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을 할 때 집중이 느슨해지면 의식이 뜹니다.
즉, 의식이 몸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방황하기도 하고
누구를 만나기도 하면서 원하지 않는 상념과 조우합니다.
몸과 의식이 분리된 상태가 유지됩니다.
수행자가 이를 알고 의식을 내면으로 끌어내리면
의식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느슨해지면 의식이 어느새 빠져나가 있습니다.
의식이 내 몸안의 제자리를 잡았을 때에는
어떤 맑은 에너지가 내면에 충만해 있음을 느낍니다.
의식은 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벗어나 떠다니려 하는 속성이 있는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 일상생활을 할 때,
예를들어 운전을 할 때
의식은 몸과 분리되어 다른 곳에 가 있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내 몸은 종전의 행동(운전상태)을 그대로 잘 유지합니다.
이것은 왜 그런 것인지요?
무의식이 작용해서 그런 것이라 볼 수 있는지요?
늘 깨어 있는다 함은 의식이 몸을 떠나지 않고
몸과 하나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이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의식은 왜 몸을 벗어나 떠다니려 하는지요?
한 마디로 말하면
무명 티끌이기 때문이고
본성의 속성에 실려 다니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본성을 종(宗)으로
본성의 속성의 작용 끌어당기는 힘에 작용으로
본성과 한 덩어리로 있는 것을 체(體)로
즉 업덩어리할 영혼을 체(體)로
본성의 속성인 묘유(妙有) 속 법과 진리의 작용을 용(用)으로
연기의 인연 속 마음작용으로
안이비설신(5식)과 색성향미촉(5식), 의식이
"나"라고 하는 일원상 안팎의 대상을 따라 출입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할 때 집중이 느슨해지면 의식이 뜹니다.
즉, 의식이 몸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방황하기도 하고
누구를 만나기도 하면서 원하지 않는 상념과 조우합니다.
몸과 의식이 분리된 상태가 유지됩니다.
본성이 있고 본성의 속성이 있습니다.
본성의 속성인 기(氣)가 있습니다.
이 기(氣)는 허공에 자기 자신 "나"를 포함해서
그 어느 것이든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이
전부다 깃들어 있고 빈 허공은 허공대로 두루 꽉 차 있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서는 본성의 속성의 끌어당기는 힘 자력이
주변의 것들을 바라보는 견처를 따라 집착함으로 달라붙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되 집착하지 않고 바라만 볼 때
바라보이는 것은 나에게 끌려와 붙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두루해 있는 본성의 속성인 기(氣)에 실려갑니다.
법과 진리라고 하는 우주 법계가 성주괴공하는 본성의 속성이
기의 움직임 기운을 따라 기운에 실려서
법과 진리라는 이름을 하고 움직입니다.
이런 관계로 인하여
우주에 두루해 있는 그 어떤 것을...바라볼 수 있는 것을...
바라봄으로 드러나고
드러난 것을 의식함으로 인식하고
인식함으로 집중하고 집중함으로 탐착하게 되지요.
그럼으로 해서 나에게 끌려와서 붙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내 안에 본성이 있고
그 본성을 이루는 본성의 속성이 있으며
나라고 하는 내안에 본성보다는 본성의 속성이 더 많은 관계로
본성의 속성인 법과 진리에 따라 연기법에 의해 작용하되
내 안 본성의 속성의 작용인 마음작용이 작용하니
마음작용을 따라 본성의 속성이 작용하니
작용을 따라 작용이 나기 때문입니다.
즉 본성과 본성의 속성이 있어
본성의 속성이 기(氣)로 작용이 하니 작용하는 기운(氣運)에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을 따라 기가 가고 기를 따라 의식이 가고
의식을 따라 마음이 가고 마음 따라 기가 가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나의 강한 집착으로 끌려 붙어 있는 것이니
마음이 느슨해지면 붙어 있던 의식이 떨어져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수행을 할 때 집중이 느슨해지면 의식이 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 속 마음을 따라 기가 가고 기가 가는 곳 의식이 가는 것처럼
본성을 에워싸고 달라붙어 있는 것들은 붙어 있는 대로 그냥 있을지라도
마음이 작용하여 의식한 것이 있다면 의식한 것으로 인하여
마음은 본성의 속성인 기를 작용하여 기운에 의식을 실고
즉 마음작용으로 안에 기운을 밖에 기운에 실어서
마음이 향하는 즉 기운이 향하는 곳(것)으로 가서
즉 내몸을 빠져나와 다른 곳을 방황하다가...또는 노릴다가...
마음을 자기 자신 안으로 돌렸을 때 다시 되돌아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로 해서
의식이 몸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방황하기도 하고
누구를 만나기도 하면서 원하지 않는 상념과 조우합니다.
몸과 의식이 분리된 상태가 유지됩니다.
이런 형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을 자기 자신 안으로 돌렸을 때
즉 님이 말씀하신
수행자가 이를 알고 의식을 내면으로 끌어내리면
의식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또다시 마음이 느슨해지면
의식이 어느 새 자기 자신도 모르게 빠져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의식이 내 몸안의 제자리를 잡았을 때에는
자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고 관하고 있으니
흙탕물병이 가만히 있으며 알갱이는 가라앉고 맑은 물이 보이는 것처럼
번뇌 망상의 티끌은 침전되어
어떤 맑은 에너지가 내면에 충만해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의식은 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벗어나 떠다니려 하는 속성이 있는지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것은 본성의 속성 법과 진리에 있으며
법과 진리라는 본성의 속성에 실려다니는
본성의 속성에 떠다니는 의식이라고 하는 무명티끌에 있다 하겠습니다.
이미 본성에 찰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된 것 의식 즉 제7시 8식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제6식인 의식은 본성에 완전히 달라붙지를 못하였기 때문에
집착하면 달라붙고 느슨해지면 벗어나려고 하는 가운데
그것이 어떤 연유이든 깊게 맺힌 것으로 인하여 집착함 달라붙어
이제는 의식하여 느슨해져도 쉽사리 자기 자신 밖으로 벗어나 놓아버리지 못하고
자기 자신 안에서 끌어안고 있는 상태가 되버리지요.
이러 관계로 집착하면 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일상생활을 할 때, 예를들어 운전을 할 때
의식은 몸과 분리되어 다른 곳에 가 있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내 몸은 종전의 행동(운전상태)을 그대로 잘 유지합니다.
이것은 왜 그런 것인지요?
무의식이 작용해서 그런 것이라 볼 수 있는지요?
무의식의 작용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의식이 집착함으로 달라붙어 있어서
내 안의 다른 의식이 몸과 분리되어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
내 몸은 좀전의 행동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즉 본성인 종(宗)에 영혼 업덩어리의 체(體)가 작용하는 용(用)에 있어서
용(用)이 내 안팎에서 작용하되
체(體)는 기존의 체(體)를 벗어나 있지 않는 것과 같이
의식은 몸과 분리되어 다른 곳에 가 있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내 몸은 종전의 행동(운전상태)을 그대로 잘 유지하는 것입니다.
늘 깨어 있는다 함은 의식이 몸을 떠나지 않고
몸과 하나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이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늘 깨어 있다함은
말씀하신 것처럼 의식이 몸과 떠나지 않고
몸과 하나로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로 유지하는 속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인 마음작용 하나 하나 인식하며
마음작용으로 일어나는 모든 마음작용을 물들지 아니 하게 하고
맑고 밝은 쪽으로 빛으로 가는 길로 나아가게 하도록
의식이 깨어서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즉 의식적으로 본래 마음을 찾아는 것이다 할 것입니다.
2005.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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