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에서부터~~그 이후로

<최초의 한 생각>은 어디서 왔나요?

칠통漆桶 조규일 2006. 7. 22. 14:07
[11강] <최초의 한 생각>은 어디서 왔나요? 조회수 103 
등록일 2003년 04월 18일

강의내용

 

 

 

 

 <최초의 한 생각>은 어디서 왔나요?  / 칠통 조규일

"본성의 속성을 밝히다"란 글을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은 어디서 왔나요?
그것이 본성 안에 원래 있는 것이라면 생각도 본성의 속성이니 최초란 게 있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비유하자면 우유 속에 본래 단백질 알갱이가 무수히 들어있는데 
그중 어느 게 최초의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그것이 본성 안에 원래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라면 본성이 변한다는 얘기가 되니 본성이 변할 수도 있다면 본성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불교에서 이해 안 가는 게 이대목이거든요.
완전한 불성 속에서 홀연히 무명이 생겨났다?
그럼 도닦아 뭐합니까? 
또 홀연히 언젠가는 무명이 생겨나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을요.

그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그 이전에는 왜 안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최초에 일어난 시점은 언제인지 그리고 그 생각은 누구의 생각인지(그땐 인간도 없었을 텐데) 여러 가지가 다 궁금합니다.
우문에 대해 현답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하신 분께서
본성과 본성의 속성에 관련된 제 글들을 
이곳 명상록에 있는 글뿐만 아니라 
제 문학서재 "작은 강의"와 "연재코너"에서 있는 글을 다 읽었다는 
전제하에 대답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대답하여 설명하며 묻겠습니다.
묻는 가운데 최초의 한 생각이 무엇인가? 
님 스스로 가늠해 대답을 얻기를 바랍니다.

본성이라고 이름하는 최초의 빛 무량광(無量光)이 하나있습니다.
이 하나는 그 자체로 생명이 있고 영혼이 있으면 혼과 얼이 있습니다.
본성이라는 말하는 이 하나는 그 크기를 가름할 수도 없고 
틀도 없고 형태의 형상도 없습니다.  
이것이 어떤 이유인지 대폭발로 산산이 갈기갈기 부서져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를 이루고 있었던 하나 속에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모르나 하나를 속에 하나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니. 
이름이 속성인 것입니다. 
하나는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면서 하나 속에 있던 이 속성은 
하나가 대폭발로 산산히 부서진 속 틈과 틈 사이사이 어떻게 있을까요?
하나가 대폭발을 하여 처음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이 더욱 커졌을 뿐 
대폭발 후의 전체 역시도 가늠할 수는 없지만 하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무량광인 이 하나는 대폭발하기 이전에 어떤 징후가 있었을까요?
어떤 징후로 대폭발을 합니까?
최초의 하나 빛에서의 분리되기 이전의 징후는 무엇일까요?
최초의 분리 이전의 징후가 있게 된 
최초의 이분법의 시작 이전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무량광의 빛에서 ....???
이(그)것이 최초의 대폭발 이전의 징후
그 징후 이전의 최초의 한 생각입니다. 
본성의 빛에서 빛이 이분되기 위한 최초의 한 생각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최초의 한 생각입니다.
제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제가 인식하고 표현하면 이미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질문에 님 스스로 대답한 최초의 한 생각이 바로
본성에서의 최초의 한 생각입니다.

님은 이제 본성에서의 최초의 한 생각을 인식했습니다.
님이 인식한 최초의 한 생각은 
제가 말한 무량광의 빛 본성 속에 있습니까?
본성의 속성 속에 있습니까? 
본성에 있지도 않고
본성의 속성에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본성에 드러나고 있고 본성의 속성에 드러나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성의 표면 위에 있고 본성의 속성의 표면 위에 있습니다.
가만히 깊고 깊게 관하며 바라보세요.
본성과 본성의 속성은 생명이고 얼이고 혼이고 영혼으로 
있는 그대로 있는데
그대로 있는 본성과 본성의 속성 위 무엇이 있습니까?
본성과 본성의 속성의 표면 위에 있는 것은
변합니까? 변하지 않습니까?
본성과 본성의 속성 표면 아래 표면 속은 
변합니까? 변하지 않습니까?
님이 질문한 대로 변하는 것은 본성이 아니고 본성의 자리가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본성이고 본성의 자리이고 본성의 속성입니다. 
자! 이제 스스로 대답해 보세요.
최초의 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최초의 한 생각은 본성에 본성의 속성에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원래의 본성에 없던 것이 생겨난 것입니까?
원래의 본성에 본성의 속성에 있던 것입니까?
없던 것이 홀연히 생겨난 것입니까? 
없던 것이 홀연히 드러난 것입니까?
이렇듯 최초의 한 생각은 본성에 있지 않고 본성의 속성에 있지 않습니다만
본성과 본성의 속성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있던 본성이
대폭발 후 본성은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 본성의 속성은 느슨해져서
본성과 본성 사이 허공이 생기고 
생긴 허공에 본성의 속성이 생긴 허공만큼 느슨해져서
각기 흩어진 본성의 표면에 인연의 업이 본성을 에워 쌓고   
인연의 업으로 에워 쌓여진 본성이 느슨한 본성의 속성에 있으니
본성의 표면에 있되 본성의 속성 속에 있다할 것입니다.
최초에는 본성의 속성이 하나의 본성 속에만 있었지만
최초의 본성이 대폭발한 후에는 
본성의 속성이 본성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성 안팎으로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계로 최초의 한 생각은 본성과 본성의 속성 속에 있지 않았지만
대폭발로 인한 우주의 생성 이후에는 
본성 속에 있지는 않지만 본성의 속성 속에 있게 되어
이제는 인연의 업들이 본성의 속성이 되어
흐르고 흐르는 가운데 변화하고 변화하는 가운데
인연에 의하여 생멸을 하고 생멸하는 가운데 인연의 업을 더하며
기생심과 심생기를 오가며 육도 윤회하는 
생멸하는 이 모든 것이 본성의 속성으로 진리 속 진리가 된 것입니다.
자! 이제 대폭발 이전의 최초의 한 생각 본성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 보십시오.     님의 질문대로 완전한 불성(본성) 속에서 홀연히 무명이 생겨났습니까? 
님이 본성 그 표면 위 본성의 속성 끌려 다니는 인연의 업장을 전부다 여의었을 때
님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된 님은 홀연히 언젠가는 무명이 생겨나 
도로아미타불일 것 같습니까?.

자! 이제 마지막 부분의 질문에 대답해 볼까요.
앞에서 님은 최초의 한 생각을 생각하고 인식했습니다.
님이 생각한 최초의 한 생각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그리고 그 이전에는 왜 안 일어났습니까?
최초의 우주의 생성은 언제입니까? 시점 시기는 ????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저를 관하여 저의 본성이 빛인지를 알고 
빛에서 어떻게 지금의 나에 이르렀을까? 관한 과정에서 밝혀보았을 뿐
그 시점과 시기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할 것입니다.
가늠해 본다면 최초의 한 생각은 
우주 최초의 생성 이전의 대폭발, 대폭발 이전에 징후의 소리 
징후의 소리 이전의 한 생각 한 생각 이전의 본성
본성에서의 한 생각은 언제입니까?
본성에서의 최초의 한 생각은 누구라고 할 누가 있어 하게된 생각입니까?
님의 질문으로 되돌아 
"완전한 불성(본성) 속에서 홀연히 무명이 생겨났다." 
어찌 생각합니까? 어찌 생각됩니까?
이것으로 님의 질문에 대답을 가늠합니다.  
님의 질문에 대답은 이미 여러 글에서 밝혔기에 했는데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언어에 묶여 또 진실을 보지 못할까? 
설명에 되물어 스스로의 대답으로 진실을 확연히 알도록 구하도록 대답했거늘 
현문(賢問)에 우답(愚答)이 되었는지 
현문(賢問)에 현답(賢答)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혹여 또 물을 지 모르겠습니까?
그럼 본성이라고 하는 최초의 하나의 빛 무량광이 있기 이전에는
어떠했는지 어찌했는지 
어떻게 본성이 있게되었는지.... 묻는다면 
본성 자체가 그 어느 것에 아무 것에도 의존하거나 제약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있는 생명이고 얼이고 혼이고 영혼이기에 
이 이상 더 설명을 할 수 없고
이 이상 더 밝힐 수가 없어
본성이 있기까지의 본성 이전은 
절대자(絶對者)라 이름하여 말하고 부릅니다.

     2003. 4. 12


우선 부족한 저의 질문에 시간 내어 답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문제를 인연이 닿는 도인(?)이나 선배님들에게 기회가
되는대로 물었지만 어느 한 분도 명쾌하게 제가 납득할 수 있도록
답변해 주시는 분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이 질문은 속에서 나오는 금강장보살이 석가모니불에게 여쭈어본 질문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쓸데없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서는 석가께서는 답변을 보류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규봉종밀선사도 이 질문을 즐겨 수도승들에게 화두선으로 물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원각경은 그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이 아예 없어 학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에서 만들어진僞經이 아닌가 하는 견해 마져도 있습니다.)

님의 정성스런 답변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저로서는 좀 납득하기가 어렵군요.
님의 글을 보면 '본성의 안팎'이라든가 표면이라든가 하는 
(제가 과문한 탓으로 아직 모르는 지는 몰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본성에 안과 밖이 있고 속과 표면이 있던가...???...

최초의 폭발(생각)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일어났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모르신다는 이 말이 결국 대답인 듯 합니다)
결국은 '그건 절로 일어났다'는 견해이신 듯 하군요.
저는 그게 왜 절로 일어났는가를 여쭈어 본건데...???.

죄송합니다.
정성스레 답변을 주셨는데 예의가 아닌 듯하군요.
기대가 커서 그랬던가 봅니다.
마음 상하셨다면 사과 드립니다.



현문(賢問)에 우문(愚問)이 드러나게 했네요. ???

기대를 가지고 질문하신 질문의 대답이 
우답(愚答)도 아닌 말도 안 되는 대답이 되었군요.
그것은 님의 경지에서의 대답이기도 했으니. 
님에게 있어서 대답에 대한 인식은 분명하다할 것입니다.
그래도 언젠가...어떤 이...누군가는... 님의 질문에 저의 대답에서 ... 
가늠하여 확연히 아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도 
확연하지는 않아도 가늠해 인식한 분도 있지 않나 싶군요.
 
님께서 납득하기가 어렵다 하신
'본성의 안팎' 본성의 표면
본성에 안과 밖이 있고 속과 표면이 있던가...???...하심을 보니
 
님은 본성과 본성의 속성과 인연의 업이 얽혀 있는 
얽혀 있으며 한 덩어리 되어 굴러가는 인연의 업 업장이
본성의 속성에 실려 본성에 끌려간다는....
즉 마음이란 소(牛.본성)에 달구지(수레, 본성의 속성, 기)에 
실려 가는 옮겨가는 짐(무의식 의식 생각...)과...
본성과 본성의 속성, 인연의 업과 관련된 
부족한 저의 글을 다 읽지 않은 듯싶군요. 
그럼으로 제 글의 흐름 및 짜임 어떻게 표현하고 말하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했기에 가늠하지 못하고
님이 가지고 있는 의식의 경지 안에서 
이미 님이 인식하고 있는 생각과 의식의 경지에서의 잣대를 가지고
그 잣대 안에서 가늠 인식 생각 판단하고
님이 알고 있는 언어에 걸리고 묶여서 읽고 생각하고 인식한 듯 싶군요.
그래서 최대한 실질적 실체적인 부분은 스스로 인식하도록 한 것이었고
실질적 실체적인 것에 최대한 근접하여 인식 생각하도록 생각할 수 있도록
안팎 없는, 가늠할 수도 없는, 있지 않은 곳 없이 두루 해 있는, 
형태의 형상도 틀도 없이 어디에든 있는 본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는 전체로의 하나인 본성을 
하나의 형태의 형상으로 표현하여
표현한 형태의 형상 속에서 가늠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하나의 형태의 형상으로 가정 표현하여 설명한 본성
그 본성의 안팎과 본성의 표면, 그 본성의 속성을 이야기했더니만...
이제는 이해를 돕기 위해 표현한 본성의 언어에 걸리고 묶여
남들이 본성이란 이러 이러하다 라고 했던 하는 
책을 통하여 또는 들은 이야기로 받아드려 생각 인식하고 
생각 인식하고 있는 의식 안에서 의식의 경지에서
읽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인식했으니
아쉽다 할뿐입니다.
많은 말을 하는 중에도 또 언어에 묶일까 
최대한 언어를 피하여 최소한의 언어를 빌려 표현했으나
표현한 최소한의 언어에 걸리고 묶여 
생각하고 판단하고 인식했으니 
어찌 그 진실된 실체를 볼 수가 있었겠습니까?
직관하여 올바로 봐도 올바로 보고 올바로 인식하기 어려운 것을....
방편의 언어에 걸리고
알고 있다는 아는 것 식(識)에 가지고 있는 의식에 걸리고
의식에 묶여 언어에 묶여
가지고 있는 앎으로의 의식으로 인식하는 의식의 안에서
읽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인식함으로
현문(賢問)에 우문(愚問)이 드러났네요.
현문에 우문을 이끈 꼴이 되었네요.
아쉽지만, 아직은 님에게 때가 아닌 듯 싶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언젠가 ...어떤 이...누군가는
현문 속에서 현답을 얻는 이가 있지 않을까 싶군요.

님은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이 님에게는 더 좋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질문을 받은 저로써...그리고 님의 질문에 제 답변으로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더 밝힌 분이 있다면
님의 현문에 
글을 쓰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을 쓴 시간이 결국 시간낭비가 아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앞 답변에서 스스로 알게 하기 위한 것을 
부족한 언어로 표현하여 놓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이 들지만...혹시나 하여...

"최초의 폭발(생각)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일어났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모르신다는 이 말이 결국 대답인 듯 합니다.)
결국은 '그건 절로 일어났다'는 견해이신 듯 하군요."

제 대답의 글이 그런 뜻이었습니까?
좀더 깊게 성찰해 보셨으면 좋았을 것을...
제가 부족하여 그렇게 밖에 표현을 못했는가 봅니다.

지금부터 님이 제 답글에서 대답을 찾지 못한 것을 언어로 표현할 것입니다.
이 역시도 님이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고 말 안 되는 소리일 것입니다.
말과 언어에 묶이지 말고 걸리지 말고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앞에 글과 함께 ....
그러나 이것도 말과 언어일 뿐 실체가 아닙니다.
말과 언어 표현이 그러할 뿐.... 

  "완전한 불성(본성) 속에서 홀연히 무명이 생겨났다."

전체가 하나였던 본성이라고 이름한 빛이 하나 여기 있습니다.
그 빛이 무량광으로 빛나기 위해서는 빛의 속성이 있고
그 빛의 속성은 본성의 속성입니다.
본성은 본성의 속성까지를 포함한 것을 말하고
본성의 속성은 본성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말합니다.
본성은 빛으로 하나이고
빛으로 하나인 속성은 생명이고 얼이고 혼이고 영혼입니다.
하나의 빛은 생명이 있고 얼과 혼 영혼을 가지고
그 어느 것에 아무 것에도 의존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제약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생명을 가진 빛입니다.
여기서 본성은 빛이고
본성의 속성은 그 어느 것에 아무 것에도 의존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제약도 받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생명입니다. 얼과 혼 영혼이 있는...
이 전체의 하나는 
오직 하나의 생명이고 얼이고 혼이고 영혼입니다.
이 오직 하나의 빛으로 된 하나의 생명체 무량광이 
분열 내지는 이분하기 위해서는
무량광의 밝디 밝음 속 밝음을 비교할 수 없는 어둠
이쪽과 저쪽, 저쪽과 이쪽 
밝디 밝음 속의 무명
밝다 어둡다는 한 생각 분별의 무명을 시작으로 분열의 조짐은 보이고 
누가 있어 한 생각 분별을 했는가?
전체의 하나 무량광의 본성 그 본성의 속성인
생명, 얼, 혼,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완전한 불성(본성의 속성)이 
오직 하나의 빛으로 된 하나의 생명체 무량광의 생명체
그 본성의 속성이 홀연히 한 생각 일으켜 분별한 것입니다.
본성의 속성이 분별함으로 이분되고 이분됨으로 분열되고
그럼으로 대폭발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두 다 방편인 것을
진실의 실체는 보지 못하고
방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서
또 방편을 말할 수밖에 없는
수레바퀴의 굴 속 어둠은
무겁고 두껍고 깊다.

경전도 하나의 방편이다.
마음을 알게 하기 위한 

마음 작용을 설명하여 마음 작용을 알고
마음을 알게 하기 위한
마음의 방편설(方便說)이다.

마음의 방편설인가 하면 본성을 알게 하기 위한 방편설이다.

본성의 방편설은 
불성, 법성, 불 부처...를 알게 하기 위한 
깨달음의 방편설이었고   

깨달음은 본성을 알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설이었다.

그랬기에 그러했기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많은 경전 속의 수많은 말들을 했음에도
진작 부처님은 "한 마디도 설(說)한 것이 없다." 하신 것이 아닌가?

     200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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