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제6, 7, 8식과 본성(2)

칠통漆桶 조규일 2006. 5. 19. 16:27

♧금강산 건봉사(강원 고성군 소재)에 모셔진 부처님 진신사리

 

 

 

 

제6, 7, 8식과 본성 (2)  / 칠통 조규일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성경계"
이 자성경계 "나"는
물질의 "나"가 아닌 비물질의 "나"로써
그 형상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화합니다.
"나"라고 하는 마음 씀씀이에 따라서...마음작용을 통하여......
앞서 설명하기 위해 원을 그리라고 하여 그려놓은 그림은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이 변화하나...
변화하는 모습들을 일일이 도식화할 수 없으나
그 자체가 둘이 아니 하나인 만큼
하나인 "나" "자성경계"를 하나의 구(球)로 보고
하나의 구(球)를 절단한 단면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동전 크기의 처음 원안은 본성이고
그 외에 8식 7식은 업의 주체, 윤회의 주체이고
6식은 업의 주체이면서 안의 대상과 밖의 대상의 작용이
(여기서 안의 대상은 제6. 7. 8식을 말하는 것이고
밖의 대상은 우주 삼라만상을 이루는 이루고 있는
저마다의 형태의 형상의 모습을 한 자성경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표면으로 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려놓은 그림에서
편의상 본성과 업 8. 7. 6식을 구별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구별할 여지없이
동전크기의 원 안에 본성과 8. 7. 6식의 빗금친 부분들을 하나의 테두리 업으로
안과 밖으로만 구별할 수 있습니다.


8. 7. 6식은 순서대로 안에서 밖으로 먼지 쌓여 있는 듯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로 뒤섞여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순서적으로 안에서 밖으로 8. 7. 6식이라 했지만...
뒤섞여 있습니다. 갖기 다른 모습으로...
뒤섞여 혼합되어 있는 듯하나 혼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알갱이져 있듯..고갱이처럼 있습니다.
하나의 가구들처럼 ..물건들처럼...행위, 사건, 언행, 습관...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이 움직임은 본성의 속성으로 인한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듯 움직이는 업들은
본성의 무량광의 빛과 업과 대응하여 파장, 울림....을 보내고
이들은 "나"라고 하는 안의 대상이 되어 있고
각기 다른 밖으로부터의 대상이
안의 대상으로 화살처럼 날아올 때...
날아오는 화살과 방패처럼 인과 연이 있으면 닿으면
서로 대응하여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에는 대응을 하고 어떤 것에는 대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본성의 무량광이 업이란 테두리로 인하여
업으로 구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업이 안팎의 대상 인연으로 인트라 망 하늘망을 이루고
인연으로 연기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자성경계"로... 중생과 부처로...


하얀 백지에 원을 이루는 테두리가 없으면
그 하얀 백지는 그 자체로 하얀 백지인 것입니다.
즉 동그란 원 하나를 그려
"일원상"... "자성경계",...저마다의 "나"...모든 중생을 뜻하나
원을 이루는 테두리 업이 사라지면
원은 사라져 일체가 무량광 하얀 백지로 전체가 하나입니다만
"나"란 업이 있음으로 일원상을 이루는 테두리가 있고
나 너 우리...부처 중생...분별, 구별하는 안팎이 있음으로
수많은 저마다의 "나".."자성경계".. "중생"이 있고
"자성경계" "나"로 저마다 살고 있으니
깨달은 자 있고 부처가 있고 중생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일원상...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원은
그려지기 전 안팎 없이 그대로 하얀 종이...부처라 할 수 있고
전체가 하나로 여여하나...
테두리를 이루는 하나 하나의 점이 만나서 선이 되고
선이 만나서 원이 되는 것처럼...
본성의 무량광에서...한 생각을 시작으로...행위, 사건, 언행, 습관...이
인연을 만들고 이 인연이 업이 되어
"나"를 이루는, "나"를 이루고 있는...
영혼의 "나"이고 자성경계의 "나"이며 본 성품의 "나"입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는 가운데 저마다의 "나"가 있는 것입니다.
흔히 "나"라고 할 때 우리는 8. 7. 6식과 본성까지도 포함하여 말합니다.
동전 크기의 본성은 무량광(無量光)으로 빛납니다.
빛나는 본성을 에워싼 업(8.7.6식)은 본성의 빛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마치 밝디밝은 전등에 맨 처음 하나의 갓을 씌운 것을 시작으로 ...
전등 전체를 씌우고...씌운 곳에 또 씌우고....이처럼 씌울수록
전등 빛은 희미해져가고...주변은 어두워지는 것과 같다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바라보면 바라보는 곳을 통하여
희미하게나마 드러나는 것과 같이 8. 7. 6식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하여 .....
8. 7. 6식이 뭉쳐지게 했던 속성...
모든 종교가 말하는 그 근본 속성의 작용으로...
본성에서 움직임이 있고
이 움직임은 8. 7. 6을 움직이고
이 움직임은 안팎이 주로 대응하는 6식이 먼저 대응하여
변화하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이 움직임은 마음 본성을 자극하여
본성을 이루고 있는 본성의 속성이 자극하니
자극하는 곳으로 틈이 생기고 틈이 생긴 쪽으로 빛이 드러나니
드러난 빛에 먼지(업)가 작용하고
먼지의 움직임이 통로를 통하여 밖으로 나오니
이것이 본성의 속성이고 업의 작용이고
안의 대상의 작용이며 밖의 대상에 대응하여
밖으로 나타나는 언행이 됩니다.
무조건 나타나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 연에 의하여...
그래서 어떤 것에는 대응을 하고 어떤 것에는 대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윤회의 주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업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업의 주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업덩어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업덩어리를 영혼이라고 합니다. 저마다의 영혼...
업의 주체는 무엇입니까?
아는 것, 식(識)입니다.
영혼의 주체는 무엇입니까?
오온(五蘊)입니다.
오온의 주체는 무엇입니까?
6근입니다.
6근의 주체는 무엇이니까?
6처입니다.


앞에 설명으로 다시 돌아가 설명합니다.
일원상의 테두리 업은
본성과 함께 하나의 업덩어리 영혼입니다.
이 영혼은 오온의 집합덩어리입니다.
이 집합덩어리는 그 자체로 8, 7, 6식입니다.
자신의 밖에서 몸 안의 본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떤 길이 있습니까?
오감과 육감과 6처를 통하여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입니다.


의식 바라보는 관이 밖으로 향하면 늘 현실 세계가 펼쳐져 있고
현실을 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안을 관하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통로를 통하여
처음 6식 생각 의식을 관하게 되고..점점..7식 8식을 관하게 됩니다.
즉 의식 잠재의식 무의식을 관하게 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체험이라는 것을 합니다.
수행의 체험이라고도 하는 것을....
수행 중 체험 하나 하나는 한 컷 한 컷의 영상이 됩니다.
이 하나 하나의 영상은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자기 자신의 삶이고 인생이며
...수많은 한 컷 한 컷의 영상 사진이 모여서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지듯....
...수행하여 내부로부터 즉 6. 7. 8식의 경험 내지 체험은...
그대로 자기 자신의 삶이 되고 인생이 됩니다.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지듯.....


육체를 "나"로.. 나의 전부는 육체라고 인식하며 살다가
어느 날 이 육체가 내가 아니라 육체 속의 또 다른 나
"영혼"이 나라고 인식합니다. 이렇게 인식하게 되면...
이 사람의 차원은 육체란 인식에서 영혼의 차원까지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육체에 한정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인식한 영혼까지 생각하며 삽니다.
즉 영혼의 인식까지가 의식이 된 것입니다.


"영혼은 불생 불멸한다." 라고 인식하고 살다가
어느 날 깨어..."윤회의 주체가 영혼이고..
영혼도 영혼 나름이고...이는 업 때문이다" 라고 생각이 들면
이 사람은 업까지 생각하며 살 것입니다.
의식이 성장한 것이지요.
육체에서...영혼...업...
이렇듯 일원상을 이루는 6. 7. 8식은
이 세상에서의 일뿐만 기억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없는 많은 것들이 업으로 저장되어 남아 있습니다.
추억의 영상으로...기억을 못할 뿐...
밖을 향하여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과거...이 세상에서 뿐만이 아니라..영계., 천계.. 본성까지
즉 태초 본성에서부터....현재의 내가 있기까지
이는 결국 밖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본성은 여여하게 밖으로 있으나
영한 본성을 보지 못하고 형상만 형태만 모습만 쫓으니..????...


그래서 우리는 수행이라는 것을 통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업을 하나 하나 벗겨내야 합니다. 냅니다.
가지고 있는 업을 기억해 내서 아는 앎으로부터 내려놓는 것을 합니다.
그리고 아는 만큼 이해를 합니다.
의식 또한 아는 만큼 아는 범위에서 인식하고 받아드리고..판단 생각하지요.
그래서 수행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깊은 수행의 경험 내진 체험은
그 경험 체험이 제 7식이든 8식이든...영계의 일이든...천계의 일이든...
하나 하나의 한 컷 한 컷의 영상이 되어
인생을 생각할 때...
이 경험과 체험을 포함하여 생각하고 인식하니
업은 경험 체험한 만큼 떨어져 나가고 즉 놓아버리게 되고
의식은 체험 경험한 만큼 고차원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어떤 큰일과 작은 일이 있을 때
작은 일은 큰 일에 묻혀버리듯
큰 일만을 바라보고 열중하는 것처럼
그리고 큰 일에 있는 것처럼
수행으로 인한 체험과 경험으로 인한 고차원적으로 나아간 의식은
저차원적인 것을 의식을 바라보고...그곳에 잠시 있을지라도
결국 수행하여 올라선 경지의 차원에 있다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업이 두껍고 엷고를 말하게 되고
무겁고 가볍고를 말하게 되며
그럼으로 윤회에 있어 영혼이 가는 곳 역시
영혼의 맑고 깨끗함....무겁고 가벼운 것에 따라...
새로운 옷을 입는 것입니다.


200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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