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이렇게 깨달음은 이루어진다.
칠통漆桶 조규일
2005. 12. 31. 09:47
이렇게 깨달음은 이루어진다. / 칠통 조규일 본래 하나의 한 물건은 자기 스스로 깨쳐서 쓸 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도 전하지도 못하는 것이지만 자기 스스로 깨지는 경험을 통하고 본래의 하나의 한 물건을 보게 되는 체험을 통해서 확실하게 하나의 한 물건을 보고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깨달음 인식하고 의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사물을 보고 그 사물을 아는 것처럼 자기 안팎으로 있는 하나의 한 물건을 직접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보고 눈앞에 사물을 보고 사물을 알고 구별하듯 하나의 한 물건을 확연히 알게 되는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다. 그럼으로 깨달음의 순간에는 자기 스스로 자기가 깨지는 행위가 있게 되고 이 깨지는 행위를 통하여 눈을 뜨고 있음에도 보지 못했던 하나의 한 물건을 눈을 뜨고 있음에도 깨지지 않았던 것이 깨짐을 통하여 또 한번 더 눈을 뜨게 되고 한번 더 눈이 뜨게 된 눈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눈으로 보게 된다. 이렇듯 자기 스스로의 눈을 통하여 눈으로 직접 보게 되면 더 이상 하나의 한 물건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생길 수도 없다. 확연하게 보지 못했을 때야 이런가 저런가 하겠지만 확연히 스스로 보게 되면 그 누구에게 확인 받을 필요도 없이 하나의 한 물건을 본 것이고 봄으로 인하여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찾고 찾았던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감회가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웃는 것이다. 그리고 기쁨과 환희에 본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본 그대로 문자로 표현해 놓는 것이 바로 오도송이다. 그대는 그대가 눈앞에서 본 것에 대하여 그 누군가 그것을 보고 말한다면 그것을 어느 각도에서 보고 표현한다 할지라도 그대가 눈앞에서 본 것에 대하여 표현을 하고 있는지 또는 다른 것을 표현하고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확연히 알 수 있는 오도송을 거짓으로 짓고 그것이 오도송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고 또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역대 고승들의 오도송을 보면 오도송 아닌 것도 있으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전해져 내려가고 있으니 이는 자기 자신을 속인 것이 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끓어지고 전해지지 않는 그 순간까지 많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될 것이며 욕되게 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런 이들이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하나의 한 물건을 의심할래야 할 필요 없이 확연할 것이며 누가 너는 보지 못했다고 해서 본 것이 못본 것이 되지 않고 직접 보지 못한 하나의 한 물건을 본 듯 아니본 듯하여 미심쩍어 누구에게 물어보았을 때 대답하는 이가 보았다 하여 본 것이 아니다. 누가 너에게 보았구나 하였다 하여 보지 못한 것이 본 것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깨쳐서 직접 눈으로 확연히 보았을 때 진정 보았다 할 것이다. 이렇듯 확연히 본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도 없다. 하나의 한 물건을 본 것이고 깨달은 것이다. 오래 전부터 비유한 말이지만 주전자가 있다고 했을 때 이를 본자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도 안다 주전자를 말하고 있는지 그런데 주전자를 보지 못한 사람은 주전자를 아무리 잘 설명해 주어도 주전자를 말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리고 주전자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주전자를 설명하면 아무리 주전자를 잘 설명하려고 해도 어긋나기가 쉽다. 그 어긋남으로 인하여 이미 주전자를 본 사람은 저 사람이 주전자를 말하려고 하는 지는 알지만 주전자를 보지 못한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남대문 가보지 않은 사람이 남대문에 가본 사람 보다 더 설명을 잘하고 남대문에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진다는 말이 있듯 이쪽 역시도 다반사다. 지금까지 많은 말을 했지만 한 마디로 말해서 깨달음은 체험과 경험을 수반된다 하겠다. 그냥... 우연히...무상태...어떤 상태가 되더라...어찌 되더라... 어찌 되었다가가 아니라.... 깨달은 직접 하나의 한 물건을 보고 확연히 알게 되는 것이지. 어물쩡하게 보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어떤 것을 볼 때 보는 것에 대하여 본 것에 대하여 더 이상 의문이 없는 것처럼 한 번 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언제든지 보려고하면 볼 수 있는 것을 의문이나 의심이 있겠는가? 이렇듯 직접 보고 아게 되는 것이고 그 속에 본인도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견성할 때 은백색의 빛을 보고 전체가 은백색으로 빛나고 빛으로 빛 속에 있게 되는 체험과 경험을 하듯 이 깨달음 역시도 직접 하나의 한 물건을 보고 하나의 한 물건으로 하나의 한 물건 속에 있는 지를 알게 된다. 그렇다고 인식하고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나 것을 체험하고 경험하고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을 인식하고 의식한다. 확연히 알게 된다. 어떤 이들은 견성할 때 빛이 빛속에 있게 되고 빛이 빛을 인식하고 의식한다고 하니까. 말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경험하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이들이 하는 말이고 내가 말한 것처럼 견성할 때 빛이 빛속에 있게 되고 깨달음할 때 역시 하나의 한 물건을 보고 하나의 한 물건으로 하나의 한 물건 속에 있는 지를 보고 알게 되는 체험과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듯 깨달음 이루어진다. 2005. 8. 7. 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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