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담론

[질문에 대답한 글] 확연히 알아야 벗어날 수 있다

칠통漆桶 조규일 2006. 8. 2. 18:16
제목  [18회] 확연히 알아야 벗어날 수 있다
등록일  2001-11-30
조회수  42회

No: 633 글쓴이: 칠통 시간: 2001-06-17(일) 06:30:02 조회: 44

확연히 알아야 벗어날 수 있다. 450 / 칠통 조규일


"호흡을 관하다보면 점점 가늘어져 없어져 버리는 느낌이 들며 무기 속으로 빠져 버리는 느낌이 드는데, 이 때에 어떻게 수련해야 되는지 궁금합니다. 어디에 계신 누구신지 알려 주시면 찾아 뵙고 좋은 말씀 듣고 싶습니다."

귀하는 이미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지금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신 집중하며 호흡을 관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 집중이 안되고
자신의 의식을 놓치기 때문에 점점 호흡이 가늘어지고 급기야 호흡을 놓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무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이는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이 귀하에게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고,
아니면 눈을 감고 하시던가. 아니면 잠잘 시간에 하다보니.
몸이 이완되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이럴 때는 몸은 재우고 의식은 깨어 수식관을 하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의식은 깨어 호흡을 관해도,
아침에 몸은 평소 의식을 놓고 잠을 잔 것보다 더 상쾌하고 가볍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의식 집중이 잘되어야 합니다.
어찌되었던 아직은 정신 집중이 잘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러기 때문에 쉽게 의식을 놓치는 것 아닌가 싶군요.
정신 집중이 잘되는 가운데 의식을 놓치지 않고 호흡을 계속 관하다 보면
가늘었던 호흡이 더욱 더 분명하게 확연히 드러나 보이고
그런 가운데 의심이 풀리고 의문이 하나하나 풀려야 정상입니다.
마음가는 곳에 기(氣)가 따라 가고 의식이 따라 갑니다.
호흡을 관할 때는 결국 마음을 놓아서도 의식을 놓아서도 안되고,
마음이나 의식을 다른 일에 신경 쓰게 해서도 안되고 써서도 안됩니다.
오직 관하고 있는 호흡만을 따라 코에서 단전,
단전에서 코로, 들숨과 날숨만을 따라다니며 관해야 합니다.
아직은 서툴러서 그런지 아니면 눈을 감고 하다보니 수만에 빠지는지.
저는 귀하가 수식관으로 수행하신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모르니.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수행 중 의식을 놓치고 마음을 놓치는 결과임에는 분명한 것 같으니.
이 때는 몸을 추스리고 다시 시작하고 그래도 안되면 마음을 추스려 보고,
그래도 안되면 의식을 추스려 재무장하며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데도 계속 그러면 이번에는 점점 가늘어져 없어져 버리는 느낌,
무기 속으로 빠져 버리는 느낌이 어디 있나,
그 느끼는 그 놈을 찾아 그 놈을 관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좌선 수행을 잠시 멈추고,
다리를 풀고 일어나 걸으면서 수식관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의식이 또렷해지면 다시 하시던 좌선 수식관을 하는 것입니다.
장좌불와 아니고 용맹정진 아니시라면
보통 50분 좌선하면 10분 정도 행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꼭 앉아서만 수식관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던 혼자 있다면,
길을 걸으면서도 수식관을 할 수 있고 잠을 자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차를 기다리면서도 할 수 있고 차를 타서도 할 수 있습니다.
운전하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의식은 깨어 있어.
끊임없이 자신의 호흡을 관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결국 게을러서도 안되고,
자신이 하는 수행을 의식 속 무의식에서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수행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자신의 마음 공부이며 높은 차원을 향한 자신의 의식 공부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옆에 계신다 해도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 줄 수는 없습니다.
밥을 먹을 사람은 배고픈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또한 도(道) 역시 자기 자신을 벗어나 찾을 수 없고 남이 이루어 줄 수 없습니다.
남에게 의지 해봐야 혼란할 따름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自燈明 法燈明"이라고....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깨달음에 먼저와 나중이 있을지언정
깨달으신 분의 입장에서 보면 본성 그 자체로 우리는 모두 다 깨달아 있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를 뿐입니다. 미망에 가려....
수행은 마음에 가득 찬 이 미망을 걷어내는 일입니다.
수행하며 마음을 닦아 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넓어지는 만큼 의식도 넓어져
우주의 마음에 우주의 의식을 가질 때 한 소식하게 됩니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말하는데,
그러면 마음을 어떻게 비울까?
우리가 어떤 일에 있어. 자신이 아는 것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수행하며 확연히 알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앎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즉 아는 앎으로부터 다시는 얽매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안다 모른다를 떠나 있게 되지요.
모르면서 벗어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대충 알아서도 마찬가지이기에 어떤 부딪침이 오면 근방 알 수 있습니다.
부딪침의 돌이 날아올 때,
확연히 아는 사람들은 허공을 가르듯
돌이 마음 밖으로 날아가지만,
모르는 이들은 자신의 마음 안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
자신도 모르는 마음 안에 놓여진 것에 날아오는 돌이 부딪쳐 상처를 입히니
근방 반응을 보이게 되지요.
자신의 마음에 있으면서 없는 듯 떠나 있어.
마음 안팎 얽매임 없이,
허공과 같이 자유 자재 하는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며,
이 비운 마음에 의식은 있다 없다를 떠나 있는가 하면
얽매임이 없는 이 마음이 허공과 같은 의식을 가지는 것이며
우주와 같은 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주의 마음과 우주의 의식은 어떤 것이라 생각합니까?
허공과 허공의 의식은 어떤 것이 체(體)이고 용(用)입니까?
우주는 끊임없이 깨달음의 우주의 파장을 보냅니다.
우주에 있는 무형 유형의 모든 것들을 통하여
우주의 파장을 보내는가 하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깨달음을 얻으려면,
우주의 파장과 공명현상을 일으키려면,
자신이 우주의 파장과 같은 의식으로 의식을 높여 우주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주 의식이 되어야 합니다.
수행 정진을 통하여 자신의 의식을 높여 가는 가운데 우주의 의식에 도달하는 순간,
우주에 있는 무형 유형의 모든 것들과 공명현상이 일어나
한 생각 맑디맑게 닦아온 거울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이며
마음 안팎 없음이고,
이름 없는 곳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이고,
우주가 있고 해와 달이 있고,
내가 있는 순간,
물이 물 아님이 물이 물이요.
산이 산 아님이 산이 산이요.
이때가 되면 저를 보지 않아도 저를 볼 수 있고,
저와 떨어져 있어도 늘 저와 함께 있고,
귀가 없어도 저의 소리를 들을 것이며,
입이 없어도 저와 대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직은 때가 아닌 듯 싶습니다.
지금 귀하께서 저를 찾아온다 해봐야 별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저를 보고도 저의 모습은 보지 못할 것이며,
저의 육체만 보고 왜곡되어 공부에 방해가 될까?
어디에 있는 곳 없이 있는 곳이 내가 있는 곳입니다.
늘 대하는 우주 만물의 본성이 나의 체(體)고,
늘 대하는 우주 만물, 유형 무형의 모든 소리가 나의 용(用)입니다.
이름 없는 곳에 이름 붙이니 서울이고,
이름 없는 곳에 이름 붙이니 漆桶입니다.
귀하는 이미 저를 찾아와 만났고, 이야기를 듣고 있소.
시공에 걸려있는 육체의 인연 또한 때가 되면 만나게 되겠지요.
이것도 인연인데, 오시면 만나서 알음알이 내어 말하리요.

종일 밥 먹는 밥 이야기를 하여도 한 숟갈 밥만 못하고,
앉아서 천리를 설계하여도 한 걸음 가는 것만 못하니.
하시는 수행 열심히 하시어.
귀하의 의식이 우주의 의식이 되어. 공명현상이 빨리 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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