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깨달음의 오해들 ...왜 생기는 것인가?

칠통漆桶 조규일 2005. 12. 17. 07:53


깨달음의 오해들 ... 왜 생기는 것인가?  / 칠통 좋규일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인식의 전환을 깨달음으로 말들을 한다.
일반인들도 수많은 인식의 전환 속 살아가면서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에 인식이 바뀔 때마다 깨어날 때마다
깨닫고 나니 어떠하더라 이야기들을 한다.
이들은 하나 같이 인식의 전환인지를 모르고 깨달았다고 말들을 한다.
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서 한 걸음 더 의식적으로 깨어났으니.
깨어난 것을 말하여 깨달았다한다.
그렇다고 수행자들이 이를 두고 깨달음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제가 수행자 중에는 깨달음에 목말라 하는 만큼 인식의 전환이 크면
혹 이것이 깨달음은 아닌가 하고 점검 또는 인가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출가 수행자 중에도 수행 중의 체험 경험한 상황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또는 커다란 인식의 전환이 있은 후 점검 받는 상황에서
돈오의 깨달음을 얻지도 않았는데...점검, 인가 받는...극히 희박하지만....
그러다 보니 오해의 깨달음이 난무하게 된다.
깨달음의 오해들이 생긴다.

사실 수행한다는 수행자들 중에
깨달음(頓悟)을 얻은 자 각자는 손가락으로 뽑을 정도고
견성(見性)한 자도 역시도 혜오(慧悟)에 이른 수행자도 흔하지 않다.
아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확연히 아는 자 별로 없고
마음(心)에서 8만4천 법이 오감을 확연히 아는 자 거의 없고
상대계(相對界)를 확연히 아는 자 별로 없고
연기의 인연(因緣)법을 확연히 아는 자 별로 없고
오온(五蘊)의 공(空)함을 확연히 아는 자 별로 없고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확연히 아는 자 별로 없고
"영혼이 이것이구나" 하고 영혼을 잡은 이들이 많지를 않고
육체가 4대로 이루어진지를 확연히 아는 자 많지를 않다.

깨달음(頓悟)-견성(見性)-혜오(慧悟)-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마음(心)-상대계(相對界)-연기의 인연(因緣)법-오온(五蘊)의 공(空)함-해오(解悟)-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영혼(靈魂)과 혼(魂) 백(魄)-육체의 4대(地,水,火,風)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형태의 형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수행자가 흔하지 않다.

진정한 수행은 육체를 4대로 되돌려 보면서
모든 형태의 형상은 4대를 떠나 있지 않구나
4대로 이루어지는구나. 4대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자라할 것이다.
어떤 연유로 인하든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 내 안에 나는 누구인가??"
"가아(假我)와 진아(眞我)를 생각하고.. " "나는 누구인가?" 란 의문으로 시작하여
이러한 의문을 하나 하나 밝혀 가는 것을 시작으로 진정한 수행은 시작되나
육체를 4대로 되돌리고
공(空)을 확연히 알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할 때
비로소 진정한 수행자라 할 것이다.
진정한 수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할 것이다.

그럼에도 제가 수행자 중에는
수행의 길에 접어들었구나 싶은 이 단계에서 깨달음을 운운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하고 깨달음을 인가 받았다한다.
(깨달음을 점검 인가해 준 분이 정말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만약에 이런 분이 있다면 그 분이 선지식으로 아무리 그 이름이 유명하고 남들이 아무리 수행이 많이 되었다 하더라도 역시도 돈오의 깨달음을 얻은 분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하늘을 보고 깨달음의 물맛을 본 사람은 하늘을 많이 보았던 적게 보았던 하늘을 보고 말함에 있어 또는 하늘을 말하는 것을 들음에도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공(空)을 알면서 진실허공을 알음알이 이해함으로부터...
...하나 하나 점차적으로 깨쳐 가는 단계...그 위 견성까지
수없이 많은 단계에서 인식의 전환이 있을 때마다
체험이나 경험 없이 또는 체험이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깨달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수행의 단계적 체험 경험으로 또는 인식의 전환만으로
즉 확연한 체험도 경험도 없는 상태로 깨달음을 인가 받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체험과 경험도 없이 ....
어찌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안다는 것인가?
이는 새롭게 안, 생각 의식이 깨어남, 인식의 전환으로 인한 것인 만큼
오온(五蘊)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고
오온을 안다하여도 오온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원인과 결과를 모르고
그것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로
깨달음을 말하고 깨달음을 인가 받으려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만
이를 또 인가해 주는 이들이 있으니.
이러한 일은 왜 일어나는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확연한 깨달음을 얻은 분들에 있어서는
깨달음에 정도의 차이 즉 칠통(漆桶) 안에서 칠통 밖의 하늘을 바라보는데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하늘과 통하는 구멍의 크기의 차이와
바라보는 곳이 어디이냐에 따라 하늘을 바라보는 시야에 차이가 있겠으나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말함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돈오의 깨달음에 이르지 않은 분들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칠통 속에서 하늘을 보지도 않고 하늘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경험이나 체험이 아닌 선지식이나 조사 그 외 깨달은 분들의
어록 내지는 경전이나 책을 통하여 가늠 인식 정리하고는
가늠 인식하고 잘 정리한 것(생각이나 글)이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이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이 좋고 또한 따르려는 사람들이 생기다보니
좋은 반응을 쫓아 따르려는 사람들에 가르침을 내려하니 자만과 아만 동하여
마치 자신의 수행으로부터 나온 듯 착각하고
자신의 경지가 그곳(가늠 인식 정리된 생각이나 글의 내용)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수행의 경지에서 나오는 듯 생각이나 글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생각이나 글에 침몰 당하거나 빠지는 이들이 종종 있다.
침몰 당하고 빠져서는 자신이 그러한 경지에 있다하고
따르는 이들이 이제는 그를 그러한 경지에 있게 한다.
이때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깨어나
인식된 인식하고 있는 믿는 이들을 위하여 일심일념 수행 정진하여
수행한 것으로부터 길 밝히며 서로간에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믿고 따르는 이들과 그러한 경지에 있다고 인식한 경지에서
육체의 생명줄이 다하는지도 모른 채 단물을 먹는 이들이 많다.
여기서부터 깨달음의 오해는 생기기 시작한다.

수행자 소리를 들을 만한 공(空)의 확연함에서부터
본 성품을 보았다는 견성 이후 돈오의 깨달음까지
본성 자성을 인식하여 가는 돈오의 깨달음 빛으로 가는 길에 있어서
수행하여 하나 하나 의심을 품고 풀고 해결해 가는
원인과 결과를 밝혀 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밝히고는 밝힌 도달한 단계에서
경전이나 책 또는 선지식들의 선문답을 통하여
알게 된 지식을 토대로 자신의 수행의 단계에서 정리를 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공(空)에서 ---견성(見性)---돈오의 깨달음까지
그 경지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이 사이에서 깨달음의 오해들이 생기니
깨달음의 오해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하겠다.

"우리 모두는 깨달아 있다 다만....뿐"이란 책
"선문답 자체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글에서 밝혔듯이
선문답을 통하여 본 성품을 자성... 본성을 가늠하게 하고 인식하게 하니
공(空)에 확연하면 물질과 비물질 사이 유무(有無)를 인식하여
체(體)와 용(用)인 물질(色)과 비물질만 인식하여
그 체(體)인 비물질 진실허공을 가늠하여 인식하고
진실허공 속 비물질(정신, 오온, 영혼, 인연법, 상대계, 빛(무량광))을 밝히지 않고
그 체(體)인 본 성품을 자성... 본성을 경전 책 선문답을 통한 지식으로 이해하고는
비물질(정신, 오온, 영혼, 인연법, 상대계, 빛(무량광))을 여여함, 항상함
두루 가득함, 머무름 없는 공함, 무량광의 빛과 대비 시켜
수행하여 밝힘만큼 밝힌 곳으로부터 결론을 내리고 정리하기에
정리하고 내린 결론을 토대로 또 가르치니
물질과 비물질 부분에서 물질을 떠나 비물질을 말함으로
그 말함에 여여함, 항상함, 두루 가득함, 머무름 없는 공함, 무량광의 빛,..을
가늠 인식하고 말한다거나 선문답을 하면
똑같은 인식 가늠 안에서 긍정적으로 인정 인가하는 것이니
이는 앞선 사람이 경험 체험 없이 그러했기에...
선문답으로 인식했기에 마치 다 이룬 것처럼
돈오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또 그러하나
이는 혜오(慧悟) 내지는 해오(解悟) 또는 인식 의식에서 가늠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수행의 경지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수행 단체에 입문하여 오래되다보니. 나이 살이나 먹다보니.
육체의 나이도 많아지고...수행 입문한 시간이 많은 만큼
수행단체에 입문해 수행하는 이들을 많이 알기도 하고...
수행단체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기도 하고
장판 때도 많이 묻히고... 선문답도 많이 해 보고...경전도 두루 섭력하고...
선지식들의 책을 많이 접하고....통하여...
수행의 경지가 높은 이도 있고.. 경지보다는 식견(識見)이 높은 이도 있고..
단체에서 살아온 만큼 그 대접을 받으니
큰 수행자(큰스님. 대선사, 선사,..율사..등)

큰 수행자라 하고 나이 살도 있고 오래되었다보니
배우려는 수행자(학인)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따르고 존경하고...어느 단계가 되면 깨달음 운운한다.
물론 개중에는 깨달음을 얻은 분들도 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한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도송으로 전해오는 것 중에도 오도송이 아닌 것이 있는가 하면
스승과 제자 사이 법을 전한다하여 전법계를 내리나
무슨 법을 전하고 받는지도 모르며 전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큰 수행자는 자신이 돈오의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으면서
깨달음을 인가 인정받으려는 수행자들을 인가 인정해 주는 우스운 일도 벌어지고...
왜! 자신이 못 깨달았으면서도 깨달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하여...
그러다 보니 스승도 제자도 모두 다 그러하니
이것이 전해져 내려오다 보니
항간에는 체험이나 경험 없이 깨달음이 올 수도 있다.
또는 선문답만으로 확연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익을 대로 익은 수행자가 선문답으로 선문답이 유형 무형의 소리가 되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수행자가 익을 대로 익었을 때의 생길 수 있는 일이고 그 외 어느 정도 수행하여 농익지도 않은 수행자들에게 있어서는 선문답으로의 깨달음을 얻었다함은 인식의 전환으로 인한 깨달음일 확률이 높다. 이렇게 깨달음을 인가 받은 분들에게 있어서는 선문답에 있어서는 모르는 게 없다. 선문답의 박사다. 물론 선문답에 박사여도 인가 인정을 못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그 선맥 또는 진정 돈오한 분으로부터의 인가 인정을 못 받는 것이거나 스스로 인가 인정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라 하겠다. 그러니 선문답으로 돈오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극히 희박한 경우이고 거의 다가 인식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돈오의 깨달음을 얻고 나서도
몇 년 아니 몇십 년만에 깨달음에 대하여 알았다 하고....
깨달음을 얻었는데 무문관에 들어갔다느니...
한 번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을 읊었는데 또 다시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을 읊고...
한 번도 어려운 깨달음을 두 번씩이나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 깨달음은 얼마나 큰 깨달음일까??? 감격에 감탄에...존경...
다들 웃기는 이야기이다. 깨달음 돈오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자기 스승을 높은 경지에 있다고 말하려는 제자들의 농락이고 농간이다.
깨달음을 얻고 몇십 년만에 깨달음을 알았다.
이는 처음 깨달음은 깨달음이되 인식의 전환으로의 깨달음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두 번 깨달음을 얻었다하면 두 번째는 진짜 돈오의 깨달음일 가능성이 높고
첫 번째는 돈오의 깨달음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인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첫 번째 두 번째 모두다 돈오의 깨달음으로 알려지고
그 깨달음이 크기를 말하니 어처구니없을 뿐이다.

이런 속에서
누군가가 깨달음을 인가 인정받으려고 찾아와 선문답이 오가면
여타 다른 이야기들이 오가면
오가는 속 우주의식 ....깨달음의 의식....하늘 의식의 600헬츠 이상에서
점검, 테스트, 인가가 이루어져야 하거늘
그렇지 않고 하늘의 공(空)에서 ---견성(빛) 사이 의식의 600헬츠 이하에서
점검 테스트 인가해 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식 안에서
같은 의식끼리 공통 부분으로 공명현상이 일어나
"오! 그래 너 깨달았구나." 하는 이들이 있으니.
역사이래 이들의 의식을 점검 테스트 해보면
대체적으로 450-550헬츠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있고
항간에는 450헬츠 이하에서도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들이 있다.
돈오의 깨달음을 얻은 각자가 볼 때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도 깨달음을 얻은 척하는 이들에게
돈오의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왜들 이야기를 못했나 싶은 것은...
시끄러움...사회적 종파적 법맥 수행단체...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
또는 믿고 아니 믿고...여여함 중도에서....분란, 논란, 시끄러움을 피하여...
알면서도 방조 내지 묵인되었을 것이며
그래도 이는 아주 가까운 믿는 주변 제자 및 사람들에게는 알려졌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도 깨달음을 얻은 척하는 이들이
전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돈오의 깨달음을 얻은 이들보다 더
그 시대를 풍미해 왔고 풍미해 갈 것이며
이후에 더 이름이 알려진 경우도 있고 알려질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선지식으로 아무리 그 이름이 유명하고
남들이 아무리 수행이 많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이름이나 수행자의 모습을 쫓기보다는 진정한 수행자를 쫓아야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깨달아 있다...있을 뿐"이란 책에서
"수행자의 모습"이란 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2002. 9. 14


http://cafe.daum.net/lightroom
★카페"빛으로 가는 길 칠통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