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천안의 진짜 눈 (공안) 스님이 하루는 하북부에 가니 부주 왕상시가 스님께 법좌에 올라 법문해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때 마곡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대비관음보살의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눈(正眼)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비관음보살의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 가운데 어느 눈이 진짜 눈인가? 어서 말하라, 어서.'
마곡스님이 스님을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올라가 앉자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서 '안녕하십니까?' 하였다.
마곡스님이 머뭇거리자 스님도 똑같이 그를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다시 앉았다. 마곡스님이 획 나가버리자 스님도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문) 천수안의 정안(正眼)과 임제스님과 마곡스님이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앉고 법좌에서 내려옴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러보세요.
날짜:2004/02/19 03:04
Re:천수천안의 진짜 눈 (공안) 합장하고 저의 견해를 밝혀봅니다.
문) 천수안의 정안(正眼)과 임제스님과 마곡스님이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앉고 법좌에서 내려옴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러보세요.
-본성의 자리는 분별이 없는 객관적 진리의 자리이다. 천수천안의 근본눈(정안)은 본체의 자리이다. 그 자리에 어찌 진짜 와 가짜 눈을 구별 할것 인가 그 본래의 자리(법좌)에 두 스님중 어느 분이 앉든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날짜:2004/02/22 12:06
Re:Re:천수천안의 정안을 다시 일러보세요. 합장하고 저의 견해를 밝혀봅니다.
문) 천수안의 정안(正眼)과 임제스님과 마곡스님이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앉고 법좌에서 내려옴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러보세요.
-본성의 자리는 분별이 없는 객관적 진리의 자리이다. 천수천안의 근본눈(정안)은 본체의 자리이다. 그 자리에 어찌 진짜 와 가짜 눈을 구별 할것 인가 그 본래의 자리(법좌)에 두 스님중 어느 분이 앉든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님의 말씀처럼 분별의 차이가 없으나 견처의 차이가 있고 견처에 따라 나타남의 차이가 있다 할 것입니다. 법좌에서는 아래를 내려보아야 하고 법좌 아래에서는 법좌 위를 쳐다보아야 하지요. 이런 관계로 법좌에서 끌어내리고 법좌에 앉고 그리고 나간 것이지요. 자! 천수천안의 정안을 다시 일러보세요.
날짜:2004/02/23 03:27
Re:Re:Re:천수천안의 정안을 다시 일러보세요. 합장하고, 다시 저의 견해를 밝혀봅니다. 부처의 자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기 견해에 따라 천수천안으로 나타나지만, 이 모두가 정안이 아닌바, 본성의 자리에서 보면 일체가 하나로 곧 참나로 보임이니 이를 진공(진공묘유)이라 함이니, 그 자리는 본래 주인(가아, 자기 견해)이 없는 텅 빈자리임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니가 합니다.
날짜:2004/02/29 11:18
Re:Re:Re:Re:천수천안의 정안은 어찌 드러나나요?
부처의 자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기 견해에 따라 천수천안으로 나타나지만, 이모두가 정안이 아닌바, 본성의 자리에서 보면 일체가 하나로 곧 참나로 보임이니 이를 진공(진공묘유)이라 함이니, 그 자리는 본래 주인(가아, 자기 견해)이 없는 텅빈 자리임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본래의 자리에서의 안을 정안이라 하니 수많은 형상의 형태의 업에 따라 저마다 가지고 있는 업의 견처를 따라 나타나지 않는 곳 없이 나타나니 천수천안을 가졌다 하는 것이지요.
이런 관계로 천수천안의 정안은 늘 들러나 있음에도 그 드러남이 천수천안으로 드러날 대가 있고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으니 이는 어찌 드러나기에 그러한 것일가요?
날짜:2004/03/01 07:20
합장하고, 인식하는 순간, 주객일치의 순간들, 실상을 관하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져 하나로 되면 늘 드러나나, 인식 못함에 드러나지 않는 것 같음이니, 인식하는 자의 의식에 있음이 아닐까 합니다. [2004/03/01]
예 그러하지요.. 그러니 늘 깨어 있어 있다면 .. 둘이 아닌 하나로 있을 것입니다. [200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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