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하루가 일생, 자신을 보려면, 비우고 비우고

칠통漆桶 조규일 2023. 11. 26. 07:45


오늘 하루가 일생이다.

 
날마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오늘의 탄생이요, 


시원한 아침마다

짧은 청년기를 맞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누울 땐


오늘 하루의 황혼기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



2010. 05. 21 04:38 칠통 조규일




음지로 숨는 것은

밖으로 드러내지 못할 때

음지로 숨는 것이다.


 
밖으로 드러나면 드러나는 만큼

싹이 잘리니 음지로 숨는 것이다.

 

지하가 경계가 그래서 생겨난 것이고

각 회사의 비자금이 그래서 생겨난 것과 같이

 

어느 정도는 밖으로 드러나지만

드러난 것에 비례해서 지하로 숨는 것과 같이


음지에 있게되는 것이 업이다.

 

밝게 밖으로 드러내면

드러낸 만큼 업이 되지 않지만



드러내기를 겁내하며

남에게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숨기고 숨기다 보면



자기 자신 안에

끌어안고 부여안고 있다가 업이 된다.



마치 지하 경계가 있는 것과 같이

지하 경제가 많게 적게 생겨나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2010.12. 18 04:15 칠통 조규일




명을 받되

누구로부터 명을 받는가?

 

생각하고 행하되

생각은 누가 일으키고

행은 누가 하는가?

 

오늘도 행함 없이 행하고

취한 것 없이 취하여 갈 일이다.


 

서풍에 바람불고

동풍에 앉으니


천하가 좌선 선몽에 들었구나

 
꿈이면 깨고

현실이면 일어나 걸어라.



2017. 12. 03 08:10 칠통 조규일




담박질하듯

수행이나 명상을 잘 해나기 위해서는

진실해야 하고 참되야 하고


자기 자신이

행하는 행이나 생각 의식이 일어나는

근원을

바로 알고 바로 보기 위해서는


거짓됨 없이 진실해야 한다.


마치 벌거숭이가 되어

만인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이

그러면

벌거벗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바로 보고 바로 알아


거짓의 옷이나 탈

생각 의식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다 하겠으니.



수행이란

가아를 버리고 진아를 찾는 것으로

가짜의 나를 버리고 진짜의 나를 찾는 만큼


스스로

거짓되고 거짓되어서는

열심히 한다고

수행이나 명상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잘 하기 위해서


말과 생각 의식이

거짓됨 없이 진실되고 참되야 한다.


이야기인즉

사실 그대로 알고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껏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가아에 속아서는

진아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


진아를 알겠다며 수행하면서도

남에게 말하거나 이야기할 때


자기 자신의 참된 생각이나 말 의식을 알까 두려워

사실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다른 말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해서

과연 자기 자신 안에 들어가


명상 수행할 때 거짓의 옷을 벗고

사실 그대로 살펴 알 수 있을까요?


행동하면 행동함을 통하여

행동하는 진실함을 알고

말을 할 때 말하는 뜻과 의미의 사실 그대로

진실함 알고


생각 의식 마음 또한 행할 때나 일어날 때

사실 그대로

바로 알아야 하지요.


2008.12.10. 07:47 칠통 조규일



무심이 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답니다.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

비울 것이 없을 때까지 비우고

비우고자 했던 마음까지도 비웠을 때

무심이 될 것입니다.




비울 수 있는 한 비워라. 철저하고 처절하게 비워라. / 칠통 조규일



자기 자신 밖은 텅 빈 허공의 공의 성품으로 본다. 자기 자신 안을 볼 때 무엇으로 자기 자신 안을 볼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는 깨달음을 증즉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몸통 가득 담고 있어서는 볼 수가 없다.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담아서는 틈이 없다. 틈이란 공간의 텅 빈 허공이 드러나 있는 공간이 없어서는 볼 수 없다. 볼 때는 텅 빈 허공의 공의 성품으로 보게 된다. 자기 자신 안이든 밖이든,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 안을 가득 채운 몸통이 아니라 틈이 있고 공간이 있는 텅 빈 허공의 공간을 만들 것인가? 어찌하면 되겠는가?


그러므로 생각이 가득 차서는 생각을 바르게 볼 수 없고 생각을 내려놓으면 내려놓는 만큼 볼 수가 있다. 마음도 별반 차이가 없다. 마음을 내려놓아야 내려놓는 만큼 마음을 관하여 볼 수 있다. 의식 역시도 다르지 않다, 현재의식을 내려놓아야 잠재의식을 보고 잠재의식을 내려놓아야 무의식을 볼 수 있다.


생각을 관하여 보려면 머리가 비워져야 한다.
어떻게 머리를 비울 것인가?


마음을 관하여 보려면 마음이란 그릇이 비워져야 한다.
어떻게 마음을 비울 것인가?


마음이 무엇이냐?
텅 빈 허공이 곧 마음이다.

텅 빈 허공을 테두리 쳐 놓고 마음이라고 하고 있다.

마음이라고 테두리 쳐 놓은 텅 빈 허공을 비워야 비운만큼 마음에서 작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자기 자신을 비우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비우고 비워서 텅 비워야 한다.

집착을 버리고 탐 진 치 삼독심을 비워야 한다.


비우고 비웠을 때, 비운 것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자기 자신을 모두 다 비우고 나서 자성경계의 일원상만을 남겨두었다가 자성경계의 일원상마저 깨고 깨달음을 증득해야 한다.


깨달음을 증득하고 자성불이 되어 자성불 속에서 비우고 비워서 자등명을 보아야 한다.


이렇듯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비워야 비우지 않고서는 깨달음을 증득할 수 없다.

우주 삼라만상 중생들은 텅 빈 허공이 있으니
텅 빈 허공에 공의 성품이 있는 것이고,

텅 빈 허공이란 공(空)에 이르러서 공(空)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공에서 하나하나 찾아야 하는 만큼 하나하나 공이 되지 않고서는 찾을 수 없다.


어찌하면 지금의 나라고 하는 나를 공(空)이 되도록 하겠는가?

공(空)이 되지 않고서는 공의 성품을 자기 자신 안에서 볼 수가 없다.

몸통 안이 텅 비어서 공이 되어야 하고

생각, 현재의식, 마음, 잠재의식, 무의식이 공이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 공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내가 무엇이 되는 것인가?

관하여 살펴보며 성찰하라.


무엇이 너 자신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있고, 무엇이 너를 깨닫게 못하고 있는가?


깨닫고 싶은가? 편안하고 싶은가? 그러면 비워라. 무엇을 비울 것인가? 하나하나 비워라. 비우지 않고서는 편안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

불편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안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
안에 가지고 있다고 하되 안에 가득 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몸통 안에 의식으로 생각으로 끌어당겨 담았던 것이든 중음신이 갔다 놓았던 것이든 몸통을 비워야 한다.

몸통을 비워야 몸통이 빈만큼 빈 허공으로 몸통 속을 관하여 볼 수 있고,

생각을 관하여 볼 수 있고, 마음을 관하여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워라 철저하게 비워라.

나라고 하는 자기 자신까지도 비워라.

그렇지 않고서는 깨달음을 증득할 수 없다.


비울 수 있는 한 비워라.

철저하고 처절하게 비워라.

놓아라 놓을 수 있는 한 놓아라.

목숨을 끊는 듯 놓아라.


2010. 10. 8 08:16 칠통 조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