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나를 버린다. 어떻게? 이와 같이 일어난 생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 존재자 인연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칠통漆桶 조규일 2024. 1. 19. 07:18

나를 버린다. 어떻게? 이와 같이 

일어난 생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 존재자 인연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 확철 칠통 명청 / 칠통 조규일

 

 

 

나를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자신 밖으로부터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자기 자신 안에서 부딪쳐 반응하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부딪쳐 반응하는 것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

 

나를 죽이고 자기 자신 밖에서 들어오는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 안의 수많은 나를 죽이는 방법은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치받아 치며 반응하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치받아 반응하며 일어나는 생각을 멈추고 일어나는 생각을 받아들일 때

 

내 안의 수많은 나를 죽이고

 

자기 자신 안팎에 보이지 않는 인연 있는 이들이 하는 말을 알아차리고 들을 수가 있다.

 

 

 

흔히 우리들 각기 저마다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생각들의 96.5% 정도는

 

자기 자신 안팎에 보이지 않는 존재 존재자들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고

 

이 중에 3.5%가 자기 자신이 일으키는 생각이며

 

자기 자신이 일으키는 3.5% 중에 현재의식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2,6%이고

 

잠재의식 무의식이란 업으로 일어나는 생각이 0.8%이고

 

0.1%는 잠재의식 무의식이란 업 이전의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생각이다.

 

 

 

자기 자신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이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각을 되받아 치지 않고 일어나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거의 다 자기 자신 안팎에 보이지 않는 존재 존재자들이 전하는 이야기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일어나는 생각을 되받아 치는 나를 죽이고 일어나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일어나는 생각을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생각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무엇인가? 자기 자신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자기 자신에게 무엇인가? 알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 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무엇인가? 미리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무엇인가? 확연히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일어나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생각이 단순히 물결처럼 일어난 생각이 아니라 생각하도록 하는 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생각을 일으킨 분이 누군지 묻는다.

 

이와 같이 생각을 일으킨 분은 누구세요?

 

 

 

생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내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러면서 생각을 일으키는 분이 누군지 알아차린다.

 

물론 누구세요? 물었을 때 대답하는 경우에는 알겠지만

 

대답하지 않을 때는 모르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통해 알아차린다.

 

 

 

보이지 않는 안팎의 존재 존재자 및 위 세계 분들이 생각을 일으키며 말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일어나는 생각에 반응하며 되받아치는 나를 죽여야 한다.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 안팎에 보이지 않는 인연 있는 분들이 자기 자신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 말을 생각으로 일으켜서 전달하고자 하는 말, 이야기를 알아차릴 수가 없다. 때로는 일어난 생각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거나 자기 자신 안팎, 저 위 세계, 자기 자신의 무의식 속에도 없는 위에 위 세계로부터 자기 자신과 인연된 분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자 하거나 듣고자 한다면 반드시 일어나는 생각을 받아들이되 절대로 치받아 치지 않아야 한다.

 

일어나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자기 자신 안팎 보이지 않는 존재 존재자 및 기억에도 없는 위 세계의 인연 자분들로부터 그분들이 하고자 하는 것들 듣게 된다.

 

이와 같이 해서 자기 자신 안팎에서 위 아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인연 있는 존재 존재자 분들이 생각을 일으키며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듣게 되고 알아차리게 된다.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인연 있는 분들이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고자 자기 자신에게 일으킨 생각, 그 일으킨 생각을 자기 자신에서 일어난 생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이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일어난 생각을 통해 듣고 알게 되는 것을 위 세계에서는 혼종(魂終)이라 하고 지구에서는 나를 내려놓음으로 밝고 맑아져서 듣게 되는 명청(明聽)이라 할 것이다.

 

 

 

이는 생각으로 나를 내려놓는 것이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역시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 자기 자신에게 말이나 이야기를 할 때 말이나 이야기를 듣되

 

듣는 말이나 이야기에 대응하여 치받아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이

 

듣는 말이나 이야기에 대응하여 마음 또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듣는 말이나 이야기에 대응하여 일어나는 생각처럼

 

자기 자신 안팎에서 마음으로 들어오는 말이나 이야기를 마음에서 치받아 치고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음에서 나를 죽이고 치받아 치지 않고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보이지 않은 인연 있는 분들이 생각을 일으켜 전하고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마음으로 전하는 말이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마음에서 치받아 치고 일어나는 잠재의식 무의식 업의 나를 죽이고 죽이면

 

나를 죽이고 죽이는 만큼 나의 잠재의식 무의식 업이 사라지며 마음작용이 일어나는 마음으로부터 자기 자신 안팎의 보이지 않는 인연 있는 분들의 말이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마음으로 치받아 일어나는 나를 죽이고 보이지 않는 인연 있는 분들이 마음작용을 일으키며 하는 소리를 마음 작용을 일으키며 하는 소리를 드는 것을 심빈청(心彬聽)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에서 나를 죽이고 마음에서 나를 죽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죽이는 만큼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나를 죽이고 죽이다보면 나의 업은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고 내려지게 된다. 업을 내려놓는 만큼 맑아지고 밝아진다. 맑아지고 밝아진 만큼 위 세계로 올라오게 된다.

 

위 세계로 올라오고 올라와서도 자꾸만 나를 생각이나 마음으로 죽이고 죽여야 한다. 그래야만 더 위 세계로 더 위 세계로 자꾸만 올라올 수 있다. 아래 세계에서든 위 세계에서든 나를 죽이지 않고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버리지 못하는 만큼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으며 올라가지 못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나를 이루고 있는 일합상의 나에서 나만 빠지면 된다. 빠지는 만큼 맑아지고 밝아지고 위 세계로 올라가게 된다.

 

나를 버리는 만큼 나는 커질 것이며 나를 가지고 있으면 있는 만큼 나는 작아질 것이다.

 

 

 

영청은 영적존재를 통해 듣기도 하지만 생각을 일으키는 신의 부분에 기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비워내고 위 세계 영청, 심안이 일상인 세계의 에너지로 바꿔 놓음으로 인하여 듣게 되기도 하고, 또 몸통 안에 영청이 들리도록 하는 통로 및 안테나 및 수신 기능 등을 하는 것을 펼쳐 놓음으로 듣기도 한다.

 

대부분 아니 거의 100이면 100 영적존재를 영가를 통해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진정으로 몸통 안에 안테나 및 수신 기능이 있는 것들을 펼쳐놓음으로 듣는 경우는 70억에 한명 있을까 말까 하다.

 

 

 

자청은 수행 정진함으로 맑고 깨끗해짐으로 인하여 수많은 자기 자신 안에 전생에 기억에 조차 없는 오랜 전생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듣게 되는 것이 자청이다.

 

 

 

영청, 자청, 명청에 대해서는 1년 전에 글을 썼음에도 내놓지 않았었는데, 이것을 가져다가 많은 이들을 깨어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갈취하는 것으로 쓸까 싶은 생각에 내놓지 않았다. 이것을 언젠가는 내놓게 되겠지만 이 또한 믿음을 갖고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행하고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더 없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악용될 이들 때문에 지금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이글 역시도 단순히 나를 어떻게 쉽게 버리느냐? 죽이느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금요모임에서 하고 시간 관계상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것이다.

 

 

 

2017. 02. 18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