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가는 길

관조와 명상, 자신의 안팎에서 관조하라.

칠통漆桶 조규일 2023. 11. 15. 07:38

번쩍이는 것이 전부 다 금이 아니듯
보여지는 것이 전부를 말하지는 않는다.

보여지는 것에 현혹되기보다는

보여지지 않는 아름다운 보석을 볼 줄 아는 지혜로

부딪치는 모든 대상과 사람들을 대하고
관조해 볼 수 있는 날들이 되소서.

2006. 10. 20 07:46 칠통 조규일



관조와 명상 / 칠통 조규일



" "관조"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흔히들 객관적으로 어떠한 대상을 바라본다고 하는데,

명상과는 어떻게 다른지요?"


관조(觀照)와 명상의 차이를 쉽게 말한다면


관조는 사물을 밝게 비추어 본다.

즉 다시 말해서 사물을 보고 관하여
사물의 실체가 없음을 확연히 알아 가는 것을 말하고



명상이란
생각이나 의식을 쫓아 생각이나 의식을 관하여 그 실체가 없음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이 관조나 명상한다는 것은

꼭 사물에 국한해서 생각이나 의식을 국한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이 모두를 통 털어 관하여 밝게 비추어

그 실상인 진실된 모습을 알기 위한 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님께서 말한
"무엇을 바라본다 명상한다고 하는데

명상이란 것도 궁극에는
주체 객체가 없어지고 하나가 되어 전체로써 있는 것이 아닌지요"라는
말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수행자가 수행할 때
맨 처음 생각이 따라가고....
생각을 따라 의식이 따라가고....
의식을 따라 무의식이 따라가고...
급기야 마음이 따라갑니다

어느 정도 수행이 깊어지면
생각을 따라 많은 자기 자신 내부의 많은 생각들이 일어나

그 생각들이 점차 줄어들면서 의식이 따라오고

그 의식이 점차 자취를 감추면서 무의식이 따라오고
(아마 이때부터 의식의 폭이 조금씩 넓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의식이 점차 사라지면서 이제는 수행자 자기 자신은 없고

마음 홀로 수행자가 수행하는 방법의 길을 따라
자기 자신의 몸 안팎을 드나들 것입니다.



마음 홀로 안팎을 드나들다.

'아! 이것을 마음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어느 순간 마음은 안팎 없이 하나라는 사실을 확연히 알고


주객일체로..
주(主)가 있으면 객(客)이 있고
객이 있으면 주가 있으며
주가 없으면 객이 없고
객이 없으면 주가 없는
하나가 전체로 전체가 하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수행이 깊어 여기까지 이르렀다면 이때를 혜오라 할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계속 수행하다 보면
몸 안팎으로 호흡이 이제는 우주와 함께 호흡하는 듯하고

이것이 깊어져 수행이 극에 달하면

다시 말해서 익을 대로 익으면 우주의 자연의 무형 유형의 소리에

봉숭아 씨앗 주머니가 사소한 건드림에도 터지듯

자기 자신이 눈을 뜨고 있음에도 또다시 눈을 크게 한 번 더 뜨게 될 것입니다.

이때야말로 자기 자신이 하나로 있음을 확연히 알았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확연히 알았다 하여 모든 것이 확연한 것이 아니라

이때를 밥하는 것에 비유한다면 밥이 되었다고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되지요?

뜸을 들여야 합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수년 동안 뜸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서는 밥을 먹되 설익었는지 제대로 밥이 잘되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이 점검은 여러 선각자들을 거쳐 그 인가를 받는 경우도 있겠고
선각자들의 글을 통해서 또는 부처님 경전을 통해서 점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번 확연하면
처음에는 긴가 민가 하지만
밥을 뜸들이는 과정에서 더 이상 의심이 가지 않고
인가나 점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태풍의 눈을 통하여 자기 자신 안팎에서 관조해 봐야할 반야와 여  / 칠통 조규일
 

태풍의 눈이란 말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나온다.
 

태풍의 눈은 두꺼운 구름으로 둘러싸인,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등 열대저기압의 중심부에 나타나는 맑게 개인 무풍지대를 말한다. 태풍의 눈의 지름은 30~50km 정도이지만, 때로는 100~200km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태풍의 눈은 하강 기류이며, 주위에는 적란운이 있어 태풍의 눈이 통과한 지역에는 반대 방향으로부터 맹렬한 폭풍우가 불어 닥치는 것이 특징이고, 태풍의 눈 주변에서 최대 풍속을 보인다.
 
[지리]태풍 중심부에서 반경 10여 km 이내의 지역. 중심권에 가까울수록 원심력이 세어지기 때문에 이 권내(圈內)에서는 비교적 조용한 기상 현상이 나타난다.


태풍의 눈을 통하여
한 번 관하여 살펴 보라.



아무리 태풍이 불고 몰아쳐도 태풍의 눈에 들면 맑고 고요하고 바람 한 점이 없다.

태풍의 눈 주변에는 거세게 태풍이 불어서 온갖 것들이 날아다니고 움직이지만...

그러다 태풍이 멈추면 언제 태풍이 있었느냐는 듯 고요하고 잔잔하고 흔들림이 없다.

이는 태풍의 눈만 그런 것이 아니라 태풍이 불고 있는 태풍의 밖의 세상 역시도 태풍의 눈과 다름이 없다.
 
태풍에서 보면 태풍의 눈은 마치 여(如)와도 같다. 무엇으로부터의 여(如)인가?

그것은 태풍의 눈과 태풍이 일어나기 이전에

고요하고 맑고 깨끗한 무풍지대와 같고
또 태풍의 눈과 태풍이 일어나는 밖의 세상과 같다..


태풍의 눈
이것이 반야고
이것이 여다.



태풍이 일어나기 전
또는 태풍이 일어나는 곳을 벗어나 있는
태풍의 눈과 같은 곳이
반야고 여의 자리다.


태풍은 업의 일들로 관성에 의하여 움직이지만
업이 일어나서 태풍처럼 흔들린다 할지라도

그대 안의 업으로 인한 태풍의 눈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고

적막하다 못해 맑고 깨끗하고 맑고 깨끗하다 못해 고요하다

바람 한 점이 없는 공의 성품이다.

공의 성품을 물이라 할 때

물의 출렁거림 및 물의 흐름까지도 멈춘 상태다.


이것이 태풍의 눈이고 태풍 밖에 또한 그러하다.

태풍의 눈과 태풍이 일어나는 밖과 다름이 없으나

태풍이 안과 밖을 다르게 하고
태풍 속에 있으니 태풍에 휘둘리고
태풍의 눈에 있으니 태풍에 휘둘릴 일이 없다.

뿐만 아니라 태풍 밖에 있어도 태풍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만유 본성은 마치 태풍의 눈과 같고

업으로 움직이는 것은 태풍에 있는 것과 같으며

전체적으로 볼 때 태풍을 이루고 있는 띠는
공의 성품을 마치 하나의 경계를 같고 테두릴 갖고 태풍이라고 하되

태풍이 멈추고 나면 태풍은 사라지고
태풍의 눈과 태풍을 이루었던 때 밖은 태풍이 사라짐과 동시에 안팎 없이 서로 같다.

태풍이 불 때는 안팎이 분명히 있고 태풍권에 있으면 태풍에 휘둘리지만
태풍의 눈이나 태풍 밖에 있으면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이렇듯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태풍의 눈이 바로 반야이고 여다.

지금 그대는 허공을 보고 있고 허공에서 공의 성품을 보고 있다.

무엇이 반야냐?
그리고 그대 안에 반야는 무엇인가?
또한 그대 밖에 여는 무엇이고
그대 안의 여는 무엇인가?

안팎 없이 없는 곳 없이 두루해 있고 반야는 무엇이고
스며있지 않은 곳 없이 모든 것에 물과 같이 스며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 안에서 반야를 보고 여를 보고
그리고 자기 자신 밖에서 반야를 보고 여를 보라.
 
태풍의 눈을 멀리 떨어져서 보고
자기 자신 또한 멀리 떨어져서 태풍의 눈에 비교하여 관조해 보라.

무엇이 반야고 여인가?
아하! 하면 증득할 것이로되
무엇이지 하면 어긋난다.
 
 
2010. 03. 23 14:40 칠통 조규일



진면목을 보고

맞이하고

드러날 때까지 수행 정진해 가되

행으로 말하고

수행으로 점검하고

확인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2006.10. 06 07:27 칠통 조규일



관조해 보라. / 칠통 조규일



오늘도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활동의 시작은 누구이고?
어디서 출발했습니까?


잠에서 깨어
활동을 시작한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름이 그대입니까?
그대는
누구입니까?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지금 그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읽고 있는 눈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대는 지금
글을 읽으며 생각할 것입니다.


무엇이 읽고
읽은 것을 무엇이 알고
읽고 앎으로 해서 일으키게 되는 생각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나요?


관조하지 않고는
찾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지금 이 글보고 읽는 것처럼


내 안팎으로 연결된 끈을 관조해 보아야만
이 글을 보는 것과 같이 확연히 알 수가 있다.



관조해 보라.
그리고 대답해 보라.


2005. 7. 15. 07:54 칠통 조규일



내 마음을 찾는 이들에게 / 칠통 조규일


'내 마음은 무엇인가? 화두(話頭)로 마음을 찾고 있는데 마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내 마음은 내 생각이고 의식이고 무의식 기운.. 이런 것들을 내 마음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생각이 마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생각이 마음에 포함되어 한 덩어리로 있기는 하지만 생각을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과 생각.. 어느 것이 먼저 작용하여 일어납니까?'


"생각, 마음, 의식 ...생각이 먼저 일어날 때도 있는 것 같고, 마음이 먼저 일어나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님은 내가 말하기 전에 나를 봤을 때 생각을 먼저 합니까? 느끼는 것을 먼저 합니까? 둘 다를 동시에 합니까?'


"생각보다는 느끼는 것을 먼저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느끼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전달을 받습니까? 전이됩니까?'

"마음, 기, 기운???"

'그럼 생각이 마음은 아니네요. 생각이 있고 없고 마음으로 전달 내지는 전이되니. 생각은 변합니까? 변하지 않습니까?'


"변합니다."

'변하는 것은 생멸(生滅)합니까? 하지 않습니까?'

"생멸합니다."

'생멸하는 것은 무엇에 의하여 생멸합니까?'

"인연에 의하여 생멸합니다."

'생멸하는 것은 그 실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내 마음이라고 하는 것들에 있어. 내 마음의 실체는 변하고 생멸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고 생멸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의 실체일 텐데, 어떤 것을 내 마음의 실체라 할 것입니까?'

"기(氣)..?"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전한 것 없이 전해져서 묻고 대답합니다. 무엇으로 전해지고 있습니까?'

"파장?"

'무엇으로의 파장입니까?'

"마음, 기(氣)...?"

'파장은 변합니까? 변하지 않습니까?'

"변합니다."

'그럼 파장도 그 실체가 없습니다.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한 번 관찰해 볼까요?
마음을 편안히 하고 눈을 감으세요
눈을 감았으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온몸 전체를 바라보세요.
바라보는 자와 바라다 보이는 몸을 한 번 보고 느껴보세요.
지금 바라보면 바라보이는 것처럼
바라보는 내가 주체이고 바라보이는 몸은 객체입니다.
주체와 객체를 분리해 보세요.
바라보는 주체가 있고 보이는 객체가 있습니다.
이렇듯 분리해 보면 내 몸은 마음과 몸으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리된 몸과 마음 사이 기(氣)가 있어 몸과 마음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따라 기(氣)가 움직이니 마음은 기(氣)를 주관하고
그 기를 주관함으로 인해 무의식, 의식, 뜻과 의지, 인식이 움직이고
뜻과 의지를 움직임으로 인식(認識) 생각하고 또는 생각 인식함으로
몸을 움직입니다. 몸의 움직임은 언행으로 나타납니다.
몸의 움직임, 언행을 흔히 내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나의 실체는 마음입니다.
마음으로 온몸(육체)를 바라보고
마음과 육체 사이 기(氣)가 있어 기(氣)로 서로 연결된 것처럼
우주 만물이 기(氣)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주는 전체가 하나인 본성의 다른 이름이고
본성의 속성은 우주라고 이름하는 우주 속 전체를 말합니다.
우주 속은 본성의 속성으로 허공입니다.
그냥 허공, 빈 허공이 아니라 진실허공입니다.
진실허공 속 무엇이 있습니까?
기(氣)가 있습니다.
기는 만물의 생명에너지이고 생체에너지입니다.
자! 이제 내 마음이라고 하는 것들을 전부 찾아보세요.
내 마음은 생각 의식 무의식이 있고 기운이 있고 참견의 빛이 있습니다.
기생심에서 설명한 것처럼 기운에 실려 가는 것입니다.
육체는 생멸하고 생각과 의식 무의식도 변화하고 생멸합니다.
기운은 무엇을 기운이라고 합니까?
참견은 무엇입니까?'

"기운은 기의 움직임 흐르고 흐르는 것을 기운이라고 합니다. 참견은 ...??? "

'그럼 기운의 실체는 기(氣)이고 참견의 실체는 빛입니다.

즉 마음은 본성의 다른 이름이고 기는 본성의 속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본성인 마음은 크게는 본성의 속성으로 우주 삼라만상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본성의 속성 기(氣)와 지은 업들로 테두리 울타리를 쳐가며
업들과 기가 혼합하여 빚어 만든
본성에서의 인연의 업 업장의 그릇을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님의 업이 업장이 님의 마음을 만든 것입니다.

업장으로 본성을 막아(울타리 테두리) 본성의 속성으로 얽혀 만든 것입니다.
그럼으로 님에게 있어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따라 기가 따라가고
기를 따라 정(情)이 나는 것처럼 생각과 의식 무의식이 실려 가는 것입니다.
본성의 빛 + 생각 + 의식+ 무의식 + 기(氣:본성의 속성)
전체가 한 덩어리로 뭉쳐져 마음에 실려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마치
마음이 소(牛)로
기(氣)가 소가 끄는 달구지로
달구지에 정(情)의 생각 의식 무의식의 짐을 싣고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음을 소에 비유해서 말합니다.
생각 의식 무의식을 짐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님의 마음은 실체는 본성이고 본성은 빛인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한 것을 하나 하나 정리해 보세요.'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더 쉽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여기 큰그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물을 가득 담아놓았습니다.
물은 물 자체로 생명이 있습니다.
이 큰그릇은 전체의 하나인 본성이고
큰그릇 속에 있는 물은 본성의 속성입니다.
물 속에 테두리 있는 울타리 쳐진 그릇이 하나 넣었습니다.
물 속에 들어간 그릇은 물이 그릇 가득 담기고
물이 담겨진 그릇은 있는 그대로 물 속에 있습니다.
여기서 그릇은
큰그릇(전체의 하나) 속 생명, 얼, 영혼, 성령(본성의 속성, 물) 속
작은 그릇(하나의 울타리, 한울)으로
작은 그릇 속에 깃들어 있는 본성의 속성 물(생명, 얼, 영혼, 성령)
한알의 한 방울의 물로 전체의 하나 속 그 본성의 속성 그 속에 있는
하나의 작은 그릇..그릇은, 한알... 한 방울의 물로
너 나 우리...우주 삼라만상 저마다 각기 서로 다른 형상의 형태이고
큰그릇은 우주이고
큰그릇 속 우주 속은 텅 빈 허공이고
우주 속 텅 빈 허공은 아무 것도 없는 듯하나
큰그릇에 가득한 하나의 물처럼
우주 속 텅 빈 허공에는 기(氣)가 가득합니다.
이렇듯 허공은 무(無, 텅 빈)한 듯 유(有, 기가 있어)합니다.

이러한 허공을 우리는 허공의 진실된 실체라 하여 진실허공이라고 이름하고
이 진실허공은 본성의 빛과 본성의 속성 기(氣)가 있고
기(氣)는 바다의 바닷물같이 허공 가득 있고
허공 가득 기(氣) 속을 본성의 빛(빛의 작은 알갱이)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활동하니.
이 본성의 빛 자체는 생명이고
본성의 속성 기(氣)는 흐르고 흐르는 물 같은 젤 같은 것이고
이는 숫자적으로 10이라고 하면
생명에너지 빛은 10에 3정도이고 기(氣)는 10에 7정도 되는 듯 싶다.

이것들이 우주를 이루는 우주의 허공 전체
진면목인 진실허공(眞實虛空) 그 진공(眞空)에서
본생기 이후 기생심하고 심생기하여
심생기와 기생심을 비물질적으로 오가며
물질의 옷을 입고 벗으며 육도 윤회하는 것과
본성의 빛을 소(牛)로 기(氣)를 달구지로..생각과 의식 무의식을 끌고 가는
달구지에 짐 생각과 의식 무의식은 변화하고 생멸하는 것이
인연에 의하여 생멸 변화하는 하는 것이 너무도 묘연하여
진공 속 묘연함이 있는 것을 두고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합니다.

지금까지 대화한 것을 좀더 깊게 관조(觀照)해 보세요.
그리고 명확하게 관조한 것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3. 4. 8