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010 글쓴이: 칠통 시간: 2001-07-22(일) 00:34:12 조회: 34
종교적 분쟁으로 치닫게끔 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닐텐데....? / 칠통 조규일
"불자라기보다는 마음공부를 하려하는 사람정도로 저를 평가하고 싶은데요, 이러한 저의 모습을 보는 기독교계 분들은 참으로 안타깝게 여기시더라구요. 수행이다, 진리다, 뭐다...... 예수님의 품이 곧 진리이니 하시는데...그 분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지혜도 없고, 또 있다고 해도 종교적인 분쟁으로 치닫게끔 하는 것은 또한 현명한 태도가 아닐텐데...유달리 기독교계 사람들은 타인들을 전도하려는 경향이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몇 번 자리하긴 했는데요, 거기서도 제 마음이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밖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구하라' 오직 이것만이 제 마음에 와 닿던데요. 저의 이러한 생각과, 그리고 현대의 기독교계에 대해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
불자(佛子)란? 말 그대로 불(佛)의 자식으로 불교를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불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고 공부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신도(信徒)라고 하고, 신도는 믿고 따르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믿고 따르는 자들을 아들(자식)이라 말합니다. 유일신(唯一 神)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믿고 따르는 이들을 아들로 칭하여 말합니다.
불자라고 해서 꼭 절에 가야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절에 가서 예배하고 공덕을 쌓고 마음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절에 가면 절에는 고급신들만이 있습니다. 성당이나 교회 역시도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만들어져 어떤 절차를 거쳐서 놓여져 있다면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는 일종의 잡귀나 귀신은 근접을 접근을 못합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법당에 들어가면 법당 안에 모셔진 부처님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광명을 목격하셨는지 모르겠네요. 광명의 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대가 눈을 뜨게 되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절에 따라는 가도 법당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절에 갈 때는 언제나 오늘은 법당에 들어가 예배하야지 하고 절에 갔으면서도 진작 절에 가서는 법당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이는 자신의 몸에 귀신이 붙어 있어. 귀신이 잡는 것입니다. 법당에 들어가면 자기가 붙어 기생하는 몸을 떠나 있어야 하니.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자꾸 법당에 못 들어가게 말리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 공부하다 보면 자연히 불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이야 단순히 마음 공부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할련지 모르겠으나....
"기독교계 분들은 참으로 안타깝게 여기시더라구요. 수행이다, 진리다, 뭐다...
예수님의 품이 곧 진리이니 하시는 데.."
수행하시다 보면 수행 중 마가 끼는가 하면 마음의 병이 생기기도 하지요. 수행의 마란 색, 수, 상 ,행, 식으로 인한 수행의 방해를 말합니다. 수행에 있어 마음의 병이란 수행하다 보면 일종의 단계 같은 것이 있는데, 하나 하나 알아 가는 과정에서 체득해 갈 때 그 체득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그곳에 안주하려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생각에 자신이 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깨달아 있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 책 속에서 "수행을 방해하는 마와 마음의 병"이란 글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성경에 보면 " 나를 따르라, 나 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이외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이 말을 기독교에서는 예수님 자신을 지칭한다고 생각들을 하지요. 그리고 기독교 지도자 분들은 그렇게 가르칩니다. 아마 이 말이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그대가 말한 "밖에서 구하지 말고 네 안에서 구하라" 이런 뜻으로 해석하려면 얼마의 세월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언젠가는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해석할 것이지만.... 성경에 "나는 곧 말씀이며 진리고 생명이다" 이말 역시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나는"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으로 해석하는데 제대로 해석한다면 우리 각자 자신의 근본 성품을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 우리 모두가 살겠음이란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다" 이말 역시도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으면 곧 부처다. 즉심즉불을 말한 것이지요. 성경을 읽어보면 수도 없이 많아요. 그러나 해석이 다를 뿐이랍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해석하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가르치다보니 오독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유달리 기독교계 사람들은 타인들을 전도하려는 경향이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기독교 쪽에서는 마음 공부를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중요시합니다. 물론 그 어떤 종교가 되었던 종교는 첫째가 믿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우선되지 않고서는 자신이 믿는 종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나를 따르라" 나만 믿고 따르면 된다는 말이지요. 여기서 나는 예수를 지칭하는 것인지. 가아 (假我)로 살아가는 일반적인 우리들이 진아(眞我)의 나를 따르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불교가 기독교에 비해 한참을 앞서 있지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너 스스로 수행하여 닦아 오라 하시니. 어리석은 중생들은 그것이 힘드니 못하고 제대로 못 닦다보니. 구제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이때 예수님이 깨닫고 보니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새로운 방편을 생각하니. 무조건 내가 하는 대로만 따라 오라. 그러면 천국에 나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런데 처음 예수님의 생각과 어긋나 그분의 일거수 일투족 닮아야 하거늘... 어리석은 인간들이 또 다름대로 판단하니. 처음 예수님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가르침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고 따르면 예수님에 말씀에 이르게 되지만,
믿는 사람들은 믿고 따르며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믿고 따르나 막상 벗어나서는 자신들의 언행으로 살아가니. 예수님의 말씀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자체가 빛이고 진리이고 길이다 하심은 예수님이 진리 자체가 되어. 법이 되어. 빛이 되어. 진아(眞我) 그 자체가 되어 그 자리에서 그가 되어 말한 것이니. 당연히 진리이고 빛이고 길인 것입니다. 길이라 하심은 그곳에 이르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가르침 그곳의 말씀이란 말이 되겠지요. 이런 상황의 가르침 속에서 이어져 온 현재 믿음을 중요시 하다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의 숲 속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기독교라는 것을 믿다보니. 그 믿음으로 어느 정도 올라갔으나 어둠의 숲 속인지라 다른 길은 분간을 못하고 올라 온 그 길만이 최고인 듯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이끈다고 구한다는 신념에 다른 길은 보이지 않으니.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길이 올라온 그 길이 최고인 양 타인들을 전도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공부가 돼서 그런 다기보다는 믿음이 강하여 믿고 기도하다보니 영적 경험을 하게되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인간구제, 영혼구제라는 명목 하에...그러니. 그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공부가 되고 자신 안으로 공부가 되다보면 부처님 경전을 읽어보면, 남을 이끌어 가기보다는 자신의 공부가 더 급하니. 좋은 줄 알면서도 불교인들은 전도하려는 경향이 적은 편입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하는데 즉 물어 보는 데에는 대답하지만 믿으라 강요는 하지 않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빛으로 가는 길"이란 책에서 "종교는 하나"라는 제목의 글 1가 2를 읽을 기회가 있으면 읽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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