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기초적인 방법

수행 중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한 살불살조의 뜻은

칠통漆桶 조규일 2006. 10. 28. 16:05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한 뜻은? / 칠통 조규일
 

수행 중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선사를 만나면 선사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 하는데...
이러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기 자신에게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은
수행자가 수행한다고 수행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상을 그립니다.
부처는 어떻다..선사는 ...스승은...누구는...어떻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 주기를 바란다거나
마음 속으로 간절히 원하며 상상합니다.
수행 중 상상하는 이러한 것이 마음 안에서 이루어져서
마음 밖으로 현현하여 상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마음으로부터 환영을 만드는 것입니다.
환영을 마음으로부터 만들어 놓고
자기 자신이 바라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을
환영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에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을 두고
마치 밖으로부터 와서 보고 듣는 소리로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착각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빠지게 되면
이 착각 속에서 즐거워하고 수행하게 되니
수행이 올바로 되지 않겠지요.
그래서 자기 마음으로부터 만들어 놓았을지도 모를
부처..선사..스승...또는 바라는 누가...
수행 중에 만나면 죽이고
오롯히 자기 자신의 수행을 해 가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영혼의 세계에서와 같이
자기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의식 속
어떻게 인식하며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생각의 세계가 되고 의식의 세계가 되며 인식의 세계가 되어
상이 나타난다할 것이니.
이는 바른 수행이 아니 잘못된 것이기에 경계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수행 중에
밖으로부터 중음신 귀신...악마..영계의 영혼으로부터 오는
영혼들을 경계하는 것이다 할 것입니다.


중음신 귀신 악마...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습을 바꾸고 형태의 형상을 바꾸는 능력이 있고
마음을 읽고 생각을 읽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수행자가 어떤 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의식 속에서
어떤 것을 인식하기를 바라는 것인지 미리 알고
수행하는 수행자에 나타나서
수행자가 보고 싶어하는 환영을 보여주고
또는 모습의 상을 바꾸어 보고자 하는 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맞추어 주어
수행자가 가지고 있는 의식 또는 그 이상의 의식을 드러내 밝혀주고
그럼으로 바라는 의식과 인식을 알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며
수행자가 보고자 하는 이로 생각한 대로...친근하게 다가와서
수행자를 회유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친근해 지고 그와 같이 대화를 한다면
이때부터는 수행자의 수행은 끝이 나고
그의 노예나 다름없는 경우가 되기에 이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물론 영계 천계 광계로부터 온 영혼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중음신 귀신 잡귀 악마가...
처음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다가와
뜻과 의지대로 이루어지게 해서는
점차적으로 믿음이 두터워지면
귀신 잡귀 악마가 바라는 쪽으로 오도록 수행자를 유혹하고
이제 친숙해 졌으니 몸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괴롭히니
수행자가 수행을 올바로 수행해 가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싹을 자르고 바르게 가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오는 이 경우...
잡귀 귀신 악마는...수행과 관련 없이
수행이 깊고 아니 깊고 수행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수행보다는 능력을 원하는 이들에게 오고
영계 천계 광계에서 오는 경우는
그래도 수행이 어느 정도 되고
의식이 깨이고 몸이 이루어진 이들에게 온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오는 영계 천계 광계의...영혼들은
수행자 자기 자신에 맞게 오는 것이니
수행은 되지 않았는데 영계 천계 광계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수행이 되지 않고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영계나 천계 광계에서 왔다면
몸을 만들어지게 하고 의식이 깨이도록 수행을 시킨다할 것입니다.
수행시키는 쪽으로 보면 무속인들의 경우와는 다르다 할 것입니다.
무속인의 경우는
기를 받기 위해서 또는 잡귀의 기운을 더 받기 위해서
이산 저산 쫓아다니며 수행하지만
위의 경우는 영혼이 들어오기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한 수행을 시키다할 것입니다.

 

한 소식 돈오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경우이든 걸림의 대상이고
수행을 저해하는 요소이며
수행을 못할 수도 있고
지옥불로 떨어질 수도 있는 만큼
수행 중에
일어나는 현상에 메이지 말고
만나면 만나는 즉시 죽여가며
한 소식 돈오의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올바르게 수행해 가도록 하고자 하는 데서
올바르게 수행하도록 이른 말이다 할 것입니다.
 

채널링이 어쩌고
절대자가 어쩌고
부처님이 어쩌고
하나님이 어쩌고
예수님이 어쩌고
신이 어쩌고...대화하며 말하는 이들의 수행은
그들과 접하며 대화하며 전하는 동시 수행은 끝이 나고..
그들의 매개체에 불과하다할 것입니다.
절대자 부처님 하나님 예수님 신...누구라고 하는 이들의
상이나 모습이 같을 뿐 그렇게 말하는 그들은 그들이 아니라
상이나 모습이 그들이고 이름이 그들일 뿐 그들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 중에서는
잡귀도 있고 귀신도 있고 악마도 있으며
영계에서 온 이도 있고 천계에서 온 이도 있을 수 있지만
제가 아는 한 천계 이상에서 온 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수행 중에
나타나는 환영이나 상은 보는 것과 같이 잊고
수행 중에 만나는 이들 역시도 죽이며
오직 한 소식 돈오의 깨달음을 향해 수행해 가야 하겠습니다  


물론 수행을 지속적으로 해가는 과정에서
한 소식 돈오의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또는 보림 중에...
크게 한 번 죽어다 살아나야 한다.
이때는 고급령이 수행자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시험 내지는 테스트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크게 죽었다 살아나야 한다..


2005. 5. 26. 13:26

 

000:
나아가는 길에서 헤매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수행을 하면서 체득 해 나가는 과정임을... 크게 죽었다 살아나면 상대 세계는 사라지고 온전히 절대 세계에서 인연을 벗어나 해탈을 하게 되는 것인지요? 05.05.27 09:55
 

대사일번(大死一番)

 

크게 죽었다 살아나면
상대 세계는 사라지고 온전히 절대 세계에서
인연을 벗어나 해탈을 하게 되는 것인지요?   

 

 


어떤 일에 있어서
그 일에 부딪쳐 크게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 일에 대하여 더 이상 걸림이 없는 것과 같이
한 소식 돈오의 깨달음에 있어서도
크게 죽었다 살아나야
비로서 "나"를 버리고 돈오의 깨달음을 증득했다 하겠습니다.
상대와 절대 세계가 있고 없고를 떠나 중도에서
인연이 있고 없고를 떠나 여여한 가운데
오는 것에 있고 오는 것을 맞이한다 하겠습니다.

인연을 벗어나 해탈(解脫)한 것이 아니라
인연이 있고 없고를 떠나 해탈했다 하겠습니다.
해탈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있고 없고를 떠나 있다 하겠습니다.

 


예를 든다면
물의 표면에 있어서
물의 표면에 있는 것들과 함께
물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고 굴러가다가
물의 표면에서 크게 죽음으로 물 속에 들고
물 속에 들면 물 표면에 업과 인연이 있고 없고 상관없이
즉 물 표면에 있는 것들로 인하여
업이 있고 없고 인연이 있고 없고
물 속에 있게 되고 물 속에서 물 표면과는 상관없이
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물로 살아가되
물 표면의 업과 인연에 집착하면
또다시 업과 인연의 굴레 있게 된다하겠습니다.


 

이러한 관계로 돈오의 깨달음을 얻고
죽는 순간에 걸리면 다시 윤회하게 되고
윤회의 굴레에 있게 되면
인연법에 있게 된다 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돈오의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업이 없어지고 인연을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전에는 "나"라고 하는 하나의 굴레 속에
10개라는 업을 담아 놓았고
10개라는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면
돈오의 깨달음을 얻음으로 인하여
"나"라고 하는 자성경계의 굴레 즉 울타리가 없어짐으로 하여
10개라고 하는 업이 이제는 우주 전체에 흩어져 있게 되고
10개라고 하는 인연이 우주 전체에 흩어져 있게 된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한정된 공간에 10개의 업과 10개라는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과
한정되어 있지 않는 탁 트인 공간에
10개의 업과 10개의 인연이 있다 하면
어느 쪽이 더 자유롭고 여여하겠습니까?

 

 

이렇듯
수행하여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것은
가지고 있는 업과 인연이 다한 것이 아니라
업과 인연이 있고 없고
"나"라고 하는 자성경계의 울타리가 크고 작고에 따라
자성경계의 울타리 안에서 활동하는 업과 인연으로부터
구속과 자유로움이 다른 것과 같고
우주와 공명현상을 일으켜 자성경계가 깨지고 없어짐으로 인하여
"나"라고 하는 자성경계의 울타리 안에 있던
업과 인연이 우주에 있게 되고
그만큼 자유롭고 여여롭다 하겠습니다.

그런 만큼
돈오의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크게 한 번 죽었다 하여
업과 인연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업과 인연이 있고 없고를 떠나 있게된 것이다 할 것입니다.

 


업이 없고 인연이 없다면
업을 벗어났고 인연을 벗어났다면
업과 인연으로 인한 육체도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돈오의 깨달음을 얻어도 육체는 있게 되고
또한 세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많은 사물들과 상생 속 살아갑니다.
이는 스스로는 업이 있고 없고
인연이 있고 없고를 떠나 여여하지만
내가 아닌 나와의 상대적 절대적 인연에 의하여
밖으로부터 업과 인연이 있어
업과 인연으로 인한 육체가 유지되고
육체가 유지됨으로 업과 인연이 도래하여
의식과 마음과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과 많은 삼라만상과 부딪히고 부딪치며
상생 속 살아간다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에 있어
나는 전혀 집착하지 않아 그 일에 아무렇지도 않은 데에 반해
상대방은 그것에 집착하여 걸려 있다면
상대방이 걸려 있는 것으로 인하여
두 사람 사이에 인과 연이 있어 인연이 있게 되고
비록 나는 놓았다 하여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연이 있어
인연이 도래하는 것과 같다할 것입니다.


 

2005.05.28 07:12

 

000 :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업과 인연에 걸리지 않을 만큼 탁트인 깨침 일대사 인연으로 걸림없는 자유인이 되어서 여여하게 살아가고 싶은데...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힘듭니다...인연의 강에 따라 흘러가야겠지요...감사합니다()()() 0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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