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단상

:"구도자란 무엇인가"란 글을 읽어보고...이런 글을 접하면 속이 상한다.

칠통漆桶 조규일 2006. 8. 2. 19:21

:"구도자란 무엇인가"란 글을 읽어보고...이런 글을 접하면 속이 상한다. / 칠통 조규일

 

 

향기함 게시판에 김형길님이 올리신
"구도자란 누구인가"란 글을 읽고

이런 글을 접하면 속이 상한다.

나는 나를 알아주기 바래서 이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잘못 말하면서 마치 자신이 경험이나 체험한 양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 광고의 글을 보거나 접하면 속이 상하고
이런 거짓된 말이나 글들에 속는 이들이 안타깝고
이렇게 속이는 분들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글을 쓴다.


해공이라고 이름한 분들이 많아서
이글을 쓰신 해공이란 분이 제가 아는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글로 보면 이분은 깨달음을 얻은 분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런 글을 접하면서
늘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런 분들 때문에 깨달음을 얻지 않았음에도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이고
이런 분들이 착각도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수행자 구도자는
자기 자신이 이룬 경지만큼만 수행된 만큼만 이야기하면 별 상관이 없다.
그러면 틀릴 이유가 없고 보고 따라 오는 사람들을 잘못인도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게 아니다
자기 자신이 수행한 수행의 경지 이상을 말하고
자신 만큼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자세하게 물어보면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질문을 피해가며
아예 말을 해주지 않던가 아니면 큰 테두리만을 말해준다.
아예 말해주지 않으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대부분이 자세하게 보다는 큰 테두리로 말을 해 준다.
말해주는 큰 테두리도 앞서간 수행자나 구도자로
그 경지에 있던 분의 말씀을 빌려 말해 주면 되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자기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날까봐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자신의 알음알이로 말해 준다.

잘못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앞 서간 이는 앞서간 만큼 말해서 풀어놓아야
밑에서 앞서간 이를 보고 오르는 사람이 올바르게 보고 따라 올 것이나
앞서갔다는 이들이 하나같이 풀어놓지 않고
수행의 이루어짐의 현상의 체험이나 경험을 말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인식되다 보니
(스스로 수행들의 경험이나 체험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어긋나서는 착각도인이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도 보면
돈오점수가 착각도인을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도 처음 돈오점수를 주장하며
그 상태로 있어야 함에 있지 못함으로 그리 표현했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수가 아니라 돈오돈수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래서 나 역시 돈오돈수를 주장하고 돈오돈수를 말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바로 '깨달음'과 ‘견성(見性)’ 즉 본래성품을 깨달으면
그것이 곧 성불(成佛)인 것입니다. 에 있다.

누차 이야기했지만
견성이 성불도 깨달음도 아니다.
견성은 견성이고
돈오돈수의 깨달음이야 말로 성불이다.

항간에 보면
자기 자신의 내부 또는 외부에서 빛을 보는 것을 두고
견성을 말하는 사람도 있으며
외부 보다는 내부에서 보는 것을 두고
견성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두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경험이나 체험도 하지 못한 이들이
'견성 성불' 이란 말만 듣고 머리로 해석하고서는
성불했느니 깨달았느니 하며 하는 거짓말이다. 전부다 거짓말이다.
이런 거짓말들이 착각도인을 만드는 것이고
깨닫지도 못한 이들을 깨달았다고 하게 하는 것이다.


일전에 어디서 말했는지
누구의 질문에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견성은 빛을 보는 것으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전체가 은백색의 빛으로 빛나고
그 속에 수행하는 수행자 자신도 빛으로 함께 있으며
빛이 빛을 보고 인식하고 있게 되는 경험 내지는 체험을 하게되는데
이때가 바로 수행으로 이루어진 견성이다.
이렇듯 수행으로 이루어진 경성이 아닌
견성의 단어를 머리로 해석해서 말한다면
본성을 보는 것으로 본성의 빛을 보는 것을 말할 것이며
또 본성을 보면 이것이 성불이라고 할 것이며 깨달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수행이 거기까지 이루지 못한 이들이 만들어 내는
머리로 해석한 잘못된 알음알이로 착각도인 착각 깨달은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니
이런 일들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미 수행이 완숙해서 이루어진 사람들은 전부다 밝혀 놓아야 한다.
수행의 체험이나 경험을 숨기지 말고...
그래서 속이려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어도
올바로 가려는 사람들 마저 속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수행 중
빛이 빛으로 빛을 보고 인식하고 나서
여러 수행자들에게 물었을 때
이러한 사실을 말했을 때
깨달았다 했다.
그럼에도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래서는 아니 되고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것이 깨달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하던 수행을 계속 했었고
하던 수행을 계속 하던 중
덜커덩 꽝 하는 순간
눈을 뜨고 있음에도 눈이 한 번 더 떠졌고
눈이 한 번 더 떠지는 순간 일체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그 순간이 연상이 되면서 몇일동안 웃음이 나왔다.

깨달음의 웃음을 이야기하니
또 어떤 사람들은
수행 중 태양혈이 열리며
태양혈이 당기는 힘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깨달았다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이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태양혈이 열려서
자연스럽게 웃게 되는 웃음이 나오는 웃음은
깨달음의 웃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하겠다.

돈오의 깨달음은
자연의 유무형의 소리에
눈을 뜨고 있음에도 한 번 더 눈을 뜨고 일체를 보고는 것이다.
보고 있음에 보이는 모든 형태의 형상이 전체가 하나로 보이고
그 하나로 보이는 형태의 형상 속 바라보는 있는 자기 자신도 있고
이때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자기 자신 속에서 모든 형태의 형상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도 이상해서 내가 나를 보게 되었는데 나를 보았을 때 그랬었다.)


빛이 빛 속에서 의식 인식할 때가
바로 견성이고
눈을 뜨고 있음에도 한 번 더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는 곳에 내가 있고
내 속에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을 볼 때가
돈오의 깨달음이다.

그럼 성불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성불은 불이 되는 것이니
불이 무엇인지 모르니
모르겠다 하겠으니
이 글을 읽는 그대가 언제가 성불인지는 간파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거짓말들에 속지 말기를 바라며
본인이 수행하여감에
견성과 성불 돈오의 깨달음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경험과 체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행이 올바르게 가고자 하는 사람은
거짓됨이 없이 진실된 수행자 구도자는
깨달음을 인가 받고 아니 받고를 떠나서
수행 중 돈오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누가 인가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인가를 받는 것은 혹여 자기 자신이 착각했을 지 모르는 깨달음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지 위한 것임에 작금의 사태들을 보면
어히려 본인들은 확연 확신이 없는 깨달음에
인가를 받고들 있고 인가를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럴까?
올바른 수행자라면
그런 만큼 돈오의 깨달음을 얻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 돈오의 깨달음에 대한 확신이 들 때까지
바른 마음을 가지고 수행해 가기를 바란다.


2005.1. 1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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