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선문답

빛이 말을 한다...벙어리 아니면 일어보세요

칠통漆桶 조규일 2005. 12. 29. 17:27

벙어리 아니면 일러보세요. / 칠통 조규일

 

우리는 매일
아니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말을 하며
말을 통하여
의사 소통하며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해서 말을 한다.

우리는 누구나 벙어리 아닌 이상 말을 한다.
누가 말을 하는지도 모른 체 말을 한다.

흔히 "누가 말을 하는가?" 물으면
"내가 말을 한다"고 말을 한다.

누가 말하는가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
찾아보라.

내가?...입이?..입슬이?..혀가?..성대가?..
누가 말하는가 ?
말하는 이 누구인가 ?

벙어리 아니면 일러보세요.


*후두가 좋지 않아 수술한 분들을 보면
목부분에 뚜껑을 만들어 놓고
열었다 닫으며
음식을 먹고 말을 한다.
목부분에 뚜껑을 열고
말을 할 때에는 소리가 되지 않고 말이 되지 못하고

바람 소리만 날 뿐 의사 전달이 됮 않는다.

즉 말을 하지를 못한다. 말이 됮 못한다.
목부분의 뚜껑을 닫고서 말을 해야
비로써 소리가 되고 말이 되어 의사 전달이 된다.


어찌된 일인가?

그럼 말은 목 위의 입부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 아래에서 이루어지는가?

자! 일러보라.

누가 말을 하는가?

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살펴보고 살펴보라.

그리고 일러보세요.



6월 10일에 이미 이곳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리며....

6월 도반산행에서도 "빛이 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 했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6월 도반산행에 참가했던 분은 다시 한 번 잘 살펴보세요.

 

 

빛이 말을 한다.

번호: 250 글쓴이: 칠통
날짜: 2004/06/10 06:21


살아 움직이는 것은
생명이 있고
생명력이 있다.


허공도 살아 움직인다.


살아 움직이는 허공 속
살아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태초에 어둠이 있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그 빛이 한 생각 밝다는 어둠다는 생각으로
또는 뭉쳐지고 뭉쳐져서 더 이상 뭉쳐질수 없는
최대한의 뭉쳐진 압력에 폭발을 일으키고 말았다.


태초의 하나가 대폭발하기 이전의
하나님 부처님이라고 이름하기 이전의 이전을
절대자라 이름하는 것처럼


하나님이고 부처님인
내가 빛이고 진리이고
새벽별을 보고
내가 누구 바로 빛이다.
이 빛이 자등명이고
자성불이다.


어찌 네 안에 있는

자등명
자성불은
어떻게 어떤 연유로 말을 하는가?


네가 말을 한다 하나
말하는 주체를 찾아 들어가 보면
네 안에 이미 있는
하나님이 말을 하고
부처가 말을 한다


네 안에 있는
하나님 부처님은
네 주(主)인 이고
그 주인의 실체는 빛이다
무량광의 빛이 말을 한다.
어찌 말을 하는가?


어떤 빛은 말을 하고
어떤 빛은 항상함에 있다.


살펴보라
그리고 깨어나라

갈!


2004. 6, 10. 06:18 쓰다

*
자기 자신 안에

자등명이
무엇으로
어떻게 해서
어떻게 말이 되어
밖으로 드러나는가?
밖으로 드러난 말에는 모양도 형태도 없다
그럼에도 말은 전한 것 없이 전해져서 듣게 되고
듣고는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말을 통하여
(6근과 6경을 통하여 본성이 함께 드러난다했다.)
말과 함께 업식이 드러나고 의식이 생각이 본성과 함께 드러난다.
말에는 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에 빛이고 본성이 있다.

밝혀보라.

그대 안에 있는
하나님, 불(佛)

자등명이
무엇으로
어떻게 해서
어떻게 말이 되어
밖으로 드러나는가?

스스로 밝힌 이는
또 밝혀보라.
빛은 무엇인가?
무엇이 빛인가?

전체가 하나로 통한다.
하나로 통하지 않는 것은 없다.

할!

 

 

 


Re:"벙어리 아니면 일러보세요"에 ...


그대 안에 있는
하나님, 불(佛)

자등명이
무엇으로
어떻게 해서
어떻게 말이 되어
밖으로 드러나는가?

합장하고 저의 견해를 밝혀 봅니다.

- 본생기에서 말하는 "기"에 의해 일어남이니
기(용)와 본성이 둘이 아닌 하나이니
기생심에 의해 자등명 주변의 업식(육근과 육식의 작용)을 통해 그렇게 전달되니
" 무엇이 기가" 이 기에 의해 인식되는 심이 다시 기를 일으키니
그렇게 기를 매개로 본성은 그모습을 드러내고,
기(작용)가 고요해지면 본래의 상태로 회귀(空)하는 것이다
이기가 바로 도반산행에서 칠통선생님이 말씀하신 " 본성에의 덧칠"이 아닌가 여겨진다.
덧칠은 누가 하는가 하는자 없이 이루어진다 왜 내가(본성의 속성인 기)가 하니 하는자가 없다 단지 하고 있는 상은 있는것이다. 왜냐하면 작용이 있으니, 기생심할때 생기는 집착(업식)조차도 본성임을 인식한다면, 그러면 "딱하는 소리"에 본성(업식에 쌓여있는 자등명)과 본성의 속성인 기의 작용을 동시에 입체적으로 느끼는 자 그 자가 바로 본성(절대자)임을 인식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밝힌 이는
또 밝혀보라.
빛은 무엇인가?
무엇이 빛인가?

- 빛은 본성의 속성인 기이니 기가 집중(교차) 되니 형상이 나타나고 형상이 나타남은 빛이 있음이다, 어둠과 밝음 모두를 포함해서, 자등명이 스스로 빛을 발한다는 것은 기의 집중으로 인한 그 힘으로 인해 본성이 그렇게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본성 그자체는 어둠도 밝음도 아니지만, 마음(자등명)이라는 즉 주변의 기를 집착(집중)하여 본성을 그렇게 밝혀 나가 본성을 밝음으로 계속 진화 시켜 나감이 자등명(개별적 나)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닌가 하는 망상을 내어 봅니다.

전체가 하나로 통한다.
하나로 통하지 않는 것은 없다.

- 전체는 기로 통하고 그 기는 여러 형상으로 나타내어도 하나의 기일 뿐이 아닌가 합니다.
그 하나는 결국 본성으로 회귀하니 그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나(자등명)에 있으니
결국 본성은 나(현재의나)를 통해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Re:Re:"댓글에..이 글로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세요


그대 안에 있는
하나님, 불(佛)

자등명이
무엇으로
어떻게 해서
어떻게 말이 되어
밖으로 드러나는가?

합장하고 저의 견해를 밝혀 봅니다.

- 본생기(本生氣)에서 말하는 "기(氣)"에 의해 일어남이니
기(氣:용(用))와 본성이 둘이 아닌 하나이니
기생심(氣生心)에 의해 자등명 주변의 업식(육근과 육식의 작용)을 통해 그렇게 전달되니
" 무엇이 기(氣)가" 이 기(氣)에 의해 인식되는 심(心)이 다시 기를 일으키니
그렇게 기를 매개로 본성은 그 모습을 드러내고,
기(작용)가 고요해지면 본래의 상태로 회귀(空)하는 것이다


기생심(氣生心)에 의해 자등명 주변의 업식(육근과 육식의 작용)을 통해 그렇게 전달되니

어찌하여... 어떤 관계로 자등명(본성) 주변의 업식이 말로 나타나고 전달되는가요?
또한 육근과 육식, 육경을 통하여 안으로 전달되어진 것이
어찌..어떻게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일으키고 말로써 전달하는가요?

" 무엇이 기(氣)가" 이 기(氣)에 의해 인식되는 심(心)이 다시 기를 일으키니

기(氣)라 하나 이름이 기일 뿐 본성으로 보면 본성의 속성이고
본성의 속성이 본성을 덧칠한 상(相)인 업에 부딪쳐 작용하니 마음이 생하고
생한 마음을 드러내려고 하니 본성과 본성의 속성 기를 기운으로 바꾸고
기운으로 바뀐 것은 바람 되지요.
그러니 기에 의해 인식된 것이 아니라 업식이 인식하고 마음이 일으킨 것이지요
어떻게 마음을 일으키게 되었습니까?
일으킨 생한 마음은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의 속성 기 기운으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자! 살펴보세요.
업식과 본성의 속성과 본성이 따로 있는가? 함께 있는가?
따로 있다면 어떻게 따로 있고
함께 있다면 어떻게 함께 있는가요?
이것이 확연하면

그렇게 기를 매개로 본성은 그 모습을 드러내고,
기(작용)가 고요해지면 본래의 상태로 회귀(空)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것도 확연할 것이니.
그러합니까?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세요.

이 기(氣)가 바로 도반산행에서 칠통선생님이 말씀하신
" 본성에의 덧칠"이 아닌가 여겨진다.

덧칠한 것이 기(氣)라고 하지 않았으며
덧칠한 것은 상(相)으로 업이라 했지요.

덧칠은 누가 하는가 하는 자 없이 이루어진다.

덧칠은 하는 자 없이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하는 자 없이 이루어지는가요?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시고 일러보세요.

왜 내가(본성의 속성인 기)가 하니 하는 자가 없다.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요?

단지, 하고 있는 상은 있는 것이다.

하고 있는 상이 있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짐으로써 상이 있게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작용이 있으니,

상이 있음으로 작용으로 드러나고
상이 없으니 작용은 있되 드러나지 못하지요.
그런 관계로 상이 있고 없고
형태의 형상이 있고 없고
있는 가운데 없고 없는 가운데 있게 되고
유한 가운데 무하고 무한 가운데 유하며
전체가 하나로 성주괴공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확연해 지면

기생심(氣生心)할 때 생기는 집착(업식)조차도 본성임을 인식한다면,

(본성임을 인식하게 되고)
그러면 "딱하는 소리"에 본성(업식에 쌓여있는 자등명)과 본성의 속성인
기의 작용을 동시에 입체적으로 느끼는 자
그 자가 바로 본성(절대자)임을 인식 할 수 있을 것 같다.
(좀더 살펴보아요.)


스스로 밝힌 이는
또 밝혀 보라.
빛은 무엇인가?
무엇이 빛인가?

- 빛은 본성의 속성인 기이니

빛은 기(氣)도 본성의 속성도 아니고
기로 본성의 속성이 본성의 속성으로 본성이 본성으로 빛이
빛으로 생명이 생명으로 절대자가 있게 되고
이를 역으로 절대자에서부터....기.....
하얀 백지의 본성에 끌어당기는(앉으려는) 본성의 속성에 업이 생기고
본성에 업의 덧칠과 덧칠한 업의 상으로 형태의 형상을 가지고
육도 윤회하는 ...윤회의 수레바퀴에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럼 만큼 알 부분 좀더 살펴보시길...


기가 집중(교차) 되니 형상이 나타나고 형상이 나타남은 빛이 있음이다,
어둠과 밝음 모두를 포함해서,
자등명이 스스로 빛을 발한다는 것은 기의 집중으로 인한
그 힘으로 인해 본성이 그렇게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본성 그 자체는 어둠도 밝음도 아니지만,


본성을 덧칠한 업의 상이
본성의 속성 기로 옮겨지다가
형태의 형상의 자궁에 들어
암수의 형태의 형상을 닮아 태어나지요.
이러한 형상의 형상이 나타남은 본성의 속성 때문이며
본성이 빛이기 때문이지만
빛이라 해도 맞지를 않고 밝음이라 해도 맞지를 않지요.


마음(자등명)이라는 즉 주변의 기를 집착(집중)하여
본성을 그렇게 밝혀 나가 본성을 밝음으로 계속 진화 시켜 나감이
자등명(개별적 나)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닌가 하는 망상을 내어 봅니다.

마음과 자등명은 한 몸이나
마음은 테두리가 있는 것이고
그 테두리 안에 자등명이 있을 수도 있고
테두리가 없는 것으로 자등명이 있을 수도 있으니
서로 다르게 봐야할 것입니다.
테두리 있는 자등명은 자경경계라 할 것이며
테두리 없는 자등명은 태양처럼 그저 주변을 테두리 없이 밝힐 것입니다.
수행에 있어서는
마음을 하고 업식의 식을 맑히고 맑혀서
자성경계만 일원상만 있도록 함에
돈오의 일원상 자성경계마저 안팎이 없도록 없애는 것이지요.
안팎이 없는 빛 자등명은 점점 ...우주 전체를 밝혀야 하는 것이지요.

전체가 하나로 통한다.
하나로 통하지 않는 것은 없다.

- 전체는 기로 통하고
그 기는 여러 형상으로 나타내어도
하나의 기(氣)일 뿐이 아닌가 합니다.
그 하나는 결국 본성으로 회귀하니
그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나(자등명)에 있으니
결국 본성은 나(현재의 나)를 통해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보는 관점과 견처가 잘못되었지요.
지금 님은 기를 통하여 보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묻는 것은 본성에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살펴보시고 일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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