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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회] 자기 왜소함이나 축소감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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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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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회 |
No: 1103 글쓴이: 칠통 시간: 2001-07-28(토) 05:55:47 조회: 42 자기 왜소함이나 축소감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 칠통 조규일 "제가 제 안에 있는(아마 필히 두려움에 근거한 것이겠지만) 자기 왜소함이나 축소감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라고 인식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광대 무변한 진리고 빛인지를 확연히 알고, 진리 속 진리로 진리 자체가 되어. 진리로 살며, '나'라고 했을 때, 나의 행위는 길이고 빛이며 나의 말은 곧 진리이리니 나는 광활한 우주 속 지구 지구 속 수많은 만물 그 속 하나의 개체 내가 아니라 우주의 중심이고 핵이니 내가 있음으로 우주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우주의 모든 만물이 있다 내가 사라짐으로 우주도 사라지고 내가 사라짐으로 우주의 모든 만물이 사라진다 이런 내가 어찌 왜소함이나 축소감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빛으로 빛 자체가 되어 '나'라고 했을 때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의 목자로 등대로 길이며 빛이요 내가 있는 곳, 가는 곳은 어둠이 있을 수 없으며 어둠이 있다면 사라질 것이요 이런 '나'에게 있어서 왜소함이나 축소함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는 자기 자신을 올바로 알았다할 것이요. 그래서 수행자는 자기 자신을 올바로 알아야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眞我)가 나(眞我)인 줄을 알아야합니다. 내(眞我)가 나(眞我)라고 할 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하지만....표현은 하지 않을지라도..... 그렇게 되어 있겠지만, 내(假我)가 나(眞我)를 모르고 나(假我)를 나(假我)라고 할 때 생로병사와 희노애락..... 윤회 속에서 고통과 번뇌는 세세생생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수행해야합니다. 그럼으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빛을 밝혀야합니다. 오온과 6근으로 칭칭 둘러 쌓여 있는 금강석의 빛을.... 오온과 6근 속에 금강석의 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 채 어둠 자체 오온과 6근으로 살 것이 아니라 오온과 6근의 어둠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이고, 이것이 진아를 찾는 것이며, 이것이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금강석의 빛을 밝히는 것이고, 이것이 자기 자신 나를 올바로 알아 가는 길이며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마 필히 두려움에 근거한 것이겠지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두려움이나 무서움의 근본은 이 몸이 "나(假我)"라고 인식한 데서 비롯한, 이 "나(假我)"의 생사에 있다할 것입니다 나(假我)는 나(眞我)가 아니라 나(眞我)는 나(眞我)인줄 알면 나(假我)는 사라져 생사가 둘이 아닌지를 확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전등불을 켜면 어둠이 밀려가듯 두려움이나 무서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생로병사, 희노애락, 고통과 번뇌, 쓸쓸함과 외로움 ......... 역시 빛에 어둠이 사라지듯 그러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는 줄은 알면서도 그러하지 못한 것은 그 빛의 밝기가 이러한 어둠을 밝힐 만한 어둠을 몰아낼 만한 빛의 밝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그 빛의 밝기는 우주를 밝히고도 남을 빛입니다 "생활에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인식이나 방법이 있을까요" 그것은 부딪치고 부딪히는 모든 것들과 "나" "내 것"에도 집착, 애착하지 않고 방하착하는 가운데 색(色)이 곧 공(空)이요. 공(空)이 곧 색(色)인지 알고 세상 모든 것이 무상하고 공(空)한 줄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지처없이, 상주처없이...이렇게 살아갈 때 모든 것들은 실체가 투명하게 드러나고 자신의 마음 또한 투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렇듯 "나"라고 할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없는데 여기에 무엇이 있으리요. 보면 본대로 들으면 들은 대로 여여(如如)할 뿐입니다. 수행의 경지가 높을수록 여여 해지는 것이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해지며 경지가 높을수록 점점 더 어려집니다. 단순하다 못해 바보처럼... 어린아이들은 생각을 하되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말을 듣되 처음과 중간의 것들은 잃어 먹고 마지막 말만을 기억하듯 보면 본대로 들으면 들은 대로 방화착하는 가운데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그래서 언제나 해맑고 순수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할 정도로 생각이 많고 그 생각의 흔들림 역시 많습니다. 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 생각을 시작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고 그 수많은 생각은 처음 한 생각이 좋은 쪽과 나쁜 쪽, 어느 쪽으로 시작했느냐에 따라... 한 생각을 쫓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갑니다. 이렇듯 자기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생활의 명암은 다르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으로 한 생각 일어나니 중생이 나고 한 생각 끊으니 부처가 난다. 한 생각 사이에 부처와 중생이 있다. 깨달음, 행복과 불행, 빛과 그림자,...... 또한 그러합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일에 있어서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생활 방식이 될 것입니다. 수행자라면 한 생각을 쫓아 수행하되 한 생각을 따라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그 한 생각마저 끊어야할 것이고 일반인이라면 모든 일에 있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되 나쁜 생각을 하지 말고 좋은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게 힘든 일을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에는? '제게 힘든 일을 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이는 진아, 진여, ...... 본성의 자리에서 한 것입니다. 님과 제가 하나의 통로로 연결되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달되면 제가 님이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제가 느끼고 함께 하거든요. 제가 그 고통을 받고 있는데 걸림이 되고 있는데 그 걸림을 제거하지 않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고통이 전달되면 저는 이러할 것이고 '제게 힘든 일을 주십시오' 했을 때 님이 이 말을 듣고 힘든 일이 어떤 일이던 전할 것이 없는 그 실체가 없음을 알고 그것이 마음작용으로 인한 것인 줄 알고 그것으로부터 한 생각 돌이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진여의 진아의 본성의 자리에서 본성에, 큰 하나에, '전체가 하나' '우리는 하나'에 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냥 지나가는, 위로, 응원의 소리가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왜 모두 함께 사랑하고 나누고 행복해 하길 원하면서도 언제나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상처받을까봐 숨으려 하죠?" 모든 사람들이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용기나, 자신감이 없던가 믿음이 무너진 경험이 있던가. 이러한 것으로부터 피해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또는 전생에 (자신의 기억에는 없지만) 무의식 속에 이러한 것으로 인한 피해 의식 내지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번복되지 않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이 피해의식이 상처가....나서기보다는 자연 숨게 하는 것이겠지요. 내심 내성적인 성격이 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하나'라고 확연히 인식될 때 위의 생각들은 자연 사라집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자연 어둠의 그림자가 사라는 것과 같이,... 그리고 성격도 내성적에서 외향적으로 바뀝니다. "주변 환경의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든데, 이를 어찌 생각해야합니까?" 공업(共業:공동의 업: 동업(同業)이라고도 합니다)이 있고 개업(個業:개별적인 업: 자기 자신의 업)이 있습니다. 공업의 경우는 단위를 이루는 형제, 가족, 사회, 지구.....이 공업 속에 개업이 서로 간에 드러나 작용을 합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다' '내가 지은 업의 업보를 받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받아드리면 몸은 피곤할지 몰라도 마음은 편안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의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내 주변 다른 사람들이 업보를 짓는구나'라고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구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심부름꾼으로 쓸 사람은 이 생에서 그 만큼 고통을 받는다" 이는 고통받는 만큼 그 고통들로부터 정신적으로 다져지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이런 것이 반복될수록 "나" '내 것"이란 애고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새싹을 피우니. 이 새싹이 영혼의 성장을 가져오고 의식의 경지를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래부터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러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여 자기 자신을 흔히 폐인으로 나쁜 쪽으로 몰고 간다할 것입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현재 님의 의식은 이러한 것으로 단련된 단련하는 가운데 성장한 의식을 갖고 계신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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