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이런 자들은 깨달은 자들이 아니니 이들에게 속지 말고 경계하라

칠통漆桶 조규일 2006. 7. 8. 16:58

이런 자들은 깨달은 자들이 아니니 이들에게 속지말고 경계하라. / 칠통 조규일

 

 


깨달음의 의식테스트 방법으로
자칭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테스트해서
거짓된 자임을 가려내고
자기 자신의 수행을 체크 점검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를 했고
 
스스로의 수행에 있어 생길 수 있는
"깨달음의 오해들 ... 왜 생기는 것인가? "란 글을 통하여
깨달음에 대하여 오해할 수 있는
오해의 소지들에 대하여 설명함으로
오해의 소지에 빠지지 않도록 함과 함께
깨달았다고 하는 거짓된 자들과 착각도인을 가려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않았음에도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을 가려내지 못하고
그들에게 놀아나는 것을 보고
추가적으로 깨달은 자들의 말과 언어에서
깨닫지 못했음을 알아내는 방법을 서술해 본다.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이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를 보면


깨달음에 관한 상세한 질문을 하면
일단은 수행하는 수행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미명 아래
큰 테두리만 말을 할 뿐 상세하게 설명을 하지 못한다.
(본인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진정 깨달음을 얻었다면
깨달음에 대한 체험과 경험을 금기시 할 것이 아니라
소상히 밝혀서 깨달음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며
수행하는 수행자가 올바르게 수행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는 의미로
먼저 간 이들은 밝혀 놓아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표가 되도록..)

 

해오(解悟)는 없고 해오(解悟)가 혜오(慧悟)이며
혜오(慧悟), 견성(見性), 성불(成佛)이 같이 이루어진다고 하거나
혜오(慧悟)가 견성(見性)이고 견성(見性)이 성불(成佛)이라고 한다.
이의 경우를 보면
수행하다가 수행이 조금 이루어지면서 공(空)을 인식 의식하고
공(空)을 인식 의식한 것이 깨달음인지를 알고
공(空)에 빠져 오도송(悟道頌)을 읊고
혜오(慧悟), 견성(見性), 성불(成佛)을 알음알이로 풀이하는 자들이 하는 말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들이다.
누차 여기 저기서 말했지만
공(空)에 대한 이해와 인식 의식하는 경지는
돈오의 깨달음에서 보면
첫 걸음 내지는 두 번째 걸음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스스로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니
이는 돈오의 깨달음을 얻은 각자가 보면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자가 깨달았다 하는 것과 같다할 것이다.


깨달음은 혜오(慧悟)에 있고 견성(見性)에 있으며
혜오(慧悟)하면 견성(見性)이고 견성(見性)하면 곧 성불(成佛)이다라고 말하는 자들
이들은 깨달은 자들이 아니다.
이들이 수행이 많이 되었다 싶으면
해오(解悟) 내지는 혜오(慧悟)의 경지에 있는 이들로
해오(解悟) 내지는 혜오(慧悟)가 돈오(頓悟)의 깨달음인지를 알고
해오(解悟) 내지는 혜오(慧悟)에서 오도송(悟道頌)을 읊고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말하며
자기 자신은 깨달은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혜오(慧悟), 견성(見性), 성불(成佛)을 물으면
견성(見性), 성불(成佛)을 알음알이로 풀이하고는
'깨달음은 혜오(慧悟)에 있고 견성(見性)에 있으며
혜오(慧悟)하면 견성(見性)이고 견성(見性)하면 곧 성불(成佛)이다.
' 라고 말을 한다.
이들을 보면 이들은 깨달음에 대하여 이해했거나
지혜로 깨달음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돈오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착각도인들이다.


해오(解悟) : 깨달음에 대하여 이해했거나
혜오(慧悟) : 지혜로 깨달음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이들은
'깨달음은 견성(見性)에 있고 견성(見性)하면 곧 성불(成佛)이다' 라고 말을 한다.
이들은 해오(解悟) 내지는 혜오(慧悟)에서 오도송(悟道頌)을 읊고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말하며
자기 자신은 깨달은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견성(見性), 성불(成佛)을 물으면
견성(見性), 성불(成佛)을 알음알이로 풀이하고는
'깨달음은 견성(見性)에 있고 견성(見性)하면 성불(成佛)한 것이다.' 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지혜로 깨달음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이들로
돈오(頓悟)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착각도인들이다.


견성(見性)한 이들은 견성(見性)은 성불(成佛)이 아니고
돈오(頓悟)의 깨달음이 진정한 성불(成佛)이라고 한다.
이들은 견성(見性)에서 오도송(悟道頌)을 읊고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말하며
자기 자신은 깨달은 각자(覺者)라고 말한다.
그리고 견성(見性), 성불(成佛)을 물으면 성불(成佛)을 알음알이로 풀이하고는
'돈오(頓悟)의 깨달음은 성불(成佛)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견성(見性)은 했으나 돈오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깨달음의 오해에 있는 자들로 착각도인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수행 중 자신도 모르게 웃게 되었다고 하고
그러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나
깨달음을 얻는 순간 웃게 되는 깨달음의 웃음에 대하여 물으면
깨닫는 순간 웃게 되는 웃음에 대하여 알지를 못하고
웃게 되는 의미를 전혀 모른다.
(이 경우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수행 중 자신도 모르게 웃게 되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수행 중 태양혈이 열리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웃게 되는데
이를 보고 항간에서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가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깨달음을 인가해 주는 사람이나 인가 받는 사람 둘 다 착각도인이다
.)


이들은 하나같이
깨달음은 그냥 한 생각 돌이키면 되고
보는 견처를 달리하여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돈오의 깨달음이 아니라 해오(解悟)나 혜오(慧悟)다
생각만 바꿔서 견처만 달리하여 돈오의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
알이 깨지듯 자성경계의 일원상이 깨져야 한다.
이들에게 돈오(頓悟)의 깨달음을 물으면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말하고 대부분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아니면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피해간다.


이들은 하나같이
유무형의 소리에 자성경계의 일원상이 깨졌다고 말하며
자기 자신은 돈오(頓悟)의 깨달았다고 말하나
유무형의 소리에 자성경계의 일원상이 어떻게 깨지는 지를 물으면
자세하게 모르거나 자세한 설명을 회피하거나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얼버무린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숨기고 감추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숨기고 감추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비리 내지는 잘못된 부분이 알려지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없애려고 가진 노력을 다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자기 자신을 떠나서는 비록 수행이 되었다 하더라도
되었던 수행마저 수행의 모든 도줄이 끊어져서
잘 되던 것들도 되지 않는다며 자기 자신을 믿고 섬기도록 한다.

 

 

그리고 이들 중
물욕(돈)을 구(욕심 있는)하는 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오면 깨달음을 주겠다 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와서 수행하면 몇 일 또는 얼마지 않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
자기 자신에게 와서 배우라고 광고 아닌 광고를 한다.
그리고 이 광고는 방송 또는 신문 각종 미디어를 빌려서 한다.
방송 신문 각종 미디어로 자기 광고를 하는 것을 보면
인연 있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한다거나
방송 신문 기자를 매수해서 또는 돈을 기부해서
그들의 취약한 부분을 메꾸어주고 방송에 출연해서 신문의 기사로
자신을 알리는 광고를 한다.
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가야할 돈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돈이 없어서는 안 된다.
비록 처음은 돈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경과함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돈을 가져오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자기 자신은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신비한 인물로 내세우고
신비한 능력이 있는 듯
자기 자신을 믿는 이들이 있으면 믿는 이들로 하여금
또는 공범자를 만들어 자기 자신이 대단한 능력(?)이 있는 듯
마치 신(神 ?)인 듯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고는
자기 자신은 잠시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 뒤에서 조종을 하며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돈을 가져오도록 하는가하면 돈을 기부하도록 한다.
세가 확장 될 때까지....
세가 확장이 되고 나서도...
(마스터라면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세를 확장하지만
마스터가 아니고 세 확장을 위하여 이용된 자라면
시간이 흘러감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된다
.)
국내에 거주하면서도 외국에 자주 나가거나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외국에 나가 있거나 나가 있다고 하고..)
외국에 주로 거주를 하는가 하면
(외국에 있다고 하면서 지속적이고 계속적으로 신비한 존재 부각시키기 위해서
아주 대단(?)한 사람 신비(?)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이 사람보다 더 이상 수행이 이루어진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치켜세우며
광고를 하고
...)
국내에는 아주 잠시 잠깐씩 모습을 드러낼 뿐
본인의 활동은 최대한으로 줄이고 최소로 하는가하면
믿고 따르는 이 일명 제자들이 앞에 나서게 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가져오도록 하게 한다.

 


그리고 이들 중
깨달았다는 미명 아래 부를 축적하고
부를 축적하며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
수행의 과정 속에 성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있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이 성 부분에 있어 어떻게 하면 수행이 더 빨리 이루러진다고
하며
자기가 성을 어떻게 해야 좋다.
또는 자기와 관계를 가져야 어떻다.... 등의 말로
깨달았다고 하는 자기 자신과 성관계를 갖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없도록
세뇌 아닌 세뇌 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성관계를 갖는 것이 오히려 선택받아서
주어지는 혜택이며 영광이라고 받아드리도록 세뇌 아닌 세뇌 교육을 한다. 

 


그리고 이들 중
깨달았다는 미명 아래 부를 축적하지 않고
성욕을 채우는 이들이 아닐지라도 명예에 목말라 하는 이라면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하든 믿게 하고
믿으면 믿는 것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의 올바른 법문 아닌 법문을
많은 사람이 들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깨어나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해택주기 위해서 많이 알려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니 기부하라
하고 ...
자기 자신을 알리도록 하게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알리는데 주력한다.
인연 있는 기자가 있으면 기자를 매수하여 자신을 기사화 하도록 하고
매수하여 방송에 출연할 수 있으면 방송에 출연하여 자기 자신을 광고한다.
이렇듯 간접광고를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깨닫지 않고 깨달았다고 하며
눈빛 척 시늉...만 배워서
아니면 조그만 배워서 조금 배운 것으로... 척하며
갖은 방법으로 돈을 가져오도록 하게 해서 부를 축적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하여 성에 관련된 수행법을 말하는가 하면
자기 자신을 알리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흠집이나 잘못된 것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모르도록 하는데 주력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만이 구제해 주고
자기 자신만이 해탈하게 하고 깨닫게 하며
자기 자신만이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깨닫게 하는가 하면

깨달은 사람이 나오도록 한다고 말하며
남들은 아무리 뭐해도 안 되고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다 거짓된 자들이며 가짜다.
사기꾼이나 진배없다.
종교에 몸담고 있는 이가 이런 자라면
이는 종교를 팔아서 먹고살려는 사람으로 직업이 종교인이며
종교인으로 직업을 가지고 자신의 부 성욕 명예...를 챙기는 사람이며
종교인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깨달았다고 해도 깨달았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깨달은 자가 아니며
체험과 경험을 말하는 이들이 있으면 이 또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하며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체험과 경험을 말함으로 자기 자신을 믿게 하려는
술수로 거짓된 자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렇듯 말하는 이들은 자기가 그러하지 못하니
그러한 핑계로 스스로가 말하고 있는 속으로 숨기 위한 방법에 불과하다.
깨달은 자는 깨달았다 말을 해야 하며
진정 깨달았다면 돈오의 깨달음으로 전체가 통하여 있는 만큼
통함에서 막힘을 보고 막힘을 통함에 있게 하여
막힘에 있는 것들이 통함으로 깨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럼으로 조금이라도 더 깨어서 의식이 높아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막힘에 있는 자들이 통함을 통하여 막힘을 물어봄으로
통함으로 밝혀 놓도록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거짓된 이들과 인연이 있어 관계를 갖고 있던 이들은
거짓된 줄을 알고 거짓된 이들로부터 벗어나면서 거짓된 이들을 욕하지만
이는 거짓된 이들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이 바르지 못한 그릇된 마음에서 비롯된 지를 모른다.
처음부터 마음이 맑고 깨끗하고 바르며 물들지 않은 마음을 따라가는 이라면
스스로를 거짓된 것을 쫓아 거짓된 곳에서 거짓된 것을 행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거짓된 것을 쫓고 거짓된 곳을 찾고 거짓된 것을 행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물든 마음이 업의 관성에 의하여
물든 마음을 쫓고 물든 마음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만약에 마음이 바르고 맑고 깨끗하고 물들지 않은 마음을 쫓는다면
거짓된 것 곳 행을 따라가거나 행하면
거짓된 것 곳 행으로 마음 불편하여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회개하고 참회하게 되어
스스로를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한다
.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거짓된 그들을 따르고 쫓는 것은
쫓고 따르는 이들의 마음 속에 업으로 굴러가려는 관성과
스스로 말은 아니라 하지만 조금 더 안일한 방법을 찾고 있는데서 생기는
스스로의 잘못된 관념과 사고 생각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그쪽으로 이끈 것이니
이는 어느 한 쪽의 잘못이 아닌 둘 다의 잘못이라 하겠다.
누구에게 욕할 것 없이 자기 자신의 잘못인지를 알고 스스로를 경책해야 한다.

 


"깨침에는 해오(解悟), 혜오(慧悟), 견성(見性), 돈오(頓悟)가 있지요"란
글에서 밝힌 것과 그 깨침이 서로 다르고
아래 " '구도자란 누구인가'란 글을 읽고.." 란 글에서
밝힌 것과 같이 그 체험과 경험이 다르다.
돈오의 "깨달음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이는 수행을 통하여 돈오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들이 하는 말로
깨달음은 한 생각 돌이키면
바라보는 견처(見處)를 달리하면
그곳에 깨달음이 있고
돈오의 깨달음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깨달아 있으니
돈오의 깨달음의 입장에서 보면 깨달음은 없다고 하나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깨달음은 분명히 있다.
돈오의 깨달음에는 깨달음의 체험이 있고 경험이 있게 된다.
돈오의 깨달음을 경험 내지는 체험하고 나서
얼마지 않아 수행 중 선정에 들면 선정에서 찬탄 공양 예배를 받으며
단상에 올라가 설법을 하게 되는 경험과 체험을 또 하게 된다.
(돈오의 깨달음을 얻고 선정에 들어서의 이 경험은
영계(靈界) 또는 신계(神界)로부터의 돈오의 깨달음에 대한
인가(認可)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이렇게 거짓된 각자들에 대하여 쓰고 있는 나도 가짜일 수 있으니
이 글을 읽는 님이 물든 마음을 가지고 있되
우선은 마음이 올바르고 맑고 깨끗하기를 바라고
물들지 않은 마음을 쫓아 바르게 보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에게 속지 않으며
또한 거짓된 각자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에게 속지 않게 되는 것이니
마음을 올바르게 하고 마음을 열어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열린 마음으로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모든 이들로부터 정화될 것이 있으면 정화 될 것이며
흘려 보내게 될 것은 흘려보내게 되고
물든 마음을 따라 흘러가지 않고
물들지 않은 마음을 따라 흘러갈 수 있다고 하겠다.


2005. 1. 19 . 16:13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수행해 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 칠통 조규일

 

 

 

"이런 자들은 깨달은 자들이 아니니 이들에게 속지말고 경계하라."하니
그러면 어디 가서 배워야 하는가? 하는 의문들을 갖는다.
나는 아직 서지고 걷지도 해(解)도 혜(慧)도 견(見)도 돈(頓)도 모르는데...
제대로 공부하는 이들은 밖으로 드러내거나 드러내지 않고
제대로 공부된 이들 역시 그러하니
인연 있는 이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인연 없는 이들은 어찌 해야 하는가?
난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수행하여 깨닫고 싶은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진실되고 올바르게 가르치는 곳이 어디인가?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그만 둘 수도 없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가르치는 수행단체도 많고
가르치는 종교단체도 많다.
수행인이든 종교인이든
수행이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수행 단체를 만들 수도 없고 이끌 수도 없고
종교인이 어느 정도 수행이 되지 않고서는 수행 방법을 들고 나올 수가 없다.


수행을 들고 나오는 것이 사기든 부든 명예든
전혀 근거 없이 사기를 칠 수 없고
전혀 근거 없이 돈을 가져오도록 해서 갈취할 수도 없으며
전혀 내세울 것 없이 명예를 이룰 수만은 없다.


깨닫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이
전혀 수행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수행이 되어 있거나
(어디서 말했던가? 이들의 대부분이 의식테스트를 해 보았을 때
의식이 400-500헬츠를 가지고 있다고... 간혹 400이하도 있기는 하지만...)

아니면 수행 중 접신 되어 접신된 신(神, 중음신, 영계의 영혼)의 노예가 되어
또는 접신된 신(神, 중음신, 영계의 영혼)의 힘을 빌려서
사기 쳐서 부를 축적하고 성욕을 채우고 명예를 갈구하는 것이니


이들 밑에서
배우고 익혀서 수행하면
이들이 말하는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이들이 수행한 만큼 이상은 아닐지라도 수행해 갈 수 있다.
즉 이들 밑에서 수행의 기틀은 마련할 수 있고
수행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는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곳을 배척할 수만은 없다.
배척만 해서는 배우고 익혀서 수행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알 곳이 없으니
배척할 것은 배척하고 배울 것은 배워서 내 것으로 해야 한다.
고로 일단은 수행단체든 종교단체든 자기 자신이 끌리는 곳에 가서
수행의 기틀을 마련하고 수행해 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문제는 문제가 되는 수행단체나 종교단체에 가서 배우고 익히고
배우고 익혀서 수행해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배우고 익히고 수행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자기 자신이 배우고 익히는 것 이상의 금전을 요구하거나
각종 수행 방법으로 또는 천도식으로 상상 이상의 금전을 요구하거나
각종 날(?)들을 만들어 그날들에 참석해야 하고 참석해서는 금전을 내도록하거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주종의 관계식으로 무조건 스승을 믿고 따르게 하거나
배우고 있는 단체를 지나치게 밖으로 광고하도록 요구하거나...하는 등
그럼으로 자기 자신의 올바른 생활을 함에 있어 여러 가지가 피해 되는 경우가 생기거나
또는 사회 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거나
또 단체에서 말하는 것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등
그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문제의 예들에 스스로 빠지지 않고 올바르게
배우고 익히면서 수행갈 수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은 모르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기 자신이 생활 및 여러 가지가 불편하고
그들에게 속았고 그들로 인한 피해의식이 있다고 생각 속 피해의식에 젖어든다면
이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본인이
"이런 자들은 깨달은 자들이 아니니 이들에게 속지말고 경계하라."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단체에 누구에게 가서 배우고 익혀서 수행해 가되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수행해 가라는 것이다.
바른 마음을 가지고 수행하면 물든 마음을 따라 가지 않고
혹여 물든 마음이 일어난다해도 올바른 마음이
바르지 않음을 알고 참회 회개를 하게 하고
참회와 회개를 통하여 물들지 않은 마음을 되새기며
배우고 익히며 수행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갈 수 있는 정도의 수행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들 단체에서 수행하되
그들에게 물들지 말고
그들로 인하여 수행해 가려는 맑은 마음을 흐려지게 하지 말고
그들에게 빠지지 말고
마음을 열어놓고 배우고 익히되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정심(正心) 속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사(正思) 속 올바른 행을 행하며 수행해 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느 단체서 누구에게 배우고 익히든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수행해 가되
깨달았다 하는 거짓된 자들에게 속지말고 경계하며
배우고 익혀서 스스로 갈 수 있을 때까지 수행해 가되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에게 자기 자신이 속았고 피해의식에 젖어들어
수행이 되어서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도 저런데...라고 하며
수행을 포기하는 경우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자들은 깨달은 자들이 아니니 이들에게 속지말고 경계하라."란 글을 썼고
또 위글로 인하여 완전히 배척 등한 시하라는 말로 알고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이 글을 또 쓰게 되었으니.


수행하고자 하는 수행하는 수행자는
언제나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수행해 가되
어디서 누구에게 배우고 익히든
나 외에 나를 구제할 이가 따로이 없는 지를 알고
내가 만물의 주인이며 부처고
나를 떠나 내가 있을 수 없고
그 어느 것도 나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는 지를 알고
배우고 익히는 이들에게 의탁 의지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가 절대자이며 부처며 하나님이고 만물의 주인인지를 알고
그 어느 것에도 의지 의탁 의존하지 말고
가는 방법 찾는 방법만을 구할 뿐
수행은 처음부터 스스로의 나로 시작해서 밝히고
스스로의 나로 끝나야 할 것이다.


올바른 마음을 가지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물든 쪽으로 빠지지 않고
마음이 열려 있으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흘러들어올 것이며
수행이 많이 된 올바른 분들은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좋은 것(향기)들을 밖으로 품어낸다.
품어 내는 좋은 것들을 받아드리기 위해서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마음이 닫혀 있고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받아 드리지 못하고 흘러버리기 쉽고
혹여 와 닿는다면 이는 자기 자신이 보려고 하는 눈으로 보는 것과
들을려고 하는 소리만 선별적으로 듣게 되니.
이래서는 먼저 가는 이들의 좋은 수행법 및 법문뿐만 아니라
자연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선 법문을 보고 드드지 못하게 될 것인 즉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수행이 많이 되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과 율에 의지하여야 한다.
그래야 사람으로부터 실망하는 일이 생기지 않고 바르게 수행해 갈 수 있다.


수행은 나 외의 다른 것을 닦는 행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닦아 가는 것이다.
나를 닦음에 있어
육체를 닦는 것도 아닌 마음을 닦음에...
본성을 싸고 있는 업을 닦음에...
그 어느 님이 있어
내 육체가 아닌 마음을 업을 닦아 줄 수 있겠는가?

 


여담 하나...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절에 간 일이 있었다.
절에 들어서니 법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었다.
절하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같이 마음을 닫아놓고 절을 하고 있었다.
뭔가를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절하고 무엇이가를 달라고 절하면서....
하나같이 마음은 닫아놓고 빌고 있었다.
어느 누가 있어 준다고 한다면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는가?
받을 그릇의 마음을 닫아놓고서....
밖으로 환현하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닫아놓고서
어찌 밖으로 환현되기를 바라는가?
이루어진 분들은 조건 없이 준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 있든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든 이루어진 만큼 조건 없이 나누고 베푼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이 닫혀서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날 시간이 흐르니 대중들이 많이 왔다. 모였다.
대중들이 많아서 법당 및 법당 밖에 까지 대중들이 많았다.
어느 스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서...
이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각이고 본인의 견해이지만
설법하는 스님의 마음도 닫혀 있고
설법을 듣고 있는 대중들의 마음이 닫혀 있었다.
이를 보는 나믐 마음이 아팠지만
그저 바라는 보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닫혀 있는 스님의 마음을 보고는 한편에서는 저 설법 설법연구원에서
돈주고 사다가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사실 많은 스님들이 설법연구원에서 설법을 사기도하고
대필을 해서 책을 출간하기도 하면서 마치 자기 것인양 하는 경우들이 많으니


설법을 사왔던 대필하여 출간한 책이든
마음이 열려 있다면 열려 있는 만큼 와 닿을 것이고
설법한 스님이나 책을 출간한 스님이나 대필한 것인지 모를 때야 그렇다 하더라도
대필해서 돈 주고 사서 한 것인지를 알면
그때는 실망하게 되고 욕하게 된다.
허나 처음부터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법에 의지했더라면
그러던 저러던 실망할 필요가 없다.
다만 마음이 닫혀 있으면 닫혀 있는 만큼 선별적으로 다가와 듣고 보았을 것이며
마음이 열려 있었다면 그대로 다 흘러들어 왔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설법 및 스님들에게 책을 대필했던 분이 생각났었다.
그분이 저에게 했던 말...
제가 여러 경전들을 디져서...스님들께 설법을 연구하여 팔고
책을 대필하는 것이 혹여 죄짓는 것은 아닌지요...
대필한 책 중에는 이름있는 책도 있고
책 출판기념을 한다고 오라고 해서 가 보니. 어떻더라...
테이트가 너무 좋아서 사왔다며 주어서 들어보니
자기가 써 준 설법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나오더라...며
어찌 그대의 잘못이겠소
그들의 잘못이지.
그래도 많은 대중들이 보고 듣고 깨어나니.
좋은 일이지 어찌 잘못이라 하겠소.
이런 경우 사람을 믿었다가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실망할까?

 

수행하고자 하는 수행하는 사람은 수행자는 구도자는
고로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수행해 가되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05. 1. 2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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