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담론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칠통漆桶 조규일 2007. 11. 1. 09:01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 칠통 조규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본래 집도 없고 자동차도 없으나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지 않습니까?


 


우주는 그 자체로 우주이고
우주 안에 있는(존재하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전체가 하나의 우주이나
하나의 우주 속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그 하나 하나는 저마다 크고 작은 자성경계를 가지고
크고 작은 저마다의 자성경계를 저마다의 "나"라고 하고
"나"라고 하는 자성경계로 저마다의 "나"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나타낸 모습 모양으로 드러내는 가운데
저마다의 크고 작은 자성경계로 저마다의 크고 작은 자성경계를 보지요.
그럼으로 크고 작은 저마다의 자성경계의 "나"의 모양과 모습의 상(相)을 보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형상의 형태를 보고
저마다 자성경계 속에서 자성경계로 부딪쳐 오는 만큼의 분별을 가지고
저마다의 크고 작은 자성경계를 볼 뿐
크고 작은 저마다의 자성경계를 보면서 우주 자체를 보지 못하고
자성경계 속 형태의 형상을 보고 저마다의 경계로 경계를 보는 것을 두고
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는 것인가?"
그것은 우주 속에 있는 크고 작은 저마다의 자성경계의 "나"
"나"라고 하는 저마다의 형태의 형상을 보면서도
보고 있는 크고 작은 저마다의 형태의 형상 속에서
우주를 보는 것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저마다의 형태의 형상 속에서 우주를 보라는 것인가?
그것은
가늠할 수 없는
하나의 우주
그 우주 안에 있는 모든 형태의 형상과
우주를 이루고 있는 유형 무형의 상(相)들이
성주괴공 속 
법과 진리, 인과 연에 의하여 생멸하며
생멸하는 가운데 모든 형태의 형상이 변하지만
그 변하는 생멸 속 변하지 않는 생멸하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주를 본다고 했으나
가늠할 수 없는 우주 전체의 형태의 형상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고 하는 우주 속 성주괴공하고 있는 체(體)를 보고
우주를 이루고 있는 우주 속 우주의 근본과 성질 속성을 보는 것입니다.



즉 "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떻게 보는 것인가?"하면
성주괴공 속 법과 진리, 연기법에 의하여
생멸하는 저마다의 형태의 형상 속 유형 무형의 상(相)속에서
상(相)을 보지 아니하고 즉 상(相)을 여의고
어느 것 어디를 보거나
법과 진리 인과 연으로 나타나는 유형 무형의 상(相)을 떠나
"우주 자체" "있는 그대로"
우주를 이루는 우주의 성질 속성 근본
우주의 본 성품 보는 것을 일러서
"있는 그대로" 본다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주라 했으나
우주도 하나의 이름이고
가늠할 수 없는 전체의 하나를 말하나
그것도 하나의 이름이고 가늠하는 것으로 경계고
경계에 하나의 이름을 명명하니
저마다의 이름을 가졌다.



우주라 하나 이름이 우주고
우주로 하나의 경계를 말하고 있으나
경계가 있고 없고를 떠나
있는 그대로이며
가늠할 수 전체의 하나라 하나
그것도 하나의 경계로 가늠한 것이지
있는 그대로라 할 것입니다.



본성이니 부처니 불이니...말하지만
이도 이름이 그러하고 경계로 드러난 것이 그러할 뿐
이름이 있고 없고 경계가 있고 없고를 떠나
그 자체를 보면
있는 그대로
본성이고 부처며... 불(佛)이라 할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은
경계를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이름을 하고 있는 것을 볼적에
알고 있는 것, 아는 것, 식(識)으로
아는 것, 식, 알고 있는 것으로 경계를 삼고 삼은 경계를 가지고
경계 속에서 경계를 가지고 드러나 있는 형태의 형상
유형 무형의 상(相)을 이름지어진 이름으로 저마다 보니
그 경계에 빠져 저마다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의 이름 속 아는 것 식 알고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을 삼아 사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경계로 나타나니
바라보되 바라보이는 것의 이름에 빠지지 말고
알고 있는 것 아는 것 식에 빠지지 말고
바라보이는 것의 이름을 잊고 바라보이는 것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 아는 것 식을 잊고 여의고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 본다 할 것이며
이름이 있으되 이름으로 한정 경계를 가지지 않고 보여지는 것을 보고
"내가" 알고 있는 것, 아는 것, 식(識: 업식)으로 자성경계를 갖지 않고
자성경계 없이 저마다 보여지는 대로 경계 없이 바라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할 것입니다.


 
본래 집도 없고 자동차도 없으나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름이 집이고 자동차이고
집이 하나의 경계이고 자동차가 하나의 경계일 뿐
집도 집이 아니고
자동자도 자동차가 아니지요.



집이라 하나
집을 볼 적에 집이란 이름을 여의고
님이 알고 있는 집을 잊고 바라봤을 때
그것은 집이 아니고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 자체라 하나 이도 말이 그러할 뿐
가늠할 수 없는 전체의 하나이고
전체의 하나라 하나 전체의 하나가 아니고
바라보는 것과 바라보이는 자체가
전체의 하나를 이루는 것이나 이도 말이
전체를 이루는 것이지 그 자체로 본 성품이고
법이고 진리며 인과 연으로 나타난 생멸의 형상이라 할 것입니다.



우주 자체는
가늠할 수 없는 전체의 하나는
있는 그대로
본성이고 법이고 진리이지만
바라보는 "내가" 경계를 가지고
알고 있는 것 아는 것 식을 가지고
그 안에서 그것을 알고 있는 것 아는 것 식으로 인식하고 바라보니
바라보는 "나"와 바라보이는 것이 아는 것이 식으로
저마다의 경계를 가지니
"나"라고 하는 자성경계와 저마다의 자성경계가 드러나니
드러나는 것으로 저마다 바라보니
이런 것이 집이라고 하는 아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식으로
이런 것이 자동차라고 하는 아는 것 알고 있는 것 식으로
집이 있고 자동차가 있고
집이 보이고 자동차가 보이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에 경계와 경계로 드러난다 할 것이며
바라보이는 것으로 경계와 경계가 있다 하겠습니다.



우주는 우주 자체로 여여하고
가늠할 수 없는 전체의 하나는 하나로 여여하나
"내가" 있음으로 "나"를 경계로
내가 알고 있는 것 아는 것 식으로 저마다 경계를 두고 바라보니
저마다 크고 작은 경계를 가지고 자성경계로
자신의 형태의 형상으로 드러나지만
"나"가 없다면 "나"로 인한 경계가 없고
나로 바라보이는 것들이 경계를 갖지 않으니 경계가 없을 것이며
경계가 없으니 있는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무아(無我) 속
마음이랄 것도 없는 무심(無心)에서 바라볼 때
나도 없고 너도 없으며 우주 삼라만상 모두 다 있고 없고를 떠나
있는 그대로 이고
이 상태에서 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원상을 자성경계라 하고
일원상을 테두리를 마음이라 하고
일원상 안의 작용을 마음작용이라 하지요
그리고 이 일원상 자성경계를 있고 없고
일원상 안팎이 없는
자성경계라고 하는 일원상이 깨져 없을 때에
돈오의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자성경계의 일원상이 없이
바라보이는 것 역시 저마다 크고 작은 일원상 없이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 본다 할 것입니다.



여기
0 0   두 개의 일원상이 있습니다.
하나의 일원상 0 안에서 밖을 볼 적에
0의 테두리를 통하여 보는 것이고
0안에서 보던 것을 여의고
0의 테두리 없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0을 볼 적에
0이 있는 것을 본다면  0의 테두리 경계를 보는 것이고
0의 테두리 없는 경계 없는 자체를 본다면
0없는 속 0이 없는 것을 보니
이도 저도 아무 것도 없이 본래 있는 그대로 이고
0이 없는 상태에서 0이 없는 것을 볼 적에
있는 그대로 본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0이 없는 상태에서 0이 있는 것을 볼 적에
통함에서 통함을 통하여 막힌 것을 본다 할 것이며
0이 없는 상태에서 0이 있되 0이 없는 상태를 볼 적에
통함에서 통함을 통함여 막힘을 통하여 본다 할 것입니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에
본성의 속성에 의하여 0이 생긴 것은
상(相)으로 상을 가지고 상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업으로 나타내고
저마다 업은 저마다 서로 다른 나타낸 형태의 형상을 나타내고
업식으로 나타낸 저마다 형태의 형상은 인과 연에 따라 생멸하지요.



인과 연을 따라 생멸하는 저마다의 형태의 형상 이름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러한 이름을 보면 이름이 그러할 뿐 그것이 아니고
그러한 속 인과 연이 있고 인과 연 속 생멸하고
생멸하는 속 법과 진리가 있고
법과 진리 속 불성이고 불이 있으며
본성의 속성이 있고 본성이 있으나
이름이 그러할 뿐 본래가 아닌 만큼
집과 자동차 역시도 이름이 집이고 자동차이지만
집은 집을 떠나 따로이 집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집은 있는 그대로 집이고 자동차 역시 있는 그대로 자동차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든 (즉 집. 자동차...법과 진리, 불성, 불, 주인공, 마음, 본성..이)
전체 속에 하나로 있고 하나 속 전체로 있지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불이(不二)입니다.



어떤 형태의 형상이든
바라보이는 것 바라보는 자체가 있는 그대로
명명한 이름이고 명명한 이름을 떠나 따로이 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체에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어떤 이름이든 이름을 지칭하여 이름을 볼 때에는
그 자체에서 "있는 그대로"를 통하여 지칭한 이름을 보아야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집이라 하나
집에는 인과 연이 있고 법과 진리가 있으며
불성, 불, 하나님, 부처, 주인공, 우주, 허공, 본성....이
각각의 이름을 하고 있으나
이 전체의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전체가 하나이든
한 덩어리로 되어 있지요.


그런 관계로 집을 볼 적에
어떤 이들은 집에서 집을 보고
어떤 이들은 각종 재료를 볼 것이며
어떤 이들은 집을 통하여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아는 것 식을 가지고 있는 견처를 통하여
인연을 보고 법, 진리, 불성, 불, 하나님, 부처, 주인공, 우주, 허공, 본성...을
집이란 이름의 집을 보면서 저마다 볼 것입니다.
그런 만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보고 있는 자체로 보고 있는 것을 통하여
지칭하여 이름한 것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 집이 있어 집을 볼 적에
이름하여 집을 보면서 집을 말할 때 집을 보는 것이고
집을 보면서 이름하여 인연을 말할 때 이름이 집인 것에서 인연법을 보는 것이고
집인 것을 보면서 법과 진리를 말할 때
이름이 집인 집을 보지 않고 거기서 법과 진리를 보고
불이나 불성을 말할 때에 불과 불성을 보고
이렇듯 불이(不二)인 전체 속 하나 그 하나 속 전체에서
각기 서로 다른 이름을 말할 때
보고 있는 바라보이는 것 자체에서
즉 있는 그대로의 상황 상태에서 각기 서로 다른 이름으로 지칭하는 것을
이름에 빠지지 않고 알고 있는 아는 것 식에 빠지지 않고 바라볼 때에
"있는 그대로" 본다 할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이 역시도
말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말이 이름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 할 것이나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떠나 따로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없다 할 것이니.
바라보는 자체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집은 집이고
법은 법이고 진리는 진리며
부처는 부처고 본성은 본성이다.... 라는 것을 볼 적에
있는 그대로 본다할 것입니다.


 



200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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