데(中道)에서 업이 생멸하는 작용을 보고 현상을 보고 듣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중생은 업 따라 생멸하는 인연법의 작용을 보고 현상을 보고 듣고 보면 본 것에, 들으면 들은 것에 인연법의 작용이 현상이 마치 자신의 행인 것인 것으로 인식하여 주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업의 연속선상에서 업을 "나"라고 인식한데서 업이 되어 업으로 업의 작용이 되고 현상이 되니 현상이 작용이 "나"의 실체 실상인지 인식하고 마치 이러한 업이 없으면 "나"가 없다라는 존재의 부재성, 허탈과 허무 허망에 빠져 늘 업 속에서 업과 함께 있다할 것입니다. 업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업과 함께 흐르고 구르니 업 덩어리가 업 덩어리 속에서 업들의 작용과 현상 연기의 인연법을 보고 듣고 그 속에 빠져 업으로의 생사고락에 빠지고 희노애락에 빠지고 그럼으로 업 덩어리를 "나"하고 또 이"나"의 업 덩어리를 위한 삼독(탐,진,치) 그 삼독에 빠져 삼독으로 인한 업으로의 작용 현상을 삼독에 대응 화합시켜 생로병사고락, 희노애락에서 어차피 육신의 삶은 좀 먼저냐 나중이냐 일 뿐인데 고달픈 삶이어서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원망. 후회해 본들, 살아왔다는 것을 반품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고, 삶을 지속해야하는 이유를 찾아지지 않는다면 내 안에서 찾아야하다면, 이유를 찾는 것이 삶이라면, 정성과 수련이 연속이라면, 이를 위해 머뭇거릴 것이 있을런지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본성과 본성에서의 업의 작용과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깨달은 각자는 업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도 업을 벗어나 본성에 있고 중생은 업의 몸을 하고 업과 어우러져 있다할 것입니다. 그럼 본성으로 가는 길 수행이니 정성 수련은 결국 업으로부터 벗어남 놓아버림이 그 쟁점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업이 이것다' 하고 업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알고 업이 되는 현상과 작용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업이 이것이구나' 하면 이미 그것은 업이 아니라 그냥 업으로의 작용이고 현상입니다. 업을 알고 업으로의 작용과 현상을 아니 업을 확연히 알기 전에 "나"라고 인식한 업으로 이루어진 "나"는 이제 업으로의 "내가" 아니라 참나(我)를 보거나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참나를 보거나 생각함으로 '이것이 업이구나' 했던 업으로부터 벗어나 있다할 것입니다. 앞에서 업으로의 작용 현상에 나는 업이 주관이 되어 주관적인 업의 "나"이고 뒤에 '이것이 업이구나' 했던 업은 업을 바라봄으로 관(觀)함으로 업의 작용과 현상을 보았으니. 본, 관함으로 인하여 주관적이든 업은 이제 나에게 있어 객관적인 업이 되었다 할 것입니다. 얽매이는 것 얽매여 있는 것은 객관적인 것이 주관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고 느슨함 놓아버림 벗어나 있는 것은 주관적인 것을 객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은 (정진은 수련은) 결국 주관적인 업의 얽매임 그 얽매임의 집합체 업의 "나"를 느슨함 놓아버림 벗어나 있게 객관적 업으로 즉 주관을 객관화시키는 것으로 주관적 업을 벗어나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든 주관적인 것을 객관화시키기 위해서는 놓아버려야 할 것입니다. 놓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서 갖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혹 가진 것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관망 내지는 무관심 방관하지 않고는 수행은 놓아버림입니다. 무엇을 업을,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업 덩어리를 하나 하나를 관하고 바라봄으로 얽히고 설킨 업이 마치 얽힌 실타래 풀리듯 처음 관하고 바라봄으로 그 매듭을 찾고 (수행에서는 업장을 녹인다) 매듭을 찾음으로 매듭을 풀 방법을 찾고 찾는 동안 (업이 이것이구나 하는 업을 찾고 "오온"을 알고 "오온"을 밝게하는 과정) 얽히고 설킨 업의 얽힌 끈은 더욱 느슨해지고 (오온을 앎으로 연기의 인연법을 아는) 느슨함으로 이제는 이제 실마리를 찾는 실마리를 찾으며 (그럼으로 인연법 하나 하나를 관하여 가는) 이제는 하나 하나 풀어가고 이 풀어 가는 것이 바로 놓는 방법을 안 것이고 놓는 것이니. 수행에 최선의 방법은 놓아버림 방하착이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수행해 가며 업장을 녹이고 업의 인연은 만나 업은 풀되 더 이상 업을 짓지 않게 되고 이 방법으로 최선의 방법은 역지사지입니다. 바꾸어 생각함,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거의 없고 이해하면서 이제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럼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고 그럼으로 업장이 없어지는 사함이 됩니다. 이런 상황이 빈번해지면서 이제는 모든 행이 타인으로부터 인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나로 인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럼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안을 관(觀)함으로 행복도 슬픔도 내 짓, 업의 결과이구나. 행복, 슬픔, 고통도 내 업으로 생하여 내 업을 사(死, 소멸)하는 것이니. 이를 인식하고는 감사하게 되고 이제 모든 일에 매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다른 쪽으로 한번 생각해 볼까요? 본성은 있는 그대로 여여하다고 늘 설명했습니다 본성을 일직선으로 그리고 일직선에 연속적 주기의 그림을 그리십시오. 그럼 주기율과 폭은 상하로 나타나고 위의 상(上)은 생, 좋은, 희, 락, ...이고 아래의 하(下)는 노, 애, 고, 집, 멸...입니다. 그러나 보시는 관하는 사람에 따라 어떤 분에게는 좋은 일일 수 있는 것이 나쁜 일이기도 하고 어떤 분에게 나쁜 일일 수 있는 것이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 어떤 것이든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그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은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전체의 하나 하나에서 살펴볼 수 있는가 하면 하나에서 그 어떤 것 일이든 그곳에서 음양중이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것임에도 어떤 이는 밝은 쪽을 보고 어떤 이는 어두운 쪽을 봅니다. 이는 그것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보는 "내가" 어떤 상황 즉 어떤 안의 대상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또는 보완적 또는 일치로 대응한다할 것입니다. 이 상대적, 보완적 일치로 인식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개업(個業)으로 자기 자신 안으로부터의 탐, 진, 치 삼독의 만족을 위한 행위로부터의 욕망 충족을 쫓아 행한 행위의 대응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듯 면밀히 관찰해 보면 기쁨을 알기에 슬픔을 알고 슬픔을 알기에 기쁨을 알며 기쁨을 알기에 고통을 알고 고통을 알기에 기쁨을 아는 것입니다. 이들은 본성을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성에서의 흐름에 불과합니다. 이 흐름은 본성에서의 파문이고 파장입니다. 무엇으로 인한 파장 파문인가 하면 업장으로부터 저마다 가지고 형태의 형상의 우주 만물의 저마다의 업으로 그럼으로 수많은 파문과 파장은 그 파장 파문의 증폭의 고저가 서로 얽히고 설키고 서로 서로 얽히고 설키며 만나는 점이 매듭이 되고 이 매듭은 업의 나타남 드러남의 인연이 생멸하는 만남의 점이 되고 이 수많은 점은 파장과 파문이 서로 어우러져 허공(하늘) 가득 망을 이루고 사람들은 이 망을 하늘 망(그물) 또는 인트라 망이라 이름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늘 망 인트라 망을 이루는 것은 업(오온, 의식 잠재의식 무의식의 식)이 본성에서의 하나의 흐름으로 업의 나타남 드러남 인연 연기에 있습니다. 이 연기의 인연을 드러남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얽매임으로 업을 짓는 것은 본성에서의 "나"가 아니라 업으로 인식한 업의 "나"가 나의 만족 충족을 위한 탐, 진, 치 삼독 그 만족을 위한 행위로부터의 욕망 충족을 쫓아 행한 행위의 대응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육신의 삶은 먼저와 나중의 업의 인연으로 나타남 주어진 것이며 그 살아가는 삶은 업의 인연의 작용 현상이 나타남인데도 업의 연기의 인연법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주관적으로 업의 작용에서 보고 탐, 진, 치 삼독의 빠져 업으로 인한 삼독의 업의 만족을 위한 행위로부터의 욕망 충족이 되지 않음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원망후회해 본들 살아왔다는 것을 반품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고 삶을 지속해야하는 이유를 찾아지지 않는다면 라하고 내 안에서 찾아야하다면, 이유를 찾는 것이 삶이라면, 정성과 수련이 연속이라면 라고 한다면 본성의 일직선 업이 작용하는 연속적 주기의 그림 일직선상의 주기율과 폭, 상하, 명암, 선악, 음양 이분법적론에서 그 어떠한 경우든 일직선상 아래 밑 하(下)에서 보는 위 상(上)은 감사해야할 것입니다만 본성의 일직선상에서는 바라보는 쪽이 어디든 바라본 쪽은 위, 상, 선, 양..이 될 것이고 바라보지 않은 뒤쪽은 아래, 밑, 하. 악, 음...이 될 것이나 이는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지 그 근본 본성에서 보면 그냥 업으로 나타난 연기의 인연이고 업의 작용이고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니 수행하는 수행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보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매사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어느 때는 태어난 것을 감사한 적이 있을 것이고 어느 때는 태어난 것을 후회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요. 태어난 상태는 변함없이 똑같은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이는 본성의 일직선상에서 어느 쪽을 보고 있느냐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인식의 작용은 본성에서 상하 위아래 전체를 하나에서 본 것이 아니라 본성의 일직선상에서 위 또는 아래 가 아니라 업을 가지고 업이 있는 마음에서 마음 작용을 하고는 마음 작용한 업으로 일직선상의 기준 점을 잡고 이미 나타난 주기에 업의 기준으로 한 일직선상을 그려놓고 바라보기에 똑같은 작용 현상임에서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바라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주기의 업 작용에 서로 다른 업의 서로 다른 마음작용을 대응시키면 그 기준 점 일직선상은 바꾸고 바꾼 일직선상에서 바라보는 본성의 일직선상에서 바라보았던 바라봤던 점은 다르게 보이고 그럼으로 똑같은 업의 작용 현상임에도 다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보이는 것을 보고 인식한 이것이 3차원 이상에서 이루어지니 어느 때는 이루어지는 지를 알고 어느 때는 모르고 또 이루어짐의 변화가 업이 대응하는 일직선상에 따라 대응하는 대응점이 다르고 수없이 변화해 나타나는 업의 작용에 대응하는 밖에 대상이 하나라 할지라도 안으로부터의 업의 수 없는 작용이 계속적으로 변화 작용하니 그 변화에 대응하는 밖의 대응 그 교차점이 계속 변하고 계속 변하는 수많은 교차점을 보면 그 변화 대응이 변화무쌍하고 그 교차점 또한 변화무쌍하니 안에서의 업의 작용이 밖으로 나타나는 그 인연의 매듭과 풀림이 계속 변화하는 안의 대상과 밖의 대상의 교차점이 항상 불완전하니 이를 전혀 모르는 이들은 밖의 대상에 대응할 때마다 불안 초조하고 이를 보고 인식한 또는 느낀 사람들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본성에서 보면 진리 그 자체로 흐르고 흐르나 업과 업, 업으로의 파문과 파문, 업으로의 파장과 파장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본성의 바다에 파도를 일으키고 물거품을 일으키나 본성을 확연히 아는 자 이를 알고 업이 "나"라 인식한 이 업이 자신인 줄 알고 업으로의 파문과 파장 그 파도와 물거품의 꿈속에 있으나 그것이 업으로 인한 파도 물거품 꿈속에 있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본성은 전체가 하나의 일직선상입니다. 더 이상 위없는... 시작도 끝도 없는...가늠할 수 없는...사방 팔방 시방이... 깨달음을 각자는 이 본성의 일직선상에서 육체란 업 덩어리를 통하여 상하, 명암,...선악, 음양의 이름이 그러할 뿐 전체가 하나로 통하여 있음을 알고 보고 말하고 중생은 본성의 진공묘유 속 업으로 수없이 변화하는 묘법의 업의 일직선상에서 인연의 작용 현상을 보니 보는 지점이 다각도로 변하고 다각도로 변한 지점에 다각도의 업이 작용하니 변하는 그럼으로 업이 대응하는 진공묘유에 업이 인연으로 인연이 업으로 얽히고 설켜 얽매이고 그 얽매임의 업으로 일직선상을 만들어 보니 또 변하는 그럼으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진공묘유 속 업의 주체로 있는 것입니다. 업의 주체로 있는 "내가"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다를 것이 무엇이고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육체를 가졌느냐 가지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 "내가" 본성의 주체가 아닌 업의 주체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한다고 달라질 것 없었을 것이며 금생에 태어나지 않고 계속 영계에 있었다면 어느 때인가 태어났을 텐데 지금의 금생 아닌 어느 때 태어났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스스로의 사명을 느끼고 알았을까요? 말한 이유들을 알았을까? 이러할진데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하고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해야합니다. 태어나 "나"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생멸의 인연법이 "나"의 업을 떠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업에서 업장으로 일어나니 업을 소멸해 가는 수행, 정진 수련에 입장에서는 업장 해소니 업장으로 일어나는 좋고 나쁜 희노애락 생로병사 그 어느 것인들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감사하지 않고 기쁘지 않겠는지요? 모든 인연의 작용 현상에 늘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본성에서 언제부턴가 업을 "나"라고 인식했는지 모르지만 업으로의 "나"는 본성에서의 "나"가 아니니 본성에서의 가아(假我)라 할 것이며 업의 작용이 없는 현상이 없는 본래의 본성이 진정한 "나"입니다. 진아(眞我),.. 참 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진아의 참나의 나는 본성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할 것입니다. 본성의 진아 참 나로부터의 업을 "나"라 했으니 이 업의 "나"는 "나'라고 하되 가아(假我)라 합니다. 가아의 나와 진아의 나 사이에 놓여진 것이 걸림돌이니 그 걸림돌은 업이라 할 것입니다. 걸림돌 제거 업의 제거는 진아 참나 본성으로 가는 길이라 할 것입니다. 업은 연기의 인연법으로 나타나는 것을 생(生)이라 하고 없어짐을 멸(滅)이라 합니다. 생한 것 일어난 것은 업으로 인한 것이니 생한 것을 관(觀)하여 역(逆)으로 가면 업에 이르는 업장소멸, 제거라 할 것이며 생한 것을 관하여 바라보면 멸(滅)로 생한 것은 반드시 멸하는 생멸 순리(順理)라 할 것입니다. 순리는 업의 작용이고 현상이니 업의 제거를 위해서는 생한 것을 역관(逆觀)하여야 합니다. 역관에 수행 정진 수련하는 입장에서 보면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일 것입니다. 왜! 고통의 생 즉 고통의 생김은 업의 멸이고 생의 역관은 진아로 가는 길 해탈로 가는 길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좋고 나쁜 "나"로부터 생하는 일어나는 것은 좋은 건 좋은 대로 나쁜 건 나쁜 대로 그대로 즐거움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수행자는 매사에 감사하고 인생을 즐겨야할 것입니다. 태어남을 고통을. 수행자는 악업이든 선업이든 만나는 인연을 즐거워하고 반가워하고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인연이 도래함을 감사하며 도래한 인연의 만남을 반가워하고 생한 업을 역관하며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구나" "네가 있어서 그랬구나"하고 "아! 그래서..." 즐거워하며 바라볼 때가 한 번 두 번 많아질수록 아는 것으로부터 놓아버리게 되고 얽매였던 것으로부터 자유롭게될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의 행입니다. 나를 찾는 삶이고 삶의 연속성을 위해 머뭇거릴 것이 머무름 없이 수행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나를 위하여. 그런 만큼 수행은 고통으로 알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고 하는 자기 자신 안팎에 일어난 일들을 즐기며 역관하는 것입니다. 수행한다고 조용한 곳 수행처를 찾지만 세속의 시끄러움 속을 벗어나 조용하고 고요한 속세를 찾지만 세속을 벗어나 속세에서 역관이 안되고 업의 생멸만을 본다면 밖은 조용한 속세일지라도 안은 늘 시끄러운 세속일 것이며 시끄러운 세속 밖은 시끄러워도 안을 조용히 밖의 시끄러움을 따라 역관한다면 세속은 세속이 아니라 속세일 것입니다. 세속과 속세는 한 몸으로 안팎이 없거늘 자신의 업으로 일직선상을 그려놓고 안팎을 구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수행자는 보이는 모습 모양 형태의 형상에 있지 않습니다. 수행자라 하며 모습 모양 형태의 형상을 쫓는 이들이 많으니 눈빛만 배워 척만 배워 모습 모양 형태의 형상을 갖추고 자기 것도 아니면서 자기 것인 양 앵무새노릇 하는 이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이러한 이들을 배제하고 스스로 역관이 잘되는 분에 있어서는 마음 안으로부터의 속세인지 세속인지를 알며 세속과 속세를 구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속세와 세속이 둘이 아닌 가운데 수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수행함에 있어 밖이 시끄러우면 안으로 몰입하여 들어가기가 쉽지 않으나 몰입하면 깊게 몰입할 수 있고 밖이 조용하면 안으로 들어가기가 쉬운 반면 안에 몰입하기 쉽지 않으니 자신의 몰입력 집중력의 근기가 어떠냐에 따라서 다르다 할 것입니다만 찾아야 한다는 의미와 사명에서 본다면 교회에 나가는 것보다는 법당이 어떨까 싶군요. 교회는 믿고 의지하고 가르침을 따라가는 나를 버리고 가는 종교라면 법당은 믿고 의지하고 가르침을 받되 스스로 나를 찾아가는 종교라 할 것입니다. 찾아야 한다는 의미 사명에서 당연히 법당에서 이루어져야할 것입니다. 이는 교회 내지 법당 안은 고급의 신들이 있기에 저급령들로부터 보호를 해 주시기에 찾는데 찾아가는데 수행하는데 도움이 된다할 것입니다. 다른 쪽으로 한 번 살펴볼까요? 업으로 태어난 삶에서 육신도 업의 연(緣)이고 육신이 살아가는 삶은 업의 어우러짐 인연의 연속적이고 이 세상도 모든 형태의 형상 그 작용과 현상의 어우러짐이 연(緣)이니 업으로 인(因)과 연(緣), 연과 인이 되어 맺고 풀고 맺고 푸는 그럼으로 생멸하는 업이 업에서 허우적거리니 이 허우적거림으로부터 나옴 업으로의 벗어나기 위하여 머뭇거릴 것 없이 찾을 것이라면 이는 안팎으로의 대상과 그 대상으로부터 일어나는 걸림의 생을 역관함으로 안으로부터 고요함을 얻고 밖으로부터의 대상들을 놓아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긍정적 사고 방식을 가지고 밖으로 향하는 마음으로 안으로 추스리고 밖에서의 모든 일을 내 탓이다 내 복이다 매사에 감사하며 부정적 사고 방식을 떨치고 의식 안에서 잠재의식 안에서 무의식 안에서 긍정적 사고 방식에 긍정적 면을 보고 긍정적인 면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어둠이라 하나 어둠은 스스로의 어둠이 아니라 밝음이 조금 있는 것으로의 어둠이니. 칠흑의 어둠이라 할 때도 칠흑의 어둠 속에는 밝음이 아주 조금 있는 것이니 그 어느 곳에서든 조금 있는 밝음을 보고 밝음을 밝히는 그럼으로 늘 밝음을 보고 밝음에 있는 있게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많은 말을 했음에 말이 말에 있지 않고 의미와 뜻에 있지 않고 허공을 맴도는 이유는 왜일까? 놓아라. 사정없이 놓아버려라. 벗어라. 더 이상 벗을 수 없을 때까지 그리고 보아라 꽈리를 틀고 앉아 있는 이 누구인가 보아라 시방세계 찬란하게 비추는 광채를. 2002 . 6. 28 본성도 존재 존재자들이다 / 칠통 조규일 본성도 존재 존재자들이다. / 칠통 조규일 (본성이 존재 존재자인 세계들에 올라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본성들이 한 것입니다.) 예전(2004. 09. 26. 08:55)에 썼던 “고향을 그리워하듯 영혼도 고향을 그리워 한다.”란 글 제목을 보니 안에서부터 본성도 본성의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뿐만 아니라 본성도 본성의 본래 고향산천으로 회귀하고 싶어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존재 존재자들입니다. 선사님이 아니었다면 꿈같은 이야기이겠지만 이제 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그저 고마워할 따름입니다. 한다. 예 시간요. 2024. 08. 16 05:13 본성이 존재 존재자들이라면 나라고 하는 내 안에 본성이 존재 존재자들이라면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요? 향출입니다. 안 됩니다. 향출 빛향입니다. 안 됩니다. 난 누구인가요? 아무도 없는 텅 빔 모두를 다 포함한 향천 빛향천 빛입니다. 맞나요? 아닙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요? 저희들도 모릅니다. 선사님 스스로 찾으셔야 합니다. 시간요. 2024. 08. 16 05:18 예 이제 되었습니다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깨어나야 한다. 진정한 나로 / 칠통 조규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깨어나야 한다. 진정한 나로 / 칠통 조규일 이 몸이, 이 육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1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이, 이 육체가 많은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2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이란 육체 안에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3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이, 이 육체로부터는 받는 모든 고통은 인과 연으로부터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4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 이 육체는 나의 업을 인하여 인과 연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5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안에 이 육체 안에 나는 존재가 있어서 이 몸, 이 육체를 움직이며 운전하고 있고 인과 연들을 풀거나 또다시 얽어매거나 또는 업을 놓거나 업을 짓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6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 이 육체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고 바뀌고 달라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7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안에 육체 안에 있는 진정한 나는 신성하다고 하는 것이 8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안에 육체 안에 진정한 나는 자등명이란 빛이라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이 9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안에 육체 안의 나는 영혼불멸이며 영생하는 존재로 생사가 없는 존재란 사실을 아는 것이 10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 안에 육체 안의 나는 수시로 들락거리며 변하고 바뀌며 밝은 쪽과 어두운 쪽으로 오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11번째로의 깨어남이고 이 몸안에 이 육체 안에 나는 수시로 죽고 태어나면서 변하고 바뀌며 본래 고향산천으로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12번째 깨어남이고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며 진정한 나를 찾고 알고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려고 하고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애쓰며 생활하며 올곧게 올바르게 보이지 않는 쪽에 명조자도 생각하면서 생활하며 아는 것을 하나 하나 실천궁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세파에 세상 일들에 빠져서 물먹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안 그러며 즐길 수 있어야 스스로 깨어나 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2022. 07. 17 07:41 이렇게 해서 많은 분들이 깨어나리라 봅니다만 쉽지 않습니다요 그럼에도요 카페 일을 보기 앞서 한 생각 메모장에서 호서 김래현님의 글을 읽으니 생각이 일어나서 일어난 생각대로 답글로 쓴 글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기 위해서 용천 옴 마니 반메 홈 / 칠통 조규일 또다시 밝혀 올라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 먼저 저희들과 이야기를 하셔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이 위 세계를 왜 올라가시는지요? 진장한 내가 누구인가? 그 진정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서 올라갑니다. 나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그 진정하는 나를 알려주고 그 진정한 나로 돌아가게 되면 안 밝히나요? 그러면 밝힐 이유가 있나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다르게 해야 하나요? 예. 그래 주시면 더욱 더 좋습니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요? 모두입니다. 전체이겠지요. 전체이고 천체있겠지요. 아닌 것 없이 모두고 나라고 하면 나라고 할 것이 없고요? 그럼 그렇지요. 그럼에도 있는 나는 누구인가요? 살아 있는 존재입니까? 생명 자체입니까? 생명 근원 자체입니까? 그 외 다른 무엇입니까? 저희는 근본의 청이라고 합니다. 근본의 청은 무엇인가요? 질문이 잘못되었나요? 아닙니다. 그럼 근본의 청은 무엇입니까? .... 대답을 안 하는 건가요? 못하는 건가요? 안 하기도 하고 못 하기도 합니다. 그럼 나는 근본의 청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이겠네요? 예 근본의 청을 찾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밝혀 올라가셔야 합니다. 밝혀 올라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할래를 하시고 옴 마니 반메 홈을 하셔야 합니다. 옴 마니 반메 홈이란 무슨 뜻과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알고 있으신 것처럼 옴은 할래의 성기를 말합니다. 일종의 섹스, 탄트라, 탄트라 섹스를 말하는 것이지요. 마니는 말 그대로 많이를 말하는 것이요. 반메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이란 뜻이고요. 홈은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옴 마니 반메 홈이란 섹스, 탄트라, 탄트라 섹스를 허리가 휘어지도록 아프도록 많이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와서 나와 함께 섹스, 탄트라, 탄트라 섹스를 허리가 아프도록 휘어지도록 많이 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옴 마니 반메 홈을 하면 훔이 아닙니다. 홈입니다. 섹스, 탄트라, 탄트라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모든 존재들을 누구나 부르는 소리가 음, 음파라고 보시면 됩니다. 단순하게 영적 존재로 보시면 안 되고요. 모든 존재들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명이란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이런데도 할래를 하시고 옴 마니 반메 홈를 하겠는지요? 진정한 나를 찾아가기 위해서 해야 한다면 해야지요. 그렇지요. 힘들고 괴로움은 감수해야 합니다. 탄트라, 탄트라 섹스. 섹스를 원하는, 하고 싶은 모든 수없이 많은 생명이란 모든 존재들이 달라 붙을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선사님을 필요하는 하는 분들만 오게 하려고 한다면 앞에 용천을 붙여서 하면 누구나라기보다는 선사님이 필요한 탄트라, 탄트라섹스, 섹스를 원하는 갈구하는 모든 생명 존재들은 다 온다고 하겠습니다. 누구나 다 오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지요. 그래서 말입니다. 이제 밝혀 올라가기 위해서 용천 옴 마니 반메 홈을 5분 동안 염을 하셔야 합니다요. 5분 동안 용천 옴 마니 반메 홈을 한 다음에 또 말씀드리겠나이다. 5분 넘는 것은 상관없지만 5분이 안 되면 안 됩니다. 용천 옴 마니 반메 홈 (5분 이상하십시오. 체크하겠습니다. 반복해서 염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용천은 천체 빛향 위에 있는 용천을 말합니다. 단 천체 빛향 위를 용천을 의념 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용천은 그곳에 있는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념하지 말고 그곳의 에너지만 의념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그냥 용천만 하셔야 합니다. 인간의 발바닥 용천을 의념 하면 절대 됩니다. 인간의 용천도 같은 뜻과 의미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의념 하고 하지 않고 상관 없이 용천을 하시면 됩니다. 이제 시작하십시오.) 용천 옴 마니 반메 홈 2022. 04. 01 02:52 ~ 02:57 – 00:05:15 홈이나 훔이나 같은 뜻입니다. 인간 일반인들이 할래 옴 마니 반메 홈(훔)을 할 경우는 어떤 일이나 형상들이 일어나나요? 그것은 모든 많은 인연들이 정리가 되고 또 많은 새로운 인연 역시도 정리가 되어 공부나 수행하기가 좋고 또 걸리적거리는 영적 존재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영적 존재들이 붙어 있다고 할 때 무서워서 떨어져 나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만 너무 오래하면 오히려 영적인 존재들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럽다. 하겠으니 많게는 하루 10번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고 하루 5~10분 정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겠습니다만 이것보다는 용천 옴 마니 반메 홈(훔)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용천 옴 마니 반메 홈(훔)을 하면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같이 인연들이 정리가 되고 새로운 인연들 역시도 정리가 되어 맑고 깨끗하게 되고 또 위 세계로 올라가는데 탁월한 힘을 얻게 되고 뿐만 아니라 영적존재들이 잘 붙거나 붙어 있는 경우에는 용천 옴 마니 반메 홈(훔)을 하면 도망가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만큼 영적 존재들로 시달리는 분들의 경우, 일반인의 경우 수행하는 경우나 용천 옴 마니 반메 홈(훔) 하루 20~30분을 염송하면 영적 존재들로 시달리는 일이 없게 된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마음과 몸, 생각이 맑고 깨끗해 진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할래 옴 마니 반메 홈(훔) 보다는 용천 옴 마니 반메 홈(훔)을 매일 같이 하루 20~30분 정도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하겠습니다요. 또 해줄 이야기가 있나요? 예 기존 옴 마니 반메 훔이 있는데요. 거기에 용천을 더하여 더 크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라 보시면 틀리지 않다고 하겠나이다. 시간 써주시면 좋겠습니다요. 2022. 04. 01 06:55 이렇게 해서 모든 일들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게 되겠나이다. 말씀 드린 모든 일들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저희들이 소임을 맡아 행하도록 하겠나이다. 우리들은 용천황 세계의 용천 꽃황천 황들입니다. 지구에서는 보면 세상 천지를 두루 살피며 이롭게 하는 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요.. 빛으로 가는 길 칠통 사랑방 | 진정한 나를 찾아가기 위해서 용천 옴 마니 반메 홈 - Daum 카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숙지하고 올곧게 올바르게 나를 찾아가도록 하는 노래 빛으로 가는 길 칠통 사랑방 |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숙지하고 올곧게 올바르게 나를 찾아가도록 하는 노래 - Daum 카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숙지하고 또 올곧게 올바르게 나를 찾아가도록 하는 노래 상춘 곡선 향 노래 2022. 04. 08 02:49 ~ 03:00 – 00:11:32 꽃향 들천 향천 천향 들꽃 성향 황천 천향 들향 황천 천향 들꽃 성향 황천 천향 들꽃 성황 황천 천 성 성천 향꽃 꽃성 빛향 곡선 향꽃 성향 성향 들꽃 성향 황천 천향 들꽃 성향 황천 천향 옴니 이니 꽃성 쫑향 사바하 꽃빛 성향천 천향 들꽃 성향 황천 성천 천빛 성향 빛향 들꽃 꽃성 빛향 황천 천성 빛향 본래 상천 천상 빛향 들꽃 성황 황천 들꽃 성향 본래 꽃성 빛향 들천 천향 꽃성 빛향 황천 천향 들꽃 성황 황천 천상 빛천 상황 천성 빛향 황천 천성 빛향 들꽃 성황 황천 천향 들꽃 성황 천상 천 상 빛향 꽃성 빛향 들꽃 성황 황천 빛향 들꽃 성성 들천 성황 꽃성 쫑향 들꽃 성황 황천 꽃성 빛향 들꽃 성천 곡선 황성 천성 빛향 황천 천향 들꽃 꽃성 꽃향 들꽃 성황 황천 빛향 황꽃 성빛 황천 천향 들향 황천 사바하 본래 상천 옴니 마니 꽃성 빛향 들꽃 성황 황천 천향 들꽃 성향 황천 천향 들꽃 성황 황꽃 성황 꽃성 빛향 들천 천향 들꽃 성향 황천 빛향 들천 황천 천향 들꽃 상천 천상 빛향 황꽃 나 홀로 살아가는 니 홀로 살아가는 찾아가는 길 위에 천상 빛향 들꽃 성향 황꽃 꽃성 빛향 들꽃 성 황 황천 성천 이니 옴니 꽃빛 성향 황천 천향 들꽃 성황 황천 빛향 들꽃 성황 황천 천향 들꽃 황출 출꽃 성황 있는 그대로 자체 본성 빛향 황천 본향 들꽃 성향 황천 천향 들꽃 꽃성 빛향 황천 천향 들꽃 황천 꽃성 천상 빛향 들꽃 성황 황천 천향 들꽃 성향 황천 향천 천빛 성빛 향천 빛향 들꽃 성황 황천 빛향 들꽃 성천 황출 출꽃 성황 황천 꽃성 빛향 천성 빛향 천향 들꽃 성황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 존재자들과 함께 나 찾아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 찾아가는 길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은 나에 몸을 이루고 있는 일합상의 모든 존재 존재자들과 함께 찾아 올라가는 것이지 나 홀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명백히 명심하고 올곧게 올바르게 나를 찾아 가도록 하여야 합니다요. 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일합상의 존재 존재자들과 결별해서는 절대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없고 찾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만큼 몸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과 함께 찾아 올라가되 몸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이 모두 깨어나 일어나 활동하도록 하고서 나 찾아 올라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몸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 중에 깨어나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고 활동을 못하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로 있으면 걸림과 장애가 발생하여 나 찾아 올라가는데 진정하게 올곧게 바르게 찾아갈 수 없는 만큼 내 몸이라 하는 몸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을 모두 다 깨우고 일어나 활동하도록 하고서 나 찾아 올라가야 진정한 나를 찾아 올라갈 수 있다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고서는 나 찾아 올라간다 할지라도 올곧게 올바르게 진정한 나를 찾아갈 수 없는 만큼 몸을 소중히 몸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을 모두 다 깨우고 일어나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서 나 찾아 올라가셔야 합니다요. 그 첫 번째는 이제 모두 다 깨어나 일어나 활동합시다. 그 두 번째는 탁치고 이제 그만 깨어나 일어나 활동합시다. 입니다. 그럼에도 깨어나지 않는 이들이 있으면 탁 탁치고 이제 그만 깨어나 일어나 활동합시다. 하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꽈꽝 꽝 꽝 깨어나 일어나 활동합시다. 그러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으면 너희들 죽을 거야, 아니면 죽지 않을 것 같으면 이제 모두 다 깨어나 일어나 활동해야 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럼에 깨어나 일어나지 않을 때 그럼 죽어라. 죽기 싫으면 깨어나 일어나 활동하거라. 예. 이제 모두 다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밝혀 올라가시면 되겠나이다. 이제 되었나이다. 우리들 모두 다 깨어나 일어나 활동하기 시작했나이다. 이제 진정한 나 찾아 밝혀 올라가시면 되겠나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의 하나의 세계부터 시작됩니다만 이미 5개를 밝혀 올라오셔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게 되는 초입의 통합문에 계십니다. 이제 6,7,8,9,10번째까지 밝혀 들어내시고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집착을 모두 다 내려놓고 진정한 나를 찾게 해서 진정한 내가 되어 올라오게 하다 / 칠통 조규일 집착을 모두 다 내려놓고 진정한 나를 찾게 해서 진정한 내가 되어 올라오게 하다 / 확철 칠통 명철 조규일 이제부터는 우리들과 함께 올라가셔야 합니다. 우리들이란 누구신가요? 이 위 세계 성출 향꽃 성성 꽃황 천황 천꽃성 황천 황황 꽃황 천황 천꽃성 황꽃성 쫑향천 황들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올라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것은 요. 우리들을 모두 깨우져서 진정한 나를 찾게 하시고요, 우리들 스스로 집착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다 내려놓고 올라갈 수 있게 해주셔야만 올라가실 수 있습니다. 아니고서는 저희들도 올라갈 수 없고 뿐만 아니라 선사님께서도 올라가실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들의 집착을 모두 다 내려놓고 진정한 나를 찾게 하셔서 우리들과 함께 올라가십시오. ‘게송이면 되겠나요?’ “게송으로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업을 녹여서 집착을 놓게 하고 나라고 하는 가아를 버리고 진정한 진아를 알게 하고 그렇게 해서 진정한 내가 드러나게 해서 진정한 나를 알고 찾게 해야겠네요?’ “당연하지요.” ‘어려운 난제겠네요?’ “어려울 거 없습니다. 의외로 간단 명료합니다.” ‘그런가요?’ “예” ‘여러분들은 답을 알고 있네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그렇겠지만요.’ “예” ‘나는 할 수 있는데 여러분들은 알면서 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예”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도 그렇게 되시기를 바라니 말입니다.’ “그것은 요. 이 세계 이 세상에서의 모든 집착 모두 다 내려놓거라. 너희들은 성황 청이다. 그러면서 성황 청을 보여주시고 성황 청이 되도록 하여 주시면 됩니다.” 성황 청을 본다고 보니 동그랗고, 동그스럼한 모습에 뽀쪽뽀족하게 길고 짧게 끝 모양은 둥근모양으로 붙어 있는 모습이고 색체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깔의 모습이다. ‘맞나요?’ “맞기는 한데요. 빠진 것이 있습니다.” ‘아래 쪽으로 줄줄이 매달린 끈 같은 것을 말합니까?’ 그러고 보니 하나를 보면 위에서 말한 모습으로 보이는데 멀리서 보니 무수히 많은 풍선 같은 것이 우후죽순처럼 위로 올라가 있고 아래로는 무수히 많은 끈 같은 것이 일직선으로 아래로 내려져 있다. 마치 철사나 철근이 위에서 아래로 냐려꽂혀 있는 듯 보인다. 보이는 전체가 다발같이 보이기도 하고 서로 단단하게 묶여져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아래로 내려가 본다고 보니 아래쪽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쪽은 마치 본드 강력한 무엇인가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두 개 붙어 있는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는데 옆에 붙어 있는 것 때문에 위로 올라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붙어 있는 곳 옆에 떨어져 있는 아래쪽으로 동그렇게 보인다. 동그렇게 보이는 안쪽을 본다고 본다. 서광 꽃황 출 성 꽃이라고 써 있다. 아래 쪽과 연결된 아래쪽, 동그란 안쪽 위 아래 전체를 위 아래 연결된 틈 사이에 서광 / 꽃황 출 / 성 꽃..... 써서 서로 떨어지게 한다. 그러니 들고 일어난다. 그러면서 위에서 아래쪽 철사같고 철근같은 끈 같은 것도 벌어지고 떨어지는 것 같은 곳이 생긴다. 그곳을 들여다 본다. 그 안쪽에 성광 성꽃 향 출 성성 꽃황 출 향이라고 써 있다. 실 같고 끈 같고 철사 천근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곳에 떨어진 곳으로부터 성광 / 성꽃 향 출 / 성성 꽃황 출 / 향 .... 하며 글자들을 입김으로 입으로 호~오~우 불 듯이 분다. 부는 입김에 떨어지며 위쪽에 동그란 성황 청이 올라간다. “와~ 성황 청이다.” “이랗게 해서 우리들은 성황 청을 보았고 성황 청을 찾았습니다.” “저것이 진정한 나란 말인가?” “이제야 성황 청을 보는구나.” 아래서 올라가는 성황 청을 따라 올라오는가 하면 올라가는 성황 청에 깃들 듯 들어가는 듯 보인다. “이제 올라가는 성황 청들과 함께 올라가시면 되겠습니다.” 2020. 08. 23 10:57 진정한 내 안에 나는 지금 현재 이 몸을 이루고 있는 일합상의 모든 존재, 존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다 / 칠통 조규일 진정한 내 안에 나는 지금 현재 이 몸을 이루고 있는 일합상의 모든 존재, 존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다 /성출향꽃 성황 껓 녹음기능 해놓고 직접 녹음한 것이어서 글이 없어서 백순길님에게 속기 부탁해 받은 속기입니다. ◈ 191125(18)-3 진정한 내가 일합상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에게 진정한 내가 ◈ 나는 몸이란 일합상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진정한 내 안에 나는 지금 현재 이 몸을 이루고 있는 일합상의 모든 존재, 존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 몸을 빌려서 하십시오. 너희들 지금까지는 잘 해왔는데 앞으로도 더 열심히 잘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하나, 진언을 불러 주리니 이 진언을 읽고 모두 다 해탈, 완성, 초완성 해탈해서 나를 보호, 보필하여 내가 가고자 하는 모든 세계를 밝혀 드러냄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도록 하라. 성~출향꽃 성황 꽃황출 성성황출 성황꽃황 철황철꽃 성킹향출 성성꽃황 철황철꽃향 출향성꽃 성황 성꽃황 철철향철 향꽃황 출향성꽃 서로 서로 하나 되어 한몸 한덩어리 하나가 되어 나를 보호, 보필하며 내가 가고자 하는 세계, 밝히고자 하는 모든 세계를 밝혀 드러냄에 있어 부족함 없도록 모두 다 건강, 건강 하거라. 그리고 모두 다 해탈, 해탈 하거라. 꽝 꽝 꽝 꽝 쫑 쫑 향 출 성 황 꽃 황 너-깨져. 빵 빵 쫑 쫑 향 출 성 황 성 꽃 향 출 성 황 꽃 황 출~ 성성향출 성황꽃황 철황철꽃향 출출성꽃 성킹향출 성황꽃황 출 황 성 꽃 향 출 성 꽃 황~ 가자가자 어서 가자 모든 세계 모두 다 방문하고 모든 세계 모두 다 밝혀 드러내자. 가자가자 어서 가자 너희들 없이 내 어찌 모든 세계 모두 다 방문하고 모두 다 밝혀 드러낼 수 있겠느냐! 가자가자 나를 보호, 보필하고 가고자 하는 모든 세계의 모든 세계 모두 다 밝혀 드러내자. 지금까지는 너희들 모두 잘해왔는데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할 것이다. 꽃황 철꽃황철황 철꽃성 쫑킹향출 성황 성꽃황 철황 철꽃성 모두 다 에너지 충분하게 부족함 없이 모두 다 가져다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건강하게 바르게 올바르게 보고 생각하며 하나도 어긋남 없이 나를 보호, 보필하며 모두 다 관하여 살피며 가자가자 어서 가자 모든 세계 모두 다 밝혀 드러내러 가자가자 어서가자 너희들에게 혜택주려니 모두 다 잊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나를 보호, 보필하고 부족함 없도록 모든 세계 밝혀 드러내는데 부족함 없도록 하거라. 너희들의 본래 고향산천 부모형제, 자식들은 행복하게 부족함 없이 잘 살 수 있도록 해놓았으니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들 모두 다 할 때까지 나를 보호, 보필하여 모든 세계 모두 다 드러낼 때까지 이 몸이 다하여, 이 몸과 인연이 다하여 갈 때까지 나를 보호, 보필하며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른 마음 갖고 법과 진리 어긋남 없이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모두 다 하나 한몸 한덩어리가 되어 나를 보필, 보호하며 모든 세계 밝혀 드러내 부족함 없도록 하거라. 출-출-성~꽃 황철 황꽃황 철황 철꽃향 출향 성꽃성 쫑킹황출 성황 성꽃성 출출향꽃 성황 성꽃향 출~~~ 지금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진언한 이 모든 것들이 모든 세계에 모두 다 퍼져서 변하고 바뀌고 나를 보호, 보필하며 가는 모든 이들이 모두 다 듣고 바르게 보호, 보필하며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두 다 지금까지 수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밝혀 드러내는 모든 세계들을 모두 다 밝혀낼 때까지 여러분들이 나를 보호, 보필 잘해서 밝혀내지 못하는 일 없이 모두 다 밝혀낼 수 있도록 많은 수고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고마웠고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잘 하셔서 내가 모든 세계들을 밝혀 드러내 놓는 것에 대해서 부족함 없도록 열심히들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대신에 여러분들의 본래고향, 부모형제, 자식들은 여러분들의 노고에 못지않게 행복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부족함 없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임을 여러분 앞에 맹세합니다. 앞으로 올라가다 보면 또 많은 분들이 바뀌고 또 나를 보호, 보필하고 가실 텐데 그분들 역시도 어긋남 없도록 보호, 보필 잘 하셔서 내가 모든 세계들을 모두 다 밝혀 드러냄에 있어 부족함 없도록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과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도 기쁘고 행복하고 내 마음이 여러분들한테 모두 다 잘 전달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앞으로 보호, 보필하고 모시고 올라가시는 분들 역시도 지금 이 이야기들이 전해져서 그분들 역시도 잘해줬으면 고맙고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더 이상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지 않고 편안하게 밝혀 드러내고 밝혀 올라갈 수 있도록 많이들 노력하고 애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튼짓 하는 분들 조심하세요. 허튼짓 하다가 걸리면 본인뿐만 아니라 고향의 가족까지도 그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절대로 허튼짓 하지 마시기 바라겠습니다. 법과 전리에 어긋나지 않고 바르게 잘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그만 여러분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보다는 나 이외의 다른 분들을 더 이롭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나 이외의 다른 분들을 이롭게 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그 보답 있을 겁니다. 어느 때 어느 생에서 꼭 그 보답 받습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습니다. 빈틈없이 돌아갑니다. 그러니 명심하고 또 명심해서 바르게 하시며 사리사욕을 채우기보다는 나 이외의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는데 더 많은 힘을 쏟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 글들을 추가하고 싶어서도 속기를 부탁해야했고 또 직접 녹음해서글이 없으니 속기를 부탁한 겁니다. 속기를 해준 백순길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 복 꼭 받을 겁니다.) 2019. 13:22:39 < 선사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조규일] [오후 6:50] 파일: 191125(18)-3 진정한 내가 일합상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에게 진정한 내가.mp3 [조규일] [오후 6:50] 자꾸만 보내주라고 하네요. 한 번 들어보세요. 별거 없는데요. [000] [오후 6:53] 네네 감사할 따름이지요 녹은 하시느라 잠시도 쉬실 틈이 없으시네요 여기서 나라고 하심은 현실의 선사님이 아니시고 진정한 선사님이신거지요() [조규일] [오후 7:21] 예, 현실의 나는 몸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 입니다 [000] [오후 7:22] 저희는 열심히 듣고 행하려 노력하면 되는지요... [조규일] [오후 7:23] 그러지요. 그리고 알아차리고 믿으면 된다고 합니다 [000] [오후 7:24] 네네()()() 구절 구절 너무 감사하고 감사하며 큰 의지 삼아 따르면 되겠다 싶습니다 [조규일] [오후 7:25] 너에게 보내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을 자꾸만 이야기해서 보내게 했단다 현실의 아버님이시랍니다 [000] [오후 7:32] 제가 과분한 복을 받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마음 주셔서 감사합니다ㅠ [000] [오후 7:41] 선사님 듣다보니 또 우문을 여쭙니다 선사님 몸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도 윗 세계에 우리와 같이 부모 자식이 다 있는 것인가요? [조규일] [오후 8:56] 어제 보낸 글을 읽어보셨나요? 누구나 몸이란 일합상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은 모두 다 위 세계에 부모형제 자식들이 있다고 보시면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들과 같이요, 다만 그러한 사실을 모를 뿐이지요. 지금의 내가 현실의 내가요. 그럼에도 일합상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은 거의 다 알고 있다고 들립니다요. [조규일] [오후 8:57] 진정한 나에게 대해서 이와 같이 대답하네요. 00님이 질문한 질문에 대답을 요. [조규일] [오후 8:57] [00] [오후 7:50] 선사님의 진정한 나라시면 선사님 근원의 나를 말씀하시는건지요? [조규일] [오후 8:54] 근원은 아니고요. 밝혀 올라온 나, 이 몸에서의 진정한 나를 말하는 거랍니다. [00] [오후 8:55] 네 진정한 나의 말씀을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000] [오후 9:00] 아~ 감사합니다 좀더 세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편안히 쉬셔야할 시간이신데요..ㅠ [조규일] [오후 9:04] 수행하며 진정한 나를 찾아 올라온 나와 몸이란 일합상을 이루고 있는 존재 존재자들과 이야기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습니다. 육체가 있고 그 안에 영체가 일반적으로 있다면 저 같은 경우에는 몸이란 일합상의 존재 존재자들과 대화가 가능하니 이들이 있고 현실의 내가 있고 밝혀 드러낸 진정한 나 영체와 같은 내가 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몸이란 일합상이란 존재와 존재자들과 일반적으로 영체라고 할 수 있는 나와의 대화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000] [오후 9:09] 아~이제 이해가 됩니다 어제 보내주신 글을 읽으며 너무도 몸을 마구 대했구나 싶었거든요.. [조규일] [오후 9:11] 모르니 대부분들 그러지요 앞으로 안 그러시면 되지요 고마워하고 미안해 하면요 [000] [오후 9:11] 네네()()() [000] [오후 9:19] 선사님 윗세계 우리네들 부모님과 일합상 존재자들의 부모님과는 다른 형상이실까요? [조규일] [오후 9:21] 같기도 할 때도 다르기도 할 때가 있는데 대체적으로 다르답니다 [조규일] [오후 9:22] 거의 다 다르답니다. [000] [오후 9:24] 그럼 일합상의 존재는 아랫 세계로 다시 내려올 때는 역시 육체를 이루는 인간의 업식따라 인연따라 일합상의 존재로만 내려오게 되는지요... [조규일] [오후 9:27] 예 그렇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들이 인간이 되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그만큼의 업이 있어야 한답니다. 인간이 될 수 있는 업 조건이 되어야지 아니면 어렵답니다. [000] [오후 9:29] 아! 감사합니다. 궁금한 것을 다 풀어주셔서... 에구..늦은 시간에ㅠ 편안히 주무십시오. [조규일] [오후 9:30] 예. 행밤 굿밤 되세요. [조규일] [오후 6:47] 한 번 들어봐요 [***] [오후 7:57] 명분과 역활, 약속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본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당위성을 일갈해 주시니 망설이지 않고 쭈뻤거림없이 변방 아닌 중심으로 기쁘게 따라 올라가겠습니다. 이로써 또 하나의 지평이 새로이 열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오후 7:58] 모두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듯합니다 [***] [오후 7:58] 현재의식은 도무지... 생각을 듣는 것이 진정한 영청이다. 생각을 듣는 것이 진정한 영청이다. / 확철 칠통 명철 아이 참 이러지 마시고요, 철황 철철황황 청황 총황 쪽황이라고 하시지요. 우리가 흔히 생각이라고 하는 생각은 나라고 하는 일합상 안팎의 존재자 생명 생명근원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이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며 서로 간의 대화이며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 전하는 대화다. 이것이 강력하게 뭉쳐져 있으니 나라고 하는 내가 되어 내 안에서 일어난 내 생각이고 내가 하는 생각이라고 한다. 생각이, 내가, 강하게 뭉쳐 있기 때문에 뭉쳐 있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려면서 자기 자신에 일어난다고 하면 모두 다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생각들을, 뭉쳐져 있는 강한 나를 여의고 생각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관찰하고 성철해 보면 생각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부딪쳐 일어나는 것이거나 스스로 일어나는 것들이 생각이라고 했지만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누군가? 라고 하면은 자기 자신의 오랜 전생의 자기 자신과 지금 자기 자신을 이루고 있는 일합상 안에 존재자. 생명, 생명근원들, 일합상 몸통 안팎을 드나드는 분들이 하는 이야기다. 내가 강하면 강한 만큼 생각들은 자기 생각이 되고 내가 된다. 내 생각이 된다. 나를 내려놓으면 내려놓은 만큼 생각들은 그냥 생각이고 그냥 생각이라고 생각되는 생각들은 자기 자신의 일합상 안팎의 각기 저마다의 말이고 이야기가 되어 들린다. 생각을 하나하나 알아차리고 보면 내 생각이었던 생각들은 내 생각이 아니라 일합상 안팎의 존재자, 생명, 생명근원, 전생 수많은 나와 인연 있는 돌아가신 분들, 위 세계 인연 있는 분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이때부터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라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이 생각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생각이 누군가 이야기하듯 들린다. 마치 일어나는 생각이 누군가에게 이야기 듣듯이 듣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영청이다. 강한 자아는 나라고 하는 일합상 안의 존재자, 생명, 생명근원, 수없이 많은 전생의 수없이 많은 나와 인연 있는 돌아가신 분들, 위 세계 인연 있는 분들의 이야기는 강한 자아에 뭉쳐져서는 내가 된다. 내 생각이 된다. 이와 같이 내 생각이라고 했던 내 생각은 강한 자아가 없어지면서 강하게 끌어 뭉쳐져 나라고 했던 뭉쳐져 나라고 했던 생각은 느슨해진다. 느슨해진 생각은 각기 저마다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생각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리게 되면 처음에는 나 이외에 누군가가 말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생각이 누군가 말하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면서 생각은 단순히 일어난 생각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 생각으로 일어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알게 되어 생각을 들으면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린다. 이것이 영청이다. 최고 최상의 영청은 대면해서 직접 듣고 것이고 그 다음 진정한 영청은 생각으로 일어나는 것을 듣는 것이고 그 다음 영청은 매개체(영적존재)를 통해 듣는 것이다. 이외의 영청은 없다. 매개체를 통해 듣는 영청은 18단계를 넘어서 듣지 못하고 뿐만 아니라 생명 및 우리들이 흔히 무생물이라고 하는 이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 생각으로 듣는 경우에는 어느 세계 어느 누구든 들을 수 있고 생명 및 무생물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지구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영청을 듣는 이들은 100이면 100 매개체를 통항 영청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거다. 생각으로 통해 들었을 때 진정한 영청을 듣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만큼 공부가 되어야 하고 그 만큼 자기 자신을 놓아야 하고 그 만큼 자아의식이 강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만큼 몇 되지 않는다. 본인에게 공부하는 사람 외에 지구 상에는 없다. 추가할 게 있는가? 예 있습니다. 저희들도 알려주세요, 누구시지요? 나라고 하는 나도 수없이 많은 존재자들이 나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위 세계로 올라갈 때마다 나의 본래 고향 산천이라고 하되 이때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라 나를 이루고 있는 수없이 많은 나 중에 하나의 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나는 아니고 진정한 나를 찾아 위 세계로 가야한다고 할 것입니다. 이는 맨 처음의 태초 최초 더 이상 최고 최초 태초 없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수 없이 많은 내가 있다 할 것이며 이 나는 위로 올라갈수록 나는 드러나고 나라고 했던 나는 본래 고향으로 되돌리며 위 세계로 위 세계로 올라가면서 나의 본래 고향 산천으로 되돌리고 되돌리며 진정한 나를 찾아 가야 한다 하겠다. 2017. 04. 26 09:30 진정한 나를 찾아 이와 같이 올라왔고 이와 같이 올라가고 있다 / 칠통 조규일 반야바라밀행 신행근본의 길과 자비바라밀행 대광의 길 이란 제목의 글 속 수행 정진하며 올라온 길들을 밝혀 놓은 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의 빛 자등명과 내 밖의 자등명이 하나가 될 때까지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란 글에서 지금도 자등명이 하나 될 때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글을 썼다. 빛덩어리를 빠져나와 빛덩어리 안에 플러스 27단계 아수라 0 지옥 마이너스 27 총 55단계에 빛덩어리를 관리 통솔하는 28단계를 포함 56단계라고 말했었다. 56단계 안을 지구가 속한 우주라 했고 지구가 속한 우주를 빠져나오면 56단계를 벗어났다고 할 것이다. 28단계 위로 29단계와 30단계가 있다. 빛덩어리를 빠져나와 28단계에 올라오고 28단계에 올라와서 29단계, 30단계에 올라와서 출신(出神)을 하여 다중 우주를 빠져나오고 다중 우주를 빠져나와 본성의 빛 자등명에 이르고 본성의 빛 자등명에 이르러 본성의 빛 자등명에 들어가고 들어가서 중심에 들고 중심에서 빠져나와 본성의 빛 자등명 위에서 백두의 빛 자등명에 올라옴으로 자등명 세계에 올라오게 된다. 자등명 세계에 올라와서 내 안의 자등명과 내 밖의 자등명이 하나 될 때까지 자등명 세계를 밝혀 드러내고 밝혀 드러내기 수개월이 지난 2013. 11. 27일 자등명 속에 자등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있음을 알고 자등명을 움직이게 하는 이것의 이름을 그 당시 묘명 묘태등명이라 이름지었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기를 생명의 본성이 자등명이라고 했었는데 묘명 묘태등명이 있는지를 알고부터는 자등명도 본성이 아니라 공의 성품처럼 본성의 속성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 56단계 안에서 물질에 공의 성품은 본성이고 물질은 본성이 속성이고, 자등명 세계 안에서는 자등명이 본성이고 공의 성품은 본성의 속성이고 묘명 묘태등명 세계 안에서는 묘명 묘태등명이 본성이고 자등명은 본성의 속성이다 공의 성품으로 내가 너고 네가 내가 될 때 확철대오의 깨달음을 증득한 것이라 할 것이라면 자등명으로 내가 너고 네가 내가 될 때 자등명태묘자등명본성 증득한 것이라 할 것이다 묘명묘태등명(妙明妙太燈明) 이란 자등명 속에서 자등명을 움직이게 하는 것으로 자등명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 자등명의 폭발로 공의 성품이 드러나 허공이 있는 것과 같이 묘명묘태등명의 폭발로 자등명이 드러나 자등명 세계가 있는 것과 같다. 공의 성품이 본성의 속성이고 자등명이 본성이라고 한 것과 같이 묘명묘태등명에서 보면 묘명묘태등명은 본성이고 자등명은 본성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묘명묘태등명 세계에 올라와서는 나란 묘명묘태등명과 내 밖의 묘명묘태등명이 하나 되는 비묘자등명 세계에 올라왔고, 비묘자등명 세계에서 또 그와 같이 올라왔다. 이와 같이 물질의 나에서 공의 성품, 확철대오의 깨달음을 증득한...공의 성품 - 자등명(自燈明) - 묘명묘태등명(妙明妙太燈明) - 비묘자등명(秘妙自燈明) - 신체(神體:神化)가 되어 올라오고- 명비등명(明秘自燈明) - 신자등명(神自燈明) -신명(神明) - 초명(超明) - 명시(明始) - 명신(明神) - 태시(太始) -시태초(始太初) - 시초시(始初始) -시태조명(始太祖明) - 태시명(太始明) - 초태시(超太始) -......(여기까지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 올라와 온 세계까지 정리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아 여기까지 정리를 마치고 나머지는 천천히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내 안의 나와 내 밖의 내가 하나 될 때까지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2014. 05. 30 09:19 본래 나, 진정한 나, 특수한 나는 이와 같이 다르다 / 칠통 조규일 본래 나, 진정한 나, 특수한 나는 이와 같이 다르다 / 확철 칠통 명철 황황 꽃황철 황 조규일 “지금부터는 본래 나들이 밝혀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올라가기 위해서는 진언 경이 필요한데요. 필요한 진언 경을 밝혀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는 진정한 나를 불러 물어볼 생각입니다.” “진정한 나여! 밝혀 올라가는데 필요한 진언 경을 알려 주소서,” “이렇게 해서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희들에게 먼저 고백부터 하십시오.” “무엇을 고백해야 하는지요?” “본래의 내가 된 것에 대해서 우선 먼저 고백하십시오,” “내가 본래의 내가 된 것은 요. 진정한 나에서 빅뱅해 떨어져 나와...진정한 나님이 설명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본래의 나는 진정한 나에 얼기설기 진흙탕 속에서 진흙을 덮어 쓴 것과 같이 빅뱅이 일어나면서 빅뱅이 일어난 진흙탕 속 같은 속에서 진흙들이 달라붙어 덮어씀으로 인하여 진정한 나에서 본래의 나가 생겨난 것입니다. 진정한 나 없이는 본래의 나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며 뿐만 아니라 본래의 나에서 본래의 내가 생겨난 것 역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진정한 나에서 본래의 내가 생겨난 것은 위와 같고 본래의 나에서 본래의 내가 생겨난 것은 위와 같되 진정한 나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나로부터 생겨났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나와 본래의 내가 생겨난 것은 같은데 서로 다른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요. 진정한 나에서 파생된 것이 본래의 나고 진정한 나는 특수한 나로부터 파생되어 생겨났다는 것이 다릅니다.” “단순히 생겨난 것으로부터 다른 가요?”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요?” “진정한 나는 그만큼 순수하고 순백하며 뿐만 아니라 빛의 밝기가 어마어마 엄청나다하겠으며 반면에 본래의 나는 그만큼 순수 순백 빛의 밝기가 덜하다 하겠습니다.” “단순히 빛의 밝기로만 이야기 하나요?” “예 그렇습니다.” “빛의 밝기 외에 다른 것으로 표현한다면 몇 번이나 빅뱅이란 것을 겪으며 티끌먼지를 뒤집어 씌었느냐가 다르게 하겠습니다.” “진정한 나와 본래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습니다만 특수한 나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고 멀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나와 본래의 나는 빛의 밝기로 말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빛의 밝기로 어디까지 밝혀 보거나 밝혀 드러낼 수 있느냐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나는 빅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밝혀볼 수 있다면 본래의 나는 빅뱅이 일어난 이후를 밝혀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빅뱅이 일어난 이전을 밝혀볼 수 있느냐 빅뱅이 일어난 이전을 밝혀볼 수 없느냐로 진정한 나와 본래의 나는 밝혀 보는 것으로 다르다 하겠습니다. 여기서 특수한 나는 요. 진정한 내가 빅뱅이 일어난 이전을 밝혀 본다면 특수한 나는 빅뱅이 일어난 이전 이전까지도 밝혀볼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빅뱅이 일어나기 이전에 전체란 일체 하나의 전체를 밝혀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 외에 또 다른 것이 있나요?” “예 그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으로 무엇이 다른가요?” “그것은 요. 생명의 크기가 어마어마 다르다 하겠습니다. 진정한 나의 생명이 지구만 하다고 예를 든다면 본래의 나는 지구에 있는 하나의 나라 정도로 비교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많은 본래의 내가 모여서 진정한 나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여럿의 수많은 본래가 하나 한몸 한덩어리 하나가 된다고 해서 진정한 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본래의 나를 하나하나 떨어트렸을 때 본래의 나로부터 벗어나고 놓았을 때 진정한 내가 되거나 진정한 나에 가깝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진정한 나에서 특수한 내가 되는 것 역시도 그렇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본래의 나, 진정한 나, 특수한 나는 서로 다르답니다.” 2019. 12. 09 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