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비록 지금은노예라 할지라도 노예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라

칠통漆桶 조규일 2023. 9. 19. 07:19
 비록 지금은노예라 할지라도 노예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라. / 칠통 조규일 






우리들이 수행해서 위 세게로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위 세계라고 해도 욕심도 많고 질투에 애증도 많은데, 꼭 수행해서 올라가기 보다는 천국을 만들었다는 지구에서 사는 것도 좋을 성싶다. 구지 힘들게 수행하며 위 세계로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분들이 있다.




사실 지구를 만든 것은 천국이라기보다는 천국이란 곳을 만들어서 내려오게 해서 내려와서는 저마다 자기 자신들을 종족을 만들어 놓고 에너지 공급과 공력을 키우는데 활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이상은 위 세계 존재들에게 에너지 공급원이고 공력을 제공하는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수행을 통해 위 세계로 올라갔을 때 비로소 노예로부터 해방이 되는 것이다.




지구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 인간을 놓고 위 세계에 비교해서 보면 가장 적당한 비교의 표현이 염전이란 태양 볕 아래서 소금을 긁어모아놓는 노예와 다릅 없다는 사실이다.




소금을 끌어보아도 먹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모아놓아야 모아놓은 자기 자신이 가져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들여 일하며 긁어모아만 주었지 가져가지를 못한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힘들게 일하고 아무리 많이 모아놓아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없다. 가져간다고 해봐야 얼 만큼이나 가져가는가?




우리들은 인간의 몸 받아 태어나 평생 일한다. 그러면서 평생 먹기 살기 위해서든 일을 하며 소금을 모으듯 물질을 모은다. 아무리 많이 모아도 죽을 때믄 빈손으로 간다. 아니 빈손으로 가야지 빈손으로 가지 않는 존재자 없다. 지구란 행성에 물질로 태어난 이상은 그렇다.




물질이 아닌 비물질의 존재자들은 다르다. 어떤 식으로든 물질에 들어 있는 에너지 및 공력을 가져가려 하고 직접 가져가기 어려우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지 몸에 붙어서 가져간다.




먹는 것도 내가 먹는다고 하지만 내가 먹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먹는다는 이름 하에 나를 이루고있는 모든 존재자들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몸을 이루고 있는 육체란 것과 육체 안에 보이든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자들을 먹음으로 살리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죽는 것이 두려워서 먹음으로 저마다 각기 나라고 하는 나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 장기들, 그 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 먹는다. 먹어야 산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먹는 것의 노예다. 먹음으로 육체란 몸으로 이루고 있는 나를 이루고 있는 수없이 많은 존재자들을 살린다. 탄트라, 탄트라섹스, 섹스를 하도록 갈망한다. 하지 않으면 불만이 쌓인다. 탄트라 탄트라섹스 섹스의 노예다. 함으로 해서 에너지를 증폭 폭발시킨다. 누가 하는가? 내가 하는가? 육체란 몸이 하는가?




먹는데 누가 먹는가? 내가 먹는다 하는데 먹는 것은 어디로 갔는가? 먹는다 하는데 무엇을 먹는가? 먹고 남은 모든 것들은 배설한다. 심지어 입에서부터 항문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존재 및 보이지 않는 수없이 많은 존재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저마다 공력을 흡수한다. 이 몸이란 육체를 가지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수없이 많은 세포들, 그 세포들이 이루고 있는 어마어마한 존재자들, 세포와 세포 사이에 있는 존재자들, 우주에 있는 존재들만큼 이상의 존재자들이 있다.






위 세계에서 지구로 내려올 때 1천억 이상의 섹스를 해야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조항에도 불구하고 왜 내려왔을까? 그것은 에너지 공급과 공력을 공급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에너지 공급과 공력 공급이란 것이 없었으면 그 누구도 계약 조항까지 붙여서 내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위 세계로 에너지 공급과 공력 공급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내려와 위 세계로 에너지를 공급 공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내려온 것이 아닐까 샆다. 자기 자신이 알든 모르든 자기 자신이란 물질적 육체란 몸을 이루고 있는 보이는 존재자들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존재자들을 먹여 살리면서 에너지를 공급하고 공력을 높여주기 위해서 왔다. 가족 중에 식구 중에 선발대가 되어 에너지를 구하러 왔다. 천국이란 놀이터란 미명 아래 천국이란 꼼수에 속아 내려오게 된 것이다.




아마도 더 위 세계 윗분들, 존재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잊을 것란 사실을 그래서 위 세계 위분들은 깨어 있어서 지금도 몸통 입에서 항문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존재자들은 위아래 마음대로 오가고, 요도 속, 성기 속에 있는 존재자들 역시도 위 세계를 마음대로 오가는데 요독 인간의 몸을 하고 있는 각기 저마다의 나는 육체람 몸의 칠통(漆桶)에 가려서 모르고 있다. 섹스 1천억번 이상 해야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항의 계약 때문에 윤회를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기를 부셔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게 해놓고는 빨대를 대놓고 빨아먹듯 먹고 있다.




인간은, 아닌 지구에서 몸이란 육체를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자들은 어떤 식으로 위 세계로부터 빨대를 꽂고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공급원에 지나지 않는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노예로 살면서 가지가지를 못하고 몸이란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는 늘 에너지를 보내준다. 에너지를 준다, 주는지도 모른 채 준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을 통해주고, 살아가기 위해서 먹는 것을 통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을 모른 채 주고 있고 공급하고 있다.




언제까지 윤회를 벗어나는 날까지 본래의 고향에 돌아가기 전까지 공급해야 하고 공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돌아갔다 하더라도 빈손이면 또 와야 한다. 빈손인데 어떻게 또 오지 않겠는가? 벌어야 하기 때문에 또 온다. 올 대는 벌기 위해서 오는데, 와서는 까맣게 잊는다. 그리고 이 몸이 전부인 양 몸이란 육체를 위해서 산다. 이 육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자들이 잘 먹고 잘 살도록 무진 애를 쓴다. 더 좋은 음식, 보다 좋은 에너지가 많은 것들을 찾아다니며 먹는다. 몸을 지탱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내기 위해서는 먹는다. 죽는 날까지 먹는다. 죽어서 빈손이 되는지도 모른 채 먹고 살고, 살고 먹으며 탄트라, 탄트라섹스, 섹스하며 산다.




낙이 없다. 낙이란 것이 에너지를 증폭 폭발시키는 것 외에는 없다.




수행이란 것을 통해서 깨어나서 내가 노예란 사실을 알기 전까지, 본래의 고향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노예로 산다. 윤회를 하면서 산다.




업에 의해서 윤회하고 선택하며 윤회하고 그렇게 잘 선택하고 선업으로 윤회하여 몸 받았을 때는 잘 먹고 잘 산다. 에너지를 잘 공급하며 산다. 잘 사는지 안다. 인생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죽어서 새로운 몸을 받는다. 새로운 몸을 받을 때마다 잘 사는 것이 아닌데도 기억이 없으니 지금, 현재가 좋으면 나중도 좋고, 지나온 과거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좋다. 그렇게 현실에 만족하며 산다. 조그마한 수레바퀴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보며 산다.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는 태양 볕에서 소금을 긁어모으듯 긁어모아서 소금이 어마어마하게 많아도 현재 물질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산다. 누구를 위해서 몸이란 육체를 이루고 있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존재자들을 위해서 산다. 그러다 이 몸이란 육체와 이별을 한다. 저기 저렇게 많은데 죽어서 가져갈 것이 없다. 가져갈 것이 없으니 내려올 때 섹스 1천억번 다 넘겼어도 가지를 못한다.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위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곳에서 돈과 같은 것을 가져가야 하는데 하나도 없다. 있어봐야 조금 밖에 없다. 그러니 돌아갈 수도 없다. 또다시 윤회하며 이번에는 새로운 몸 받아 가져갈 것을 많이 준비해서 가져가자고 몸 받지만 또 허사다. 몸 받기 전에는 기억을 하는데 몸만 받으면 잊고 몸이란 육체를 유지하는데 바쁘다.




육체와 이별하고 죽어서 영적존재가 되어서는 육체가 가지고 있는 자식, 내지는 자손에서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육체를 가지고 있었을 때 긁어 보아놓은 것들을 달라고 통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야기하지만 허사다. 후손들 듣지를 못하고 들어도 무슨 소리냐 죽으면 끝이지. 그리고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금전이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못 들으면 못 들어서 그러고 들으면 무시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자식이나 자손을 노예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어서 먹을 것을 취하지 못하니 먹을 것을 취하려고 애쓴다. 자식, 자손, 후손들이 모시는 제사상, 자신 자손 후손들이 좋은 일하는 것들을 통해서 에너지를 받고 죽어서의 금전과 같은 것을 받는다.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조상도 생각하고 조상이 잘 되기를 바라지 많이 있다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현실적으로 금전으로 좋아지기 위해서 조상을 섬긴다.




섬기는 것도 자기 방식이다. 자기가 좋으면 되는 거지,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마음 편하고자 하는 것이지 정말로 조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방식이 되고 조상님을 위한다는 것이 아주 조금이다.




몇 천억을 유산을 남기고 죽은 조상들은 죽어서 한 푼도 없으니 도와 달라 하지만 미친 소리라고 한다. 그러면서 주지 않거나 조금 생색을 낸다. 때로는 많으니 많이 주기도 한다. 그것들이 얼마나 될까? 죽은 부모님이나 조상님들에게 그쪽 세계에서 얼마나 되는 걸까?




회비를 받아보면 놀라울 정도다. 회비를 내자마자 가져간다. 어느 분은 늦게 냈다고 난리다. 빨리 내야 가지고 갔는데, 늦게 내서 가져가도 못가니 기다려야 한다고, 몇 개월, 몇 년 치를 내면 냄과 동시에 가져간다. 그만큼 그쪽에서는 절실하다. 절식하다 못해 적박한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고 주어도 부족한지 모른다. 그만큼 부족하다.




1억 벌어서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에게 준다고 해 봐야 1억의 에너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는 1억을 벌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노동을 해야 한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럼에도 돌아가신 분들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그것으로 늘 서운할 뿐이다. 아주 잘 전달되어도 그렇다.




자식이나 후손이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상님들을 위해서 몇 억 쓸 사람 없다.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것은 몰라도 금전적인 것은 잘못 이야기하면 오해의 소지가 많다.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들이 서운하고 부족하다해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야기해 봐야 이상한 사람되기 쉽다. 죽어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달리 말하면 방 없다는 것이다. 자식이 아무리 많은 재산 물려줘도 소용없다. 아무리 많은 재산 남겨놓고 죽어도 재산 싸움 안하면 다행이고 죽은 부모 조상 생각해 주면 고마울 뿐이다. 생각해 주어도 부족하다. 누구나 우리도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죽게 된다. 내가 죽어서 자손이 후손이 해주는 것으로 에너지 삼으려 말고 지금부터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에너지. 즉 살아서의 돈과 같은 것을 쌓아야 한다.




아무리 전달해 줘도 지금 현실이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수천억 조를 남겨주어도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들 위해서는 흔쾌히 쓰는 사람들 없다. 생생내기 의해서 쓰거나 아니면 자기들 마음 편안할 정도만 쓸 뿐, 정말로 돌아가신 죽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식이나 후손이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돈을 벌지 말고 자식이나 후손에게 돈을 남겨주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들 각자 저마다는 자기 자신의 육체를 통해서 다단계식으로 에너지 공급을 받아 사는 것과 같이 위 세계에서도 다단계식으로 에너지를 받아 산다.




노예로 살면서 물질적 돈만 벌어서 남겨주고 죽어서는 빈손으로 가지 말고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죽어서도 많은 돈과 같은 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가져갈 수 있는 것을 벌자는 것이다. 금전적으로 몇 억으로 해서 좋은 일 해야 봐야 몇 억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으로는 갈 수 있는 한계가 있고 또 그것으로는 위 세계에 올라가서 큰 것이 되지 못한다. 죽어서 빈손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 돈을 벌러서 좋은 일하며 쌓아봐야 번 금액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는 존재이든 보이지 않는 존재이든 존재들을 구하고 이롭게 하는 일은 것은 죽어서의 어마어마한 재산 축적이 되어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돈과 같은 것이 된다.




일반적으로 일을 하거나 무엇을 할 때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즉 나를 위해서 한다. 나를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롭게 하고 남이 좋게 하기 위해서 일을 하면 일함으로 물질적 금전이 따라오고 남으로 이롭게 하기 위해서 일하면 일하는 만큼 보이지 않는 쪽에서 즉 죽어서 갈 수 있는 돈과 같은 것을 쌓게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10만원을 받는 일을 하면서도 수천, 수백 억 원의 보이지 않는 쪽에서 일을 할 수 있다. 이는 하는 일을 통해서 의식이 깨어 있는 만큼, 얼 만큼 의식이 깨어, 깨어 있는 의식으로 일을 하면서 보이든 보이지 않던 많은 존재자들을 이롭게 하고 구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높아지고 깨어서 의식하여 이롭게 하고 구하는 만큼 보이지 않는 쪽으로 즉 죽어서 가져가게 되는 것들이 수없이 많이 쌓이게 된다.




비록 위 세계에서 지구가 천국이고 놀면서 또 수행하면서, 행하며 에너지 구하고 많은 공력을 쌓을 수 있다고 해도 깨어 있지 않으면 위 세계 존재자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공력을 공급하는 노예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이생을 살고 죽어서는 빈털터리로 살아있는 자식이나 자손을 바라보며 잘 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윤회하며 새롭게 태어나서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하지만 또 새로운 몸 받아 태어나서는 반복되게 살아서는 또다시 윤회의 굴레 떨어지고 윤회의 떨어지는 반복을 되풀이 하며 힘들고 피곤한 노에의 삶을 살지 말고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은 비록 육체를 가지고 노예로 살지라도 일을 하며 깨어 있는 만큼 보이든 보이지 않던 많은 이들을 깨어 있는 만큼 의식하며 구하고 이롭게 하면 그것이 곧 공덕과 복덕을 쌓고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재산을 축적하는 것과 같아서 살아서 모은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적인 것을 가져갈 수 있다.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보지 말고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행을 통하여 행하는 행과 관련되어 있는 보이든 보이지 않던 연관 되어 있는 모든 존재들이 이롭게 되도록 하고 구해지도록 일을 하는 것이다. 즉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남을 이롭게 하면 남이 이롭게 되는 만큼 내가 이롭게 되는 것이다. 나만이 이롭게 하고자 한다면 나만 이로울 것이며 몇 명을 이롭게 한다면 몇 명만 이롭게 될 것이며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한다면 많은 이들이 이롭게 될 것이다. 깨어서 의식하는 만큼 나 이외 많은 존재자들을 이롭게 하는 그것이 바로 공덕을 쌓고 복덕을 쌓고 죽어서 가져가게 되는 것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며 나 이외의 많은 존재자들을 이롭게 한 만큼 자기 자신의 의식은 깨어 있게 되어서 높은 세계 위 세계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의식 깨어 있는 만큼 위 세계로 가게 되고 위 세계로 가게 되는 만큼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고 구하게 되어서는 죽어서 위 세계에 가서도 많은 돈과 같은 에너지가 쌓여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은 부모, 조상을 위해서 몇 억, 몇 십억을 내놓는 것은 어렵다. 기대도 하지 마라.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보라.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들을 위해서 얼마나 돈을 쓰는가? 죽어서 자식이나 후손이 해주기를 바라지도 말고 지금부터 쌓아라.




무엇을 하든 행하는 그것을 통하여 나 이외의 다른 존재들을 이롭게 하라.




가장 쉬운 것이 자기 자신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세포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입에서 항문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존재자들을 이롭게 하며 구하는 것이며, 요도 안, 성기 안에 있는 수없이 많은 존재자들을 이롭게 하고 구하는 것이다. 이것만 잘해도 죽어서 자식이나 자손이 수천억을 죽은 자기 자신을 위해 써주는 것보다 더 훨씬 더 많은 것들 갖게 된다.




이는 밥 먹는 행위에서부터 소변보는 것에 이르기까지 응아하고 섹스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이 행하는 모든 행들을 통해서 이룩해 낼 수 있다. 이는 나를 이루고 있는 육체란 몸에서부터 나를 벗어난 육체를 벗어나 존재해 있는 모든 것들에 이르기까지 행할 수 있다. 단 중요한 것은 그만큼 깨어 있어야 하고 그만큼 깨어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깨어있는 만큼 행할 수 있고 의식하는 만큼 행해질 수 있다. 이는 의식하는 만큼 의식하는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이롭게 되고 구해지게 되어서는 의식되어 행하는 범주만큼 축적되고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노예로 살면서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인간이란 몸의 노예로 살면서 살아서는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 노에가 되지 말고 지금은 비록 인간의 몸이란 육체를 가지고 노예로 살지만 죽어서는 노에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깨어서 의식하며 행하여 이롭게 하고 구해야 한다. 이것이 노예가 노예로 살지 않고 깨어서 주인으로 사는 삶이라 할 것이다.




수행이란 것이 별거 아니다. 깨어서 행하는 것이다. 행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행을 통하여 이롭개 하고 구하면 주인으로 사는 것이고 육체란 몸을 위해서 지금의 현실만을 위해서 산다면 이는 노에나 다름없는 것이다. 노에나 다름없는 것이 아니라 노에다. 잘 생각해 보라. 노에 아닌 것이 있는가? 몸의 주인이고 육체의 주인이면서도 몸의 노예이고 육체의 주인이면서 육체의 노에다. 생각의 주인이면서도 생각의 노예다. 스스로 잘 생각해 보라. 과연 나는 내 안팎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에 있어서 노예인가? 주인인가?




노예로 오직 않고 주인으로 와서는 어느 순간부터 노예가 되었다. 노예가 되어서는 노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의 습성으로 살고 있다. 노에를 탈피하여 주인으로 살자.




이것이 수행이 목적이고 목표며 본래로 회귀하는 길이며 위 세계에서 지구로 내려온 이유다. 우리는 단순히 위 세계에서 즐기기 위해서 지구로 내려온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가져가고 더 많은 공력을 높이기 위해서 지구로 왔다. 지구로 내려와서는 주인이 주인의식을 잃고 노예가 되어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 왔을 대는 더 많은 에너지를 가져가고 더 많은 공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는데, 이제는 주인을 잃고 노예가 되어 노에로 간다. 우리가 할 일은 노예를 벗어나 주인이 되는 것이며 주인이 되어 본래 지구로 내려온 것과 같이 더 많은 에너지를 가져가고 더 많은 공력을 높여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예의 삶이 아닌 주인의 삶을 살아야 하고 지금의 나란 육체, 육체란 몸을 위해서 몸이란 육체의 물질적 현실에 만족하기 위해서 살기보다는 물질적 현실도 좋게 하고 죽어서 가져가야 할 공덕과 복덕 재산이란 에너지도 쌓아야 하고 공력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행을 하든 일을 하든 깨어서 의식되는 만큼 나 이외의 다른 존재들을 이롭게 하고 구하도록 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해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지 않고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처음 주인에서 노에가 된 만큼 노예근성이 강하다. 한 번 노예가 된 근성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다. 고치는데 힘들다고 그만두지 말고 꾸준히 노략하고 애써서 본래의 주인이 되어 본래의 목적대로 많은 에너지 가져가고 공력을 높여서 본래 온 곳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남을 이롭게 해서 나를 이롭게 하라. 이것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것은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이다. 다만 우리들이 과거 현재 미래란 3차원에서 볼 때 가상인 것 같지만 더 높은 다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는 있는 그대로 현실이고 단 한 번도 현실을 벗어나 오늘에 있지 않은 경우가 없다. 다만 저차원에서 고차원에 이르기까지 저 차원에서 볼 때는 수없이 많은 현실과 가상이 있을지 모르지만 높은 고차원일수록 가상 없이 있는 그대로 현실이고 모두 다 한통속이다.




전체가 하나로 한통속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만은 않고 그 만큼 나 이외의 많은 존재자들을 이롭게 해야 하고 구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생각하는 만큼 나는 고차원에서 저차원으로 떨어진다 생각하면 되고 나 이외의 존재자들을 생각하되 그 범주가 광범위하면 광범위해지는 만큼 저차원에서 고차원에 올라가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저차원으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저차원적인 만큼 극심한 노예이고 저차원에서 고차원적으로 올라가면 올라가는 만큼 느슨한 노예가 되고 노에로 벗어나 주인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비록 인간의 몸, 육체를 가지고 있음으로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의 존재자들의 노예일지라도 의식은 깨어서 주인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주인으로 사는 만큼 이 몸을 버리고 죽어서는 높고 높은 고차원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며 육체란 몸을 가지고 살아서 주인이 되어야만 죽어서 에너지가 부족하거나 공력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노예라 할지라도 노예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라.






2016. 06. 08 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