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변화를 비우고 버려야 여여할 수가 있다. / 칠통 조규일 육체를 나로 알고 살다가 어느 날 육체가 내가 아니라 영혼이 "나"의 실체로 인식하고 영혼이 나로 인식될 때 영혼에 집착하게 되면 영혼의 포로가 되어 영혼에 머무르게 될 것이며 영혼을 인식했으나 영혼이 내가 아니라 마음이 나로 인식될 때 마음에 머물러 마음에 집착하면 마음의 포로가 되어 마음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님이 수행하여 올라선 수행의 계단의 경지 어디에 있던 있는 그곳에 머무르지 말고 깨달음으로 가는 작은 인식의 변화의 깨달음을 버려라. 수없이 많은 인식의 변화 버리고 버려라. 혜오를 하면 혜오한 것을 버리고 혜오한 것을 버려야 견성할 수 있고 견성을 하면 견성한 것을 버리고 견성한 것을 버려야 돈오할 수 있고 돈오의 깨달음을 얻으면 깨달음을 버려야 여여할 수가 있다. 그대가 어느 수행의 경지에 있든 수행으로 알고 있는 인식의 변화를 비우듯 버려라.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한 계단씩 더 올라서라. 담고 비우고 비우고 담는 사이 담을 것도 비울 것도 없을 때 여여할 수 있다. 2003. 12. 16 칠통 조규일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하나 하나 버려가며 진정한 나를 찾아라. / 칠통 조규일 우리는 너 나 할 것없이 "나" "내것"이라고들 말을 한다. "나"라고 하는 "나"를 살펴보면 "나는" 색(色:물질)과 수(受:감각)과 상(想:생각)과 행(行:의지작용)과 식(識:의식) 오온(五蘊)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이 몸동아리와 몸동아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나"라고 하고 있다. 이 "나"라고 하고 있는 것들을 우리는 "내 것"이라고들 한다. 즉 '이것은 내몸이다' '이것은 내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나"라고 말하고 있는 내 몸과 몸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이 "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의 테두리 안에 작용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일러 이를 "내 마음"이라고 "내 마음작용"이라고들 말을 한다. 그러니 "내 마음" "내 마음작용"은 "나"라고 하는 인식하고 있는 오온(五蘊: 색 수 상 행 식)의 모든 작용을 일러서 내 마음 내 마음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내 마음" "내 마음작용"은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육체(색:色)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수(受:감각작용), 상(想:생각,상상작용), 행(行:행동의 의지작용), 식(識: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작용)의 모든 작용을 일러서 내 마음 또는 내 마음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색:色)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수(受:감각작용), 상(想:생각,상상작용), 행(行:행동의 의지작용), 식(識: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작용)의 모든 작용을 일러서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내 마음이다' 라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이것들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이것들에 집착함으로 올바른 생각을 잃거나 올바른 견해를 가지지 못하고 이것들로 인하여 고(苦)를 당하고 "내것"을 잃을까 두려움에 떤다. 그러나 올바로 수행하는 수행자는 이 다섯가지 오온(五蘊: 색 수 상 행 식)이 내가 아닌 지를 알고 내것이 아닌지를 알고 이것들을 생각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또한 그것들이 어떤 변화나 작용을 일으켜도 그것에 빠지거나 집착하지 않음으로 그것들로 인하여 올바른 생각을 잃거나 올바른 견해를 잃지 않음으로 그것들로부터 고(苦)를 당하거나 집착하는 일없이 "내것"을 잃을까 두려움에 떨지 않는 정심(正心) 속 올바른 생각을 하고 정사(正思) 속 올바른 말을 하며 정언(正言) 속 올바른 행동을 하고 정행(正行) 속 언제나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정견(正見)을 가지고 수행해 간다할 것입니다. 그러니 올바로 수행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 "내것"이라는 것을 하나 하나 버려가며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올바로 수행해 가는 것이다 할 것입니다. 그런 만큼 깨달음을 향해 수행하다고 수행하는 수행자는 무엇보다 먼저 "나" "내것"이라고 했던 것들을 수행을 통하여 "나" "내것"이 아닌 것을 하나 하나 버려야 한다. 물질(색:色)이 "나" "내것"인 것이 어느 것 하나라도 있는가? 없다. 있다면 있는 그것이 무엇이지 살펴보고 그것이 나라할 수 있고 내것이라 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나라할 수 없고 내것이라고 할 수 없다면 버려라. 즉 물질(색:色)을 버려라. 버리라 했으나 버리는 것은 그것이 "나" "내것"이 아닌지를 확연히 알고 인식하고 놓아버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물질을 살펴보면 물질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졌다. 어떤 큰스님이 말을 하듯 4대로 이루어졌으니 인간이고 인간이 아니려면 4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야 함이 아니라 물질은 유무정을 떠나 4대로 이루어져 있고 4대가 어떻게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4대가 각각 어느 정도의 차이로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나타난 물질이 다르다 할 것이다. 그러니 물질이 나 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물질은 4대로 이루어져 있고 4대의 집합체가 물질인지를 알아야한다. 그럼으로 물질이 내가 아니고 내것이 아닌지를 인식 의식하게 된다. 물질의 육체를 통하여 육체 안팎을 연결하는 연결통로를 통하여 일어나는 감각(오감) 역시도 나 내것이 아닌 것을 알고 감각을 인식하고 의식하되 집착으로부터 놓아버려야 한다. 생각은 어떠한가? 육체(색:물질)가 가지고 있는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을 통하여 육체(색:물질:내몸) 밖에 것이 내몸 안으로 들어와서 식(의식:무의식 잠재의식)에 닿음으로 닿음과 함께 일어나는 생각 역시도 나 내것이 아니다. 생각을 인식하고 의식하되 집착으로부터 놓아버려야 한다. 의지작용(意志作用)은 어떠한가? 식(識:아는 것 알고 있는: 의식 무의식 잠재의식)의 작용이 뜻과 의지 생각이 그래서 그렇지 그것을 나 내것이랄 것이 있는가? 의지작용을 인식하고 의식하되 의지작용을 집착으로부터 놓아버려야 한다. 의식은 어떠한가? 안이비설신을 통하여 내몸이라고 했던 육체 안으로 들어와서 나라고 하는 내 안에서 아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의식이다. 아는 것 알고 있는 것을 나라고 내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식작용을 인식하고 의식하되 의식작용을 집착으로부터 놓아버려야 한다. 이렇듯 나 내것이라고 했던 오온을 인식하고 의식하되 놓아버리는 것이 되고 내 몸이라고 하는 내 육체를 테두리로 하고 있는 내 마음 그 내 마음밭에 시도 때도 없이 자라는 것들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놓아버림으로 마음은 평안함 속 기쁨을 누릴 것이다. 자! 마음은 무엇인가? "나" "내것"이 아니란 것은 또 무엇인가? 이것이 전에는 내것이었는데 이제는 내것이 아니다. 다시 내 소유로 만들 수는 없을까? 더 많이 소유할 수는 없을까? 이렇듯 우리는 내것을 만드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내것이라고 여겨던 것들을 잃음으로 절망하고 희망과 절망 속 내것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힘쓰고 노력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생이 흘러가는지 모르고 노력하고 힘써서 이루어지면 기뻐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슬퍼하고 탄식하며 가슴을 치고 운다. 실체도 없는 "나"에 집착하면 항상 근심과 고통이 생기는 법이다. 내가 있다면 내것이 있을 것이고 내것이 있다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내것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나" "내것"이랄 것이 하나도 없다. 나와 내것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이렇듯 올바른 수행자 올바로 수행자는 수행자는 나" "내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하나 하나 파헤쳐서 나" "내것"이 아닌 것을 하나 하나 버려가며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럼으로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다. 나를 찾아가면서 나 아닌 것을 버린 만큼 놓아버린 만큼 물질과 분별을 싫어하고 욕망을 버리고 해탈하는 것이다. 2005. 4. 16. 10:06 칠통 조규일 모든 것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 칠통 조규일 모두 다 하나로 통하여 있고 하나로 꿰어져 있다. 통한 곳 꿰어진 곳에서 보면 모든 것은 꿈이고 환상이로되 꿈이 현실인 듯 현실이 꿈인 듯 환상 속에서 쫓고 있는 것은 내 안의 내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변하는 것은 생멸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생에 있으니. 나에게 있되 변하는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또 무엇인가? 변하는 것에 있으면 생멸이 있어 생멸로 인하여 흔들릴 것이며 흔들림으로 생로병사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으나 변하지 않는 것에 있으면 무생으로 생멸이 없고 생멸이 없으니 생멸로 인한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없고 흔들림이 없게 되니 평화롭고 자유롭다. 모든 것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고 언제나 늘 한결같은 것이 있다. 너에게 변하는 않는 것은 무엇인가? 그곳에 행복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며 그곳에 드는 곳(것.문)이 열반문이고 해탈문이다. 너에게 있어 변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것을 다 버려라. 생명까지도... 그러면 그곳에 꽈리를 틀고 앉아 있을 것이다. 자! 보라 무엇이 너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변하는 것은 버리고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변하는 곳에 있는 자기 자신을 변하지 않는 곳을 보고 변하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수행이다. 수행의 목적지는 바로 이곳 변화하지 않는 곳에 도달하고 그곳에 있는 것이다. 자! 너에게 변화 속 변화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꽝! 2005. 9. 2. 09:14 칠통 조규일 나' '내 것'이라할 때, 오온을 확연히 밝게 알자. 430 / 확철 칠통 명철 조규일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자기가 소유한 그 어떤 것을 '이것은 내 것이다.' 또는 자기 자신의 몸을 일컬어 '이것은 나의 나다'할 것이다. 그러나 오온(五蘊)을 확연히 밝게 알고 나서는 '나라고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없다'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나, 내 것이라는 것에 집착함으로 항상 근심하고 걱정하고 고통과 괴로움, 즐거움이 생긴다. 너는 생각해 보아라. 네가 없다면 네 것이 어디 있나 찾아 보라. 네가 없다면 네 것이라는 것 역시 없을 것이다. 네가 나라고 인식할 때 내가 있으니 내 것이 있을 것이고 내 것이 있으니 내가 있을 것이다. 나에 집착하니 내 것에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것들로 인하여 근심하고 걱정하고 고통을 받는가 하면 괴로워하고 즐거워한다. 너는 생각해라. 너와 네 것이 어디 있나 찾아 보라. 이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 어디에 나와 내 것이 있을 것인가? 너는 진정 나와 내 것을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확연히 밝게 앎으로 해서 너는 물질(色), 감각(受), 상(想), 행(行), 식(識)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이것들에 집착하지 않을 때 이것들이 없어졌다 할 것이며 바로 생각을 읽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장애를 벗어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나"에 집착하므로 항상 근심과 걱정, 고통과 괴로움,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며 "나는 없다"라고 할 때 "내 것"도 없으니. 분별하지 않을 것이고 욕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어디서 장애를 받고 장애가 일어날 것이며 번뇌가 있을 것이며 걸림이 있을 것이며 무거운 마음의 짐이 있을 것이며 속박이나 구속이 있겠는가? 네가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확연히 밝게 알아 진정한 나가 없음을 알고 나를 버려라. 그리고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려라. 그러면 영원한 평화, 평안, 행복과 기쁨 속, 진리가 진리 속에서 살리니. 그럼 나라고 인식한 이 몸이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연히 밝게 알아 나를 버릴까? 그것은 네가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네 몸이 애초에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사실대로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네 몸이 지(地)수(水)화(火)풍(風) 사대(四大)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된 것음을 확연히 밝게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 몸을 사대(四大)로 갈기갈기 갈라 떼어 펼쳐 놓듯이 분해하고 분석하여 확연히 밝게 드러내 놓아야 한다. 이런 연후에 오온(五蘊) 역시 내 것이 아님을 확연히 밝게 알아 물질(色)은 내 것이 아니다. 감각(受)은 내 것이 아니다. 생각(想)은 내 것이 아니다. 의지작용(意)은 내 것이 아니다. 의식과 무의식(識) 또한 내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니. 그 어디서 장애를 받고 장애가 일어날 것이며 번뇌가 있을 것이며 걸림이 있을 것이며 무거운 마음의 짐이 있을 것이며 속박이나 구속이 있겠는가? 너는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닌지를 확연히 밝게 알아 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그 속에서 노닐어라. 그러면 영원한 평화, 평안, 행복과 기쁨 속, 진리가 진리 속에서 살리니. 2001-07-07 칠통 조규일 해탈(解脫)하고자 하고 대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 확철 칠통 황금종려 조규일 해탈하고자 하고 대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다 놓아라. 더 이상 놓을 것이 없을 때까지 놓고 놓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놓아라. 무엇이 해탈(解脫)입니까?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는 것이 해탈입니다. 누가 그대에게 해탈하지 못하도록 구속하거나 억압하는 이가 있습니까? 그 누구도 그대를 구속하거나 억압하지 않습니다. 그대 스스로 자기가 자신을 구속하고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대를 구속하고 억압하고 있습니까? 살피고 살펴보소서. 그리고 그대 자신을 구속하고 있고 억압하고 있는 것을 확연히 알아서 그대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을 버리고 버리면 버리는 순간 버리는 만큼 자유스러워지고 해탈하게 될 것입니다. 해탈하여 대자유를 얻기를 바란다면 가지고 있는 것 모두 버리고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까지 버리고 버리고자 하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라. 그러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구속되고 억압되고 아는 것으로 구속되고 억압되고 걸리고 장애가 되었던 것들이 모두 다 없어짐으로 해서 더 이상 구속할 것도 걸릴 것도 없게 될 것이다. 물질을 버려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나라고 하는 나를 이루고 있는 나라고 하는 나를 버리고 나라고 하는 나의 집을 이루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고 하는 나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대를 구속하고 억압하고 있는 것이 없다면 그대는 해탈한 것이다 해탈했다면 자유스러울 것이다. 누가 그대를 해탈하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는가? 누가 그대를 자유스럽게 하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는가? 그대가 그대를 해탈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그대가 그대를 자유스럽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 누구도 그대를 구속하거나 억압한 일이 없다. 그대는 그대의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해탈하고 대 자유를 얻어라. 어찌하면 되겠는가? 꽝! 2007. 03. 09. 17:59 칠통 조규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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